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의 의류 수출국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강도 관세 정책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BBC가 24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캄보디아와 스리랑카 등 미국 의류시장의 생산거점에서 일하는 수백만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와 임금 하락을 우려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며 BBC는 이같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캄보디아와 스리랑카 등 아시아 주요 의류 수출국에 8월 1일부터 각각 36%, 30%의 관세를 새로 부과하겠다고 지난 9일 공식 통보했다. 앞서 90일간의 협상 유예기간이 끝난 직후 내려진 조치다.
이로써 두 국가는 앞서 제시됐던 관세안보다 낮아진 세율을 적용받게 됐으나 여전히 대미 의존도가 높은 현지 업계와 노동자들은 생계 위협을 호소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경우 지난해 미국으로 30억달러(약 4조1700억원) 상당의 의류를 수출했으며, 현지 노동자 90만명이 이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스리랑카도 같은 해 미국에 19억달러(약 2조6400억원) 규모의 의류를 수출하며 산업 전반에 약 35만명의 일자리가 달려 있다. 스리랑카의 요한 로렌스 의류협회 사무총장은 “경쟁국인 베트남의 관세보다 훨씬 높아 수출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생계 막막”…현지 노동자·정부 잇단 호소
캄보디아 동남부의 한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나오 속린 씨는 BBC에 “일자리를 잃게 되면 아이들이 굶게 될까 걱정”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를 철회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과 함께 하루 10시간 가방을 꿰매며 월 570달러(약 79만2000원)를 벌지만 이 돈으로 두 아들과 노부모를 부양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관세 인하를 위한 추가 협상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미 14%포인트의 감면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역시 13%포인트의 감면을 받았으나 추가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쑨 찬톨 캄보디아 부총리는 “관세를 0%로 낮추고 싶지만, 미국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협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여성 노동자 타격 커…노동권 침해 우려”
특히 캄보디아와 스리랑카 봉제산업의 여성 비중이 70%에 달해 대량 실직 시 생계형 빈곤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16㎡ 임대방에 거주하는 안 소피악 씨는 “공장 문이 닫히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가난한 나라를 생각해 관세를 거둬주길 매일 기도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의 대외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이번 관세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으나 마크 애너 미국 러트거스대 교수는 BBC와 인터뷰에서 “기존 무역체계가 미국에 싼 가격의 의류와 더 높은 기업 이익을 안겨왔다”며 “이런 고율 관세는 오히려 개발도상국이 성장했던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 공급망 압박까지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 심화, 공급망 내 중국산 소재 의존 문제 등도 향후 아시아 봉제산업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셩 루 미국 델라웨어대 교수는 “캄보디아와 스리랑카가 중국과 경제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국 요구를 맞춰야 하는 난관에 처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관세 여파로 캄보디아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태국 등 인접국으로의 불법 이주까지 고려하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