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트럼프發 관세 쇼크, '美 의존' 성장모델 뿌리부터 흔든다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트럼프發 관세 쇼크, '美 의존' 성장모델 뿌리부터 흔든다

전후 80년 자유무역 마침표…'각자도생' 나선 세계
인도는 '제조업 자립' 속도…베트남·일본은 '의존성 탈피' 시험대
미국의 보호주의는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어 정책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의 보호주의는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어 정책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진=로이터
미국이 전방위 관세를 예고하면서 전후 80년간 이어진 세계 자유무역 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닛케이가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중상주의로 돌아선 초강대국이 일방적으로 경제 규칙을 바꾸는 지금, 각국은 21세기판 '흑선(黒船)'의 압력을 개혁의 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중대한 도전을 맞았다.

◇ 美, 1.1조 달러 적자에 '보호주의 빗장'…베트남 직격탄


베트남이 대표 사례다. '차이나 플러스 원'의 최대 수혜국으로 수출에 힘입어 2024년에도 7%의 고성장을 이뤘지만, 한 해 1000억 달러(약 138조 원)가 넘는 대미 무역 흑자는 미국의 반감을 샀다. 앞으로 20%의 관세가 부과되면 수출 경쟁력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비용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또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지난 5월 "강대국 간 전략 경쟁과 보호주의의 대두가 우리에게 성장 모델의 변혁을 강요하고 있다"며 2030년까지 국제적인 자국 기업 20개를 키우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베트남 수출의 70%를 삼성전자 같은 외국 기업이 맡고 있어, 외자 의존 경제 구조의 취약성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미국의 이런 변심은 예고된 순서였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세계 경제가 지난 25년간 3배로 성장하는 동안, 미국의 상품 수입은 폭증했고 경상수지 적자는 3배 불어난 1조1000억 달러(약 1528조 원)에 이르렀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거대한 불균형은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 경제에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연방정부 부채가 5년 안에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경고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의 보호주의 전환은 피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여론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70%는 '무역 확대가 손해'라고 생각한다. '적자는 곧 패배'라는 단순 논리가 아니더라도, 과잉 소비 문제를 지적하는 합리적 설명은 더는 미국 안에서 통하지 않는다. 이제 미국을 상대하는 국가들이 생각을 바꿔야 할 때다.

◇ '메이크 인 인디아'…관세장벽, 제조업 육성 기회로


인도는 제조업 육성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고질적인 수입 의존과 무역 적자에 시달려온 인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2014년부터 추진한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서부 구자라트주에 들어서는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27억 달러(약 3조 7521억 원) 규모 반도체 공장은 이 정책의 상징적인 성과로 꼽힌다. 도쿄돔 크기의 클린룸을 갖추고 연내 가동을 앞둔 이 공장은, 미국이 부과하는 25% 관세라는 역풍 속에서도 자급률을 높이고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는 인도의 의지를 보여준다.

반면 일본의 처지는 녹록지 않다. 경상수지 불균형으로 미국의 보호주의 압박이 거셌던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의 자문기구가 '마에카와 리포트'를 통해 산업 구조 전환과 시장 개방을 제안했지만, 그 숙제는 오늘날까지 그대로다.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며 일본 경제는 물가와 임금이 모두 정체되는 저체온 상태에 빠졌다.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거듭 내놓는 사이 잠재성장률은 0%대로 떨어졌다.

◇ 내수 부진·투자 위축 이중고…'잃어버린 30년' 재현 우려


일본은 돈 벌기 힘든 내수 시장을 등지고 기업들은 해외 투자로 눈을 돌렸고, 2024년 30조 엔(약 283조 원)을 웃돈 경상 흑자는 대부분 미국 등 해외에서 거둬들인 배당 수입 덕분이다. 무역수지는 적자지만 대미 교역에서는 자동차 수출 덕에 흑자를 내는 기형적인 구조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지난 4월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외부 충격에 강인한 경제 구조 구축을 위해 국내 투자 확대, 공급망 강화를 꾀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참의원 선거 대패로 그의 정책 실행력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관세 피해 기업 지원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자칫 경쟁력 없는 산업을 보호하는 데 그쳐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경제 전문가들은 트럼프 관세 탓에 일본의 대미 수출이 줄어 일본 GDP가 0.4% 하락할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설비투자 감소가 장기 성장 둔화 우려를 키운다는 평가다. 다만 개인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압력을 개혁의 지렛대로 삼지 못한다면,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