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기업 인텔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정부 주도 산업정책’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2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최근 인텔에 대한 111억 달러(약 15조3000억 원)의 칩스법 보조금과 각종 지원금을 주식으로 전환해 인텔 지분 9.9%를 확보했다. 다만 상무부는 이사회 의석은 얻지 못했으며 일부 안건에 대해 독자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만 갖는다.
◇정부 주도 산업정책이란
◇주주 권리 약화·CEO 교체 압박 논란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의 사퇴를 공개 요구한 직후 이뤄져 논란을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인텔 CEO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100억 달러를 내줬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개인투자자이자 주주운동가인 제임스 맥리치는 “대통령이 CEO를 압박해 회사의 10%를 가져가는 선례는 매우 위험하다”면서 “사실상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으면 회사 지분을 빼앗길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지적했다.
인텔의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이번 계약은 기존 주주들의 지분 희석과 의결권 축소를 초래하며, 해외 규제 위험도 수반한다. 탄 인텔 CEO는 “자금이 꼭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소프트뱅크는 트럼프 발표 사흘 전 인텔에 20억 달러(약 2조7600억 원)를 투자했다.
◇신용등급 개선 효과 없어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이번 거래가 인텔의 신용등급인 BBB를 개선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BBB는 투기등급 바로 위다. 유동성은 확보되지만 반도체 수요 회복에는 직접적 효과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인텔 주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 CEO 사퇴를 요구한 지난 6일 20.41달러에서 15일 24.56달러까지 상승했으나 계약이 공개된 이후인 27일에는 24.35달러로 1% 하락 마감했다.
◇"국가와 기업 이익 충돌 가능"
미국 기관투자자협의회(CII)의 로버트 매코믹 전무는 “정부 지분 보유는 공장 입지, 구조조정, 해외 진출 등 의사결정에서 국가와 기업의 이해가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의 사회책임투자사 니아 임팩트 캐피털의 크리스틴 헐 최고투자책임자(CIO)도 “정부와 민간 부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번 조치가 행동주의 펀드의 압박으로부터 인텔을 방어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다른 기업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지분 투자를 확대한다면 사실상 ‘국가 자본주의’로 가는 위험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유럽·아시아는 이미 보편적 모델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미국에선 이례적이지만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국가가 주요 기업 지분을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일 니더작센주는 폭스바겐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한국·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도 수십 년 전부터 반도체 산업을 국가전략으로 키워왔다.
UBS의 리처드 하더그리 부회장은 “이탈리아·프랑스·일본 등은 이미 40~50년간 반도체 산업을 국가정책 차원에서 관리해왔다”면서 “미국의 이번 조치는 오히려 늦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2008~2009년 금융위기 당시 정부가 일시적으로 민간 기업 지분을 확보했던 사례와 달리 이번처럼 정상 기업에 대한 장기적 소유권 개입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