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5% 관세에 운송비 3배 급등까지…중동 의존 구조 변화 '난항'

중동 중질유 특화 설비, 미국 경질유엔 '미스매치'
한국 정유 부문은 하루 총 350만 배럴의 생산능력으로 국가 에너지 경제의 핵심을 담당한다. 그러나 현재 설비는 장기 계약과 과거부터 이어온 공급망을 바탕으로 중동산 중질 원유 처리에 맞춰져 있어 미국산 경질유 처리엔 구조상 한계가 있다.
SK에너지 울산 공장(하루 84만 배럴)와 GS칼텍스 여수 공장(하루 80만 배럴) 등 주요 시설들은 황 성분이 많은 중동산 중질유를 처리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들 설비는 광범위한 탈황과 복잡한 정제 공정이 필요한 무거운 원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다. 반면 미국산 경질유는 황 함량이 적고 더 가벼운 특성을 갖고 있어 기존 설비로는 효율이 떨어진다.
한국석유공사가 올해 한 분석 결과, 미국 원유를 제대로 처리하려면 약 20억~30억 달러(약 2조7000억~4조1500억 원) 규모 시설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세계 공급 과잉과 가동률 하락(올해 75~80%)으로 어려움을 겪는 정유업계엔 상당한 부담이다.
트럼프 관세에 운송비 3배 급등까지 '삼중고'
물류 비용도 미국산 원유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원유를 실어오려면 중동 지역보다 8~12주 더 걸리며, 최근 몇 년간 운임 비용이 3배나 뛰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한국산 수입품 25% 관세 조치까지 더해져 미국 원유 가격 경쟁력은 더욱 약해졌다. 미국산 원유에 어느 정도 가격 할인이 있어도 이런 물류 부담으로 비용 이점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 대신 인도와 일본 등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24년 미국 원유 수출량은 하루 평균 410만 배럴을 기록했으며, 특히 인도는 정유 부문을 늘리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는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같은 다른 터미널을 통해 석유 공급 경로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며 기존 공급망의 회복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미국이 관세만으로 에너지 교역 흐름을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재생에너지와 선택 수입 혼합 전략 모색
지정학적 불안정도 한국의 에너지 공급 전략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에너지 공급원을 다양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설비 제약 때문에 기존 공급업체와 관계를 완전히 끊기는 현실상 어렵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국산 원유 수입을 골라서 늘리는 동시에 지속가능항공연료(SAF) 생산을 위한 폐식용유 등 재생 가능 원료 투자를 늘리는 혼합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440억 달러(약 60조9700억 원) 규모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받는다. 미국은 이를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한 지정학적 생명선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한국의 참여는 국내 정제능력 제약으로 여전히 신중한 모습이다.
한편 투자업계에서는 변화하는 에너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업들에 주목하고 있다. 에너지 트랜스퍼(ET)와 엔터프라이즈 프로덕츠 파트너스(EPD) 같은 미드스트림 업체들이 미국 LNG 수출과 지역 정유 수요 증가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한국이 전기차 배터리 소재와 SAF 생산으로 바뀌면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같은 기업들도 특수화학 분야에서 성장 기회를 맞을 것으로 평가된다. 에너지 선택 SPDR 펀드(XLE)와 뱅가드 에너지 상장지수펀드(ETF)(VDE) 같은 에너지 펀드들도 엑손모빌과 셰브론 등 미국 에너지 기업들의 정책 중심 수출 변화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