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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 中 '조선 굴기'에 한·일 기술로 해군 재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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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 中 '조선 굴기'에 한·일 기술로 해군 재건 나선다

'녹슨 함대' 미국의 위기…세계 1위 中과 건조 능력 530배 격차
한·미·일 '조선 동맹' 급부상…안보·경제 협력의 새로운 축
중국과의 조선업 격차가 530배에 달하는 등 '녹슨 함대'의 위기에 직면한 미국이 한국, 일본과 손잡고 해군력 재건에 나섰다. 3국의 '조선 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안보·경제 협력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한화오션이미지 확대보기
중국과의 조선업 격차가 530배에 달하는 등 '녹슨 함대'의 위기에 직면한 미국이 한국, 일본과 손잡고 해군력 재건에 나섰다. 3국의 '조선 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안보·경제 협력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세계 최강이라 부르는 미 해군이 흔들리고 있다. 자국 조선업의 쇠퇴와 중국의 폭발적인 해군력 증강 사이에서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력을 가진 동맹국 한국과 일본에 손을 내밀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단순한 산업 협력을 넘어 '조선업을 통한 안보·경제 동맹 강화'라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17일(현지시각)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상원의원 대표단이 중국의 압도적인 조선업 역량에 맞서고 자국 해군력을 다시 세우기 위해 자세한 협력 방안을 찾고자 한국과 일본을 찾는다. 이번 방문은 비전투함정의 공동 건조와 수리는 물론, 미국 내 일자리 만들기를 포함한 본토 조선소 투자 유치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협력을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해상 세력 균형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지 관심을 끈다.

◇ 미국의 위기감…"이라크 전쟁 때보다도 못하다"


현재 미국 조선업이 처한 현실은 암울하다. 상업 조선업이 무너지고 군수 조선에 지나치게 기댄 탓에, 기반 시설은 낡고 생산라인과 숙련된 일손마저 부족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2024년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상선 건조 시장에서 중국이 53%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 반면, 미국의 비중은 0.1%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이 그 뒤를 이었다. 미 해군이 2024년 4월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주요 함정 건조 계획 대부분이 예정보다 1년에서 3년씩 늦어지고 있다.

배 숫자를 기준으로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함대를 가진 중국 해군에 맞서, 미국은 항공모함이나 원자력 잠수함 같은 최신 전력에서는 앞서지만 함대를 돕는 군수지원선과 수송선 분야에서는 심각한 격차를 보인다.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태미 덕워스 의원은 "우리는 이미 2003년 '이라크 자유 작전' 때보다도 생산 능력이 모자란다"고 털어놨다. 그는 AP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생산 능력을 다시 키워야 하고, 기존 설비는 낡고 고장 나 수리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며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런 위기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조선업 부흥'을 외치며 다른 나라 파트너와 협력하라고 지시한 배경이 됐다. 미 국방부(펜타곤) 또한 2026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조선 분야에 470억 달러를 요청하며 해군력 재건에 힘을 쏟고 있다.

◇ '공동 건조'와 '역내 정비'…협력의 두 축


이번에 한국과 일본을 찾는 덕워스 의원과 앤디 김 의원은 뚜렷한 해법으로 '합작 투자'를 제시한다. 미군과 미국 기업,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파트너가 힘을 합쳐 미 해군의 군수지원함이나 육군의 소형 선박을 함께 만드는 방법이다. 특히 미국이 약점을 보이는 군수지원함은 물론, 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과 일본의 미쓰비시, 이마바리 조선소 등이 핵심 협력 대상으로 꼽힌다.

또 다른 핵심 방안은 인도-태평양 지역 내 함정 수리다. 단순히 고치는 것을 넘어 한국과 일본의 주요 항만에 미 해군을 위한 '해외 정비 중심 기지'를 만드는 구상도 들어 있다. 덕워스 의원은 "함정을 고치기 위해 2년을 기다리며 미국 본토까지 다시 가져와야 한다면 상황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아시아 현지에서 빠르게 정비해 미군 전력의 유지비를 줄이고, 함대 운영의 효율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러한 협력 구상은 관련국 모두에게 여러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은 짧은 기간에 해군 지원 능력을 보강하고, 다른 나라 투자를 끌어들여 자국 산업을 회복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자신들의 뛰어난 조선 기술을 안보 의제와 연결해 영향력을 키우고, 미군이라는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며 미국 시장을 넓힐 기회가 될 수 있다. 동맹국의 기술력과 미국의 자본·군사력을 합쳐 중국의 양적 우위에 맞서려는 치밀한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위험 부담도 뚜렷하다. 중국은 "경제 협력에 군사 목적을 끌어들인다"며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조선과 해운 분야에서 중국과 상업적으로 가깝게 얽혀 있는 한국과 일본은 안보 이익과 경제 실리 사이에서 ‘경제-안보 딜레마’가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미 의원단의 행보는 미·중 힘겨루기가 반도체를 넘어 전통 제조업인 조선업까지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동맹국의 힘을 빌려 중국의 해양 진출을 막고,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안보 수요를 발판 삼아 자국 산업의 새로운 길을 찾는 복잡한 판이 벌어졌다. 이 '조선 동맹'이 인도-태평양의 판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