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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소프트뱅크, 인텔에 20억 달러 투자…AI 반도체 동맹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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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소프트뱅크, 인텔에 20억 달러 투자…AI 반도체 동맹 강화

트럼프 행정부도 10% 지분 인수 검토…'실패 불가 기업' 지정 예고
손정의 '스타게이트' 구상과 맞물려…TSMC·엔비디아 독주 견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소프트뱅크는 최근 위기에 처한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는 단순한 자금 수혈을 넘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정책과 손 회장의 AI 제국 구상이 맞물린 것으로, TSMC와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시장에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소프트뱅크는 최근 위기에 처한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는 단순한 자금 수혈을 넘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정책과 손 회장의 AI 제국 구상이 맞물린 것으로, TSMC와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시장에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한때 미국 '반도체 제국'을 이끌었으나 존립의 기로에 선 인텔이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대규모 자금을 수혈받아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소프트뱅크의 이번 투자는 약 20억 달러(약 2조 7988억 원)에 이르며, 인텔의 AI 반도체와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 재건을 넘어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자국 반도체 산업 부흥 전략과 맞물려 상당한 파급효과를 낳을 전망이다. 특히 미국 정부가 인텔을 국가안보상 '마지막 대형 반도체 제조사'로 보는 만큼, 지분 참여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19일(현지 시각) 인텔 주가는 7% 가까이 뛰었다.

소프트뱅크가 최근 인텔 지분 2%를 사들여 6대 주주로 올라선 것은 단순한 재무 투자를 넘어, 손정의 회장이 그리는 거대 AI 전략의 핵심 퍼즐로 읽힌다. 이번 투자로 소프트뱅크는 자사가 추진하는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사업 '스타게이트(Stargate)'에 필요한 최첨단 반도체와 AI 하드웨어 공급망을 미국 안에서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아시아에 쏠린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는 효과도 기대된다. 앞서 올해 초 두 회사는 인텔의 반도체 제조 사업부 매각을 논의했으나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번 투자는 인텔 회생에 팔을 걷어붙인 미국 정부의 움직임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인텔 경영 정상화와 미국 반도체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직접 10%의 비의결권 지분을 사들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가 지분을 인수하는 자금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 '반도체 및 과학법(칩스법)'에 따라 약속했던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을 전환하는 형태다. 세금 낭비 논란을 줄이고 주가를 떠받치려는 계산도 깔려있다.

미 상무부의 하워드 러트닉 장관은 이를 두고 "보조금을 주식으로 바꾸는 것이지 경영권에 개입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지분 참여가 현실화되면, 인텔은 사실상 '국가적으로 실패해서는 안 되는 기업'의 지위를 얻는다.
◇ 손정의의 AI 제국 구상…'설계-제조' 잇는 공급망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이번 투자로 '초인공지능(ASI)'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는 "세계 AI 기반 시설 중심지를 미국에 세운다"는 구상으로 오픈AI·오라클과 함께 스타게이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확보한 반도체 설계(Arm·암페어 컴퓨팅)와 AI 기술(오픈AI 지분) 역량에 이번 인텔 투자를 더해 '설계-제조-AI 기술을 잇는 통합 전선'을 미국에 구축했다.

소프트뱅크는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대만 폭스콘에서 오하이오주 로즈타운의 옛 전기트럭 공장을 사들여, 폭스콘과 세운 합작법인으로 데이터센터 장비 같은 AI 하드웨어를 직접 생산할 계획이다. 반도체 공급망을 군사와 산업 전략 기반 시설로 삼아 미국에서 완결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 위기의 인텔, 구원투수 만나…세계 반도체 지형 변화 예고

한편 지난 2분기 29억 달러(약 4조 571억 원) 순손실을 낸 인텔은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는 AMD와 애플 실리콘에 밀리고, AI 가속기 시장에서는 엔비디아가 앞서가는 가운데 자체 개발한 '가우디' 칩 수요가 많지 않은 이중고를 겪었다. 이번에 들어온 자금은 TSMC·삼성전자와 기술 격차를 줄일 첨단 공정과 AI 칩 개발에 쓰일 전망이다. 무엇보다 소프트뱅크의 스타게이트 사업이 인텔의 안정적인 수요처가 된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이번 거래는 세계 반도체 지형에도 변화를 예고한다. 인텔이 되살아나면 미국의 반도체 자립도가 높아져 TSMC 의존도를 낮추고, 엔비디아의 AI 칩 독주를 막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멀리 보면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진영 구축이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손 회장이 지난 6월 "가장 큰 기회가 있는 곳이 바로 미국"이라고 강조한 점도 이번 투자가 치밀한 전략에 따른 행보임을 뒷받침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