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이하 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로이터 통신, CNBC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8일까지 휴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암거래 유조선’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함께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들에 최대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 내에서는 인도와 중국이 주요 타깃으로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CNBC와 한 인터뷰에서 “푸틴은 사람 죽이는 일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면서 “기름값을 배럴당 10달러(약 1만3600원)만 더 낮추면 전쟁 자금줄이 마르게 된다. 러시아 경제는 형편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도는 좋은 무역 파트너가 아니다. 25% 관세를 검토했지만 앞으로 24시간 안에 훨씬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푸틴, 트럼프 분노 의식하지만 전쟁 목표가 우선”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의 경고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분위기다. 로이터는 크렘린 내부 소식통 3명의 말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를 자극하고 싶진 않지만, 전쟁 목표 달성이 최우선이며 현재로선 물러설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4개 주 전역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를 달성한 뒤에야 평화협상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소식통은 “푸틴은 미국과 관계 개선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지만 지금은 후퇴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최근 몇 달 동안 우크라이나 영토 약 500㎢를 추가 점령했으며 군 참모부는 푸틴에게 “두세 달 내에 전선이 붕괴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러시아가 지난해 이후 장악한 영토는 전체 우크라이나 영토의 1%도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 제재 위협은 '불쾌하지만 견딜 수 있다'…과거 제안도 거절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3월 푸틴이 전면 휴전에 동의할 경우 △모든 미국 제재 해제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의 러시아 영유권 인정 △2022년 이후 점령한 지역의 사실상 통제 인정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으나 푸틴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크렘린 소식통은 이를 “멈추는 건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표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이번 제재 위협은 불쾌하긴 하지만 재앙은 아니다”라면서 “트럼프는 이전에도 협박했지만 실행하지 않거나 입장을 바꾼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이 트럼프 요구에 따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이미 수차례의 제재를 받아왔으며 유엔 무역통계에 따르면 2024년 외국인직접투자(FDI)는 63% 감소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중앙은행 자산 3000억 달러(약 409조 원)를 동결 중이며, 러시아 재무부는 올해 석유·가스 수입이 예정보다 24%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북한·중국 등에서 군수 물자와 이중 용도 부품을 들여오면서 무기 생산은 유지되고 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러시아는 제재 회피에 능란하다.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며 여지를 남겼다.
◇ 유조선 제재, 실제 효과 확인…미국·EU 공조 강화될 듯
트럼프 행정부가 준비 중인 유조선 제재는 푸틴을 압박하는 즉각적인 조치로 여겨진다. FT에 따르면 미국은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부터 유조선 자체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고, 시장조사기관 케플러는 제재 대상 유조선들의 러시아 원유 수송량이 제재 후 73% 감소했다고 밝혔다.
EU는 지난달 유조선 100척 이상을 추가 제재해 총 415척을 리스트에 올렸으며 영국도 이에 동참했다. 벤자민 힐겐스톡 키예프경제대학 연구소장은 “이른바 암거래 유조선에 대한 압박은 러시아의 숨통을 조이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의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는 6일 모스크바를 방문할 예정이며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위트코프와의 대화는 매우 유익하고 의미 있는 접촉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FT는 위트코프의 귀국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에 대한 본격적 대응 방안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했다.
안나 켈리 백악관 부대변인은 “푸틴이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강력한 제재가 뒤따를 것이라는 점을 대통령은 분명히 했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위트코프의 보고 이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