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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국가들, 트럼프 관세 압박에 美 LNG 수입 확대…“재생에너지 전환 발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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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국가들, 트럼프 관세 압박에 美 LNG 수입 확대…“재생에너지 전환 발목 우려”

2012년 12월 5일(현지 시각) 일본 도쿄 남쪽 요코하마항 앞바다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정박해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2012년 12월 5일(현지 시각) 일본 도쿄 남쪽 요코하마항 앞바다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정박해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적자 해소 압박 속에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장기 수입 계약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 같은 움직임이 기후 목표 달성과 에너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일(현지 시각) 유로뉴스에 따르면 일본·베트남·태국·필리핀·인도 등은 미국과의 무역 마찰을 완화하기 위해 LNG 구매 확대를 협상 중이며, 일부 국가는 이미 대규모 장기 계약 체결에 나섰다.

일본 최대 전력회사 제라는 지난달 미국산 LNG를 연간 최대 550만 톤 구매하는 20년 계약을 체결했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 5월 미국 기업과 가스 수입 허브 건설 계약을 맺었다. 태국과 필리핀도 미국 알래스카산 LNG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 “알래스카 가스 수출 협력” 트럼프 발언에 각국 관심 집중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북부 지역에서 남부 니키스키까지 약 1300㎞를 연결하는 440억 달러(약 6조2000억 원) 규모의 알래스카 LNG 수출 프로젝트를 아시아에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관계자들이 현지를 방문해 사업성 검토에 나섰다.

인도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해 미국산 에너지 수입에 붙는 관세 철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국 LNG 의존 확대가 에너지 전환과 국가별 재생에너지 도입 계획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르웨이국제문제연구소 에너지센터장 인드라 오버랜드는 “LNG 수입에 장기적으로 묶일 경우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더 빠르고 저렴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늦어질 수 있다”면서 “인프라 구축 자체가 전환 비용을 키운다”고 말했다.

◇ “수요 줄어도 대금 내야” 계약 조건 논란…파키스탄 사례도 경고


많은 LNG 계약에는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테이크 오어 페이(take-or-pay)’ 조항이 포함돼 있다.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크리스토퍼 돌먼은 “재생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면 LNG 수요가 줄어들 수 있는데도 정부는 사용하지 않는 가스에 대한 요금을 지불해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키스탄은 LNG 수입 비용 폭등으로 전기요금이 급등하자 시민들이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수요 급감으로 도입한 LNG를 되팔고 있는 상황이다.

◇ “미국은 예측 불가능한 파트너”…에너지 안보 우려도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정책 변동성과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할 때 미국산 에너지에 장기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오버랜드는 “미국은 매우 예측하기 어려운 국가”라면서 “에너지 공급을 장기간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 면에서 리스크가 크다”고 말했다.

제로카본애널리틱스의 다리오 케너도 “LNG가 에너지 안보를 보장하려면 공급이 안정적이고 가격이 저렴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조건이 불확실하다”면서 “차라리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이 아시아 국가에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LNG 수요가 급증하자 아시아 국가들이 계약을 맺고도 공급을 받지 못하고 경매에서 밀려난 사례가 발생했다.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 등은 이미 이 같은 문제를 겪은 바 있다.

◇ “미국 무역적자 해소엔 역부족”…경제성도 의문


IEEFA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려면 연간 1억2100만 톤의 LNG를 수입해야 하는데 이는 미국 전체 수출량보다 50% 많은 수준이다. 베트남은 무역 흑자 규모가 한국의 두 배에 이르지만 이를 해소하려면 연간 1억8100만 톤의 LNG를 수입해야 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아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석탄과 재생에너지가 미국산 LNG보다 훨씬 저렴한 상황이어서 알래스카 프로젝트의 경제성 자체도 회의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산 철강에 대한 미 관세와 가스터빈 제작 지연도 새로운 LNG 발전소 건설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