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바 ‘거래의 기술’ 방식을 내세워 각국에 투자 약속을 받아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무역적자 축소를 넘어 미국에 직접 투자를 유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 투자하면 관세 낮추고, 거부하면 인상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한국은 현재 25%의 관세를 적용받고 있지만 관세를 낮추기 위한 제안을 하고 있다”면서 “그 제안이 무엇인지 들어보겠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8월 1일 미국은 한국산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15%로 낮췄다.
이는 한국 정부가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70조5500억 원) 규모의 투자와 1000억 달러(약 134조4400억 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를 약속한 데 따른 결과다.
일본 역시 5500억 달러(약 739조4200억 원) 규모의 미국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으며, 유럽연합(EU)도 자국 기업들이 최소 6000억 달러(약 806조6400억 원)를 미국의 다양한 산업 분야에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무역 협상인가, 인질극인가” 비판도
NYT는 이러한 압박성 요구에 대해 무역 전문가들 사이에서 '글로벌 갈취'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스콧 린시컴 미국 케이토연구소 부소장은 “트럼프가 미국의 관세 정책을 이용해 마치 원하지 않는 조건을 강제로 수락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면서 “이건 무역 협상이 아니라 일종의 인질극”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투자 약속 대부분은 구체적인 강제력이 없거나 실행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면 일본과 한국의 약속 금액 상당수는 대출 또는 보증 형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며, EU는 회원국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같은 투자를 할지 명확한 결정 권한조차 없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마이클 프롬번 회장은 “이런 약속들이 실제로 구속력을 갖는지 일정 기간 내 이행되지 않으면 다시 관세가 부과되는지 여부조차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 ‘승리’ 강조하는 트럼프, 허세 가능성도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협상을 통해 “수천억 달러의 외국 자본을 끌어들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미국 상무부 산하 경제분석국(BEA)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미국 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1510억 달러(약 202조 원)로 트럼프가 주장한 수치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허풍성 수치에 대해 애런 바트닉 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보좌관은 “이런 식의 거래는 자국 경쟁력으로 자본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신흥국에서나 볼 법한 방식”이라면서 “미국이 신흥국처럼 행동하면 다른 나라들도 미국을 그에 맞는 조건으로 대하기 시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협상 방식은 그가 부동산 사업가 시절 자주 쓰던 수법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의 대니얼 에임스 교수는 “트럼프는 자신이 승리했다고 느끼는 것을 중시하는 성향을 보인다”면서 “상대국들이 거액의 투자 약속을 내세우는 것은 트럼프의 허영심을 자극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