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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美 첨단 제조업, 제2의 차이나 쇼크 직면”…미·중 기술 패권 충돌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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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美 첨단 제조업, 제2의 차이나 쇼크 직면”…미·중 기술 패권 충돌 본격화

다니엘 왕 “中, 연구보다 생산·규모 압도…美·日·獨 첨단 산업까지 흔들릴 것”
중국의 집요한 기술 투자로 미국 경제가 2000년대 ‘차이나 쇼크(China Shock)’의 충격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가운데, 이번에는 첨단 제조업이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의 집요한 기술 투자로 미국 경제가 2000년대 ‘차이나 쇼크(China Shock)’의 충격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가운데, 이번에는 첨단 제조업이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이미지=GPT4o

미국 경제가 2000년대 차이나 쇼크(China Shock)’의 충격을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가운데, 이번에는 첨단 제조업이 새로운 파고에 직면했다는 경고가 나왔다.

중국 산업·기술 분석 전문가 다니엘 왕(Dan Wang)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ion) 연구원은 23(현지시각) 경제전문지 배런스(Barron’s) 인터뷰에서 중국의 대량 생산 역량이 미국·일본·독일의 첨단 제조 부문까지 잠식할 수 있다“20년 전 철강·섬유·가구 같은 저숙련 일자리가 무너졌듯, 첨단 일자리와 산업 기반이 또 한 번 흔들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왕 연구원은 지난 10년간 중국 기술 전략을 연구하며 예일대 로스쿨 산하 폴 차이 차이나센터(Paul Tsai China Center)와 투자분석사 가브칼 리서치(Gavekal Research)에서 활동했으며, 오는 8월 출간 예정인 저서 '브레이크넥(Breakneck)'에서 중국의 산업 전략과 기술 야심을 분석했다.

◇ 美 법률 대응vs 엔지니어 전략

왕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대규모 관세를 부과했고, 반도체·AI 분야 수출 통제를 강화했다. 바이든 행정부도 수백 개 중국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추가하며 같은 기조를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응은 달랐다. “중국은 변호사 대신 엔지니어를 중용했다. 군수·항공우주 출신 기술 인력을 관료로 기용하고, 에너지 공급·산업 기반·인프라 확충에 집중 투자했다미국이 제약을 걸 때, 중국은 더 많은 전력과 공장을 세워 맞섰다고 분석했다.

이 결과 중국은 전기차·태양광 패널·배터리 분야에서 과잉 생산 능력을 축적했고,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이미 세계 시장 갈등을 재점화하고 있다.

◇ 美 연구성과, 中 대량생산…태양광 산업의 전형


왕 연구원은 미국은 여전히 기초 과학에서 강점이 있지만 연구성과를 산업화·규모화하는 능력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1954년 벨연구소(Bell Labs)가 태양광 기술을 발명했지만, 결국 시장은 중국이 장악했다. 현재 전 세계 태양광 모듈의 80% 이상을 중국이 생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항공산업·최첨단 반도체에선 미흡하지만, 의료기기·정밀 공정·배터리·전자제품 등 대부분 제조업 부문에서 이미 선두권에 있다첨단 제조업 기반이 과거 경공업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수출 규제 역설…화웨이의 스푸트니크 모멘트


수출 규제는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했다. 왕 연구원에 따르면 화웨이는 2019년 이후 엔비디아·퀄컴 반도체를 수입하지 못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를 계기로 자국 생산 생태계를 서둘러 구축했다이는 중국의 스푸트니크 모멘트’였고 설명했다.

실제 화웨이의 AI 칩은 아직 엔비디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반도체 장비도 네덜란드 ASML처럼 정밀하지 않다. 그러나 자국 소프트웨어·장비 생태계를 키우며 격차를 서서히 줄이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AMD의 일부 H20칩 대중국 수출을 허용한 데 대해 그는 절반의 제재는 중국 기업이 회피할 수 있는 틈을 제공한다. 오히려 효과가 약화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보호무역 넘어 기업을 유치해야


왕 연구원은 미국 산업정책의 구조적 제약도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관세 부과나 보조금 같은 방식에 치중했지만, 중국은 애플과 테슬라를 유치해 현지 인력을 훈련시켰다미국도 배터리와 로보틱스 선도기업을 불러들여 자국 내 생산 거점과 교육 체계를 연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수용하기 어렵고, 위험과 실패에 대한 인내심도 부족하다며 한계를 짚었다.

◇ 성장 둔화에도 기술 챔피언배출


왕 연구원은 중국은 2023년 이후 부동산 부채와 인구 감소로 성장세가 둔화됐지만, 동시에 화웨이, AI, 인터넷 기업 등 기술 챔피언을 계속 배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는 둔화돼도 엔지니어 국가로서 기술 패권 추구 의지는 강력하다이는 장기적으로 미국과 서구 산업 기반에 더 큰 압박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20여 년 전 차이나 쇼크는 저숙련 제조업 일자리를 빼앗았지만, 이번 2의 차이나 쇼크는 미국·일본·독일의 첨단 제조업 구조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것이 왕 연구원의 경고다. 그는 서구가 AI와 수출 규제에만 의존하는 사이, 중국은 엔지니어 중심 전략으로 첨단 산업 전체를 잠식할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