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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멕시코, '살 파먹는 파리' 소 나선충 확산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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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멕시코, '살 파먹는 파리' 소 나선충 확산 공포

멕시코 불법 가축 이동이 확산 불씨…축산·야생 생태계 위협
멸균 파리 살포·가축 전수검사로 북상 차단 시도
온두라스 바예 데 자마스트란의 검사 센터 우리에 모인 소들이 나선충 유충 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온두라스 바예 데 자마스트란의 검사 센터 우리에 모인 소들이 나선충 유충 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로이터
텍사스 리브오크 카운티. 5대째 목장을 잇는 키프 도브(60)는 8살이던 1973년 여름을 또렷이 기억한다. 당시 미국 남부 6개 주를 휩쓴 '소 나선충(screwworm)' 확산으로 그는 매일 말 안장에 역겨운 타르 냄새 약병과 권총을 싣고 들판을 돌았다. 상처 속에 구더기가 들끓어 날뛰는 소를 발견하면 직접 약을 바르거나, 회생이 불가능하면 사살해야 했다. "썩는 살 냄새와 사나운 눈빛, 그 장면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는 그의 기억이 반세기 만에 다시 현실이 될 조짐이다.

나선충은 1966년 미국에서 박멸 선언을 했지만, 지난해 중미에서 발생한 대규모 감염이 멕시코 전역으로 번지며 북상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지난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농무부(USDA)는 최악의 경우 텍사스 경제 피해가 18억 달러(약 2조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 상처 속으로 파고드는 기생파리


암컷 나선충 파리는 소·사슴·말·개 등 온혈동물의 상처에 수백 개의 알을 낳는다. 부화한 유충은 갈고리 모양 입으로 살아있는 살을 파고들어 먹으며 상처를 넓힌다. 치료하지 않으면 숙주가 죽는다. 귀표 작업이나 가벼운 긁힘도 며칠 만에 커다란 구더기집이 된다.

멕시코 치아파스주에서는 지난해부터 소 감염이 폭발적으로 늘어 주당 10%씩 증가하고 있다. 지난 7월 말에는 86세 여성 환자가 나선충 감염 합병증으로 숨졌다. 사람 감염은 드물지만, 멕시코에서만 7월 마지막 주에 30건이 넘게 보고됐다.

◇ 국경 봉쇄와 멸균 파리 방출


미국은 5월부터 멕시코산 소 수입을 전면 중단하고, 멕시코 메타파에 새로운 멸균 파리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하지만 가동까지 1년이 걸린다. 현재 파나마 공장은 주당 1억 마리 생산이 한계지만, 확산을 막으려면 최소 5억 마리가 필요하다.

멸균 파리 방출은 지난 세기 박멸 작전의 핵심이었다. '컵케이크'라 불린 붉은 줄무늬 상자에 담긴 파리를 비행기로 뿌려 야생 암컷과 교미시켜 번식을 막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감염 범위가 멕시코 전역으로 넓어져 훨씬 많은 물량이 필요하다.

텍사스 국경에는 나선충 덫 100개가 설치됐고, 말에 탄 '틱 라이더'들이 소·말에 예방 약제를 살포하며 순찰 중이다. 하지만 숙련된 카우보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조기 발견과 치료가 어렵다.

◇ 불법 가축 이동이 확산 불씨


치아파스 목장주 훌리오 에레라는 "과테말라에서 훔친 병든 소들이 무방비로 들어오고 있다"며 불법 가축 이동을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멕시코 당국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마다 최소 80만 마리의 불법 소가 중미에서 들어온다. 일부는 범죄조직이 위조 귀표와 서류로 합법 거래처럼 둔갑시킨다.

이들은 위생검사와 세금을 피하고 도축장이나 대형 목장에 팔려 방역망을 뚫는다. 멕시코 육류업계는 매달 2500만~3000만 달러(약 347억~417억 원) 손실을 보고 있으며, 미국과의 연간 10억 달러(약 1조3900억 원) 규모 소 수출도 중단돼 양국 무역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 50년 만에 같은 실수


텍사스 서부에서 3대째 목장을 운영하는 워런 큐드는 지난 5월 부친이 보관하던 1970년대 나선충 약통과 죽은 구더기 표본 옆에 새 약품과 살충제를 채웠다. 그는 "50년 전에 없앤 걸 시설까지 폐기해놓고, 이제 다시 처음부터 싸우게 됐다"고 말했다.

치료는 여전히 손이 많이 간다. 수의사와 목장주는 감염 부위를 일일이 긁어내고 살충제를 뿌려야 한다. 하루 수백 마리를 점검하는 일은 장정 여러 명이 매일 투입돼야 가능하지만, 대형 목장은 인력난이 심각하다.

◇ 야생동물·관광업 위협


문제는 가축만이 아니다. 사슴, 코요테, 재규어 등 야생동물은 치료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상당한 동물은 숲 속으로 사라져 죽고, 텍사스와 멕시코의 수십억 달러 규모 사냥 관광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치아파스주는 '상처 없으면 구더기도 없다'는 구호로 목장주 신고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는 도태나 영업정지 우려로 신고를 꺼린다.

미국 농무부는 인력과 장비를 늘리며 멕시코와 공동 대응에 나섰지만, 현지 수의사 알폰소 로페스는 "정부 인력이 고속도로만 다니는 사이, 나선충은 산과 계곡으로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선충은 한 번 퍼지면 박멸에 수년, 수억 달러가 든다. 반세기 만에 다시 찾아온 '살파먹는 파리'는 북미 축산과 야생생태, 한·미·멕시코 농축산물 무역까지 뒤흔들 수 있는 경고음이 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