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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러시아 극동, '중국화' 가속…위안화 결제 95% 돌파, 경제 종속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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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러시아 극동, '중국화' 가속…위안화 결제 95% 돌파, 경제 종속 심화

인구 175만명 유출된 시베리아, 모스크바 대신 베이징 의존도 급상승
중국이 군사 점령 대신 경제 침투를 통해 러시아 극동을 사실상 장악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이 군사 점령 대신 경제 침투를 통해 러시아 극동을 사실상 장악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미지=GPT4o
중국이 군사 점령 대신 경제 침투를 통해 러시아 극동을 사실상 장악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에포크 타임스는 지난달 26(현지시각) 러시아 극동에서 중국어 간판이 급증하고 양국 간 무역의 95% 이상이 위안화로 결제되는 등 중국 영향력이 크게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경제 인프라로 뿌리내린 중국의 영향력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극동의 블라고베셴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 거리에는 중국어 간판과 메뉴, 교통 표지판이 급증했다. 지난해 말 블라고베셴스크 지역 주민들은 중국어로만 제작된 새로운 시내 방향 표지판을 촬영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는 20226월 개통된 블라고베셴스크-헤이헤 도로 교량과 같은 해 11월 개통된 통장-니즈네레닌스코예 철도 교량 등 새로운 사회기반시설이 구축되면서 가속화했다. 이들 교량은 아무르강을 "해자에서 주요 도로"로 바꿔 사람과 목재, 광석, 소비재가 양방향으로 이동하게 했다.

금융 부문에서는 위안화가 지배 지위를 차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 제재가 시작된 뒤 러시아-중국 무역의 95% 이상이 위안화 또는 루블로 결제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양국 무역량은 전년 대비 9% 줄어든 10648000만 달러(148조 원)를 기록했으나 위안화 결제 비중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했다. 서방 자동차 브랜드들이 제재 뒤 러시아에서 철수하면서 중국 자동차가 올해 상반기 러시아 시장의 55~57%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60%에서 소폭 줄었으나 여전히 과반을 넘는 수준이다.

◇ 자원 부국 극동, 인구 유출로 취약성 심화


러시아 극동은 바이칼 호수에서 태평양까지 500만 평방마일(1300만㎢)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으로 러시아 영토의 77%를 차지한다. 이 지역에는 동시베리아-태평양(ESPO) 석유관과 시베리아의 힘-1 가스관을 통해 중국으로 직접 공급되는 막대한 에너지 자원이 매장돼 있다.

러시아 천연자원부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올해 2월 기준 금, 팔라듐, 희토류 등 29개 광종에 걸쳐 총 65800만 톤의 광물이 매장돼 있다. 특히 시베리아는 자동차 촉매와 전자제품에 필수인 전 세계 팔라듐의 절반 이상을 공급한다.

수산업도 풍부하다. 오호츠크해와 태평양 연안에서는 연어, 명태, 게 등이 생산되며, 러시아 선단은 올해 2월까지 명태만 33만 톤 이상을 어획했다. 과학자들은 내년 242만 톤의 할당량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심각한 인구 유출을 겪고 있다. 1991년 뒤 러시아 극동은 인구의 4분의 1 이상을 잃었으며, 2010년대에는 약 800만 명에서 약 600만 명으로 줄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1990년에서 2010년 사이에만 175만 명이 줄었다.

모스크바가 수십 년간 이 지역을 방치한 탓에 중앙집권 계획의 붕괴로 심각한 경제 혼란과 극심한 인구 이탈을 불렀다. 많은 현지인들은 모스크바가 서부 지역을 우선시하고 자원이 풍부함에도 극동을 외딴 변두리로 취급한다고 불평한다. 높은 생활비, 혹독한 기후,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도시로 서쪽 이주하는 제한된 일자리 기회 같은 문제가 악화하고 있다.

◇ 일방 의존관계로 변질된 러시아-중국 관계


보도는 이 같은 현상이 중국의 장기 전략에 부합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동부는 미국 해군력이 공급을 차단할 수 있는 말라카해협 같은 해상 취약성을 우회해 석유, 가스, 금속 등 육로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한다.

특히 러시아는 위안화 국제화의 실험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양자 무역의 95%가 현지 통화로 이뤄지면서 일대일로 파트너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 의존성 확대는 중국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져 공식 주권을 보존하면서도 조건을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중국이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건설을 지연시키면서 모스크바가 가격 수용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유럽 시장 접근이 차단된 상황에서 러시아의 협상력은 더욱 약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자연스러운 동맹국이 아니다. 1960년대 중국-소련 분열은 1969년 우수리강 전투에서 절정에 이르렀고, 모스크바는 당시 핵 옵션까지 검토했다. 러시아는 식민지 개척자로서 동쪽으로 확장했으나, 중국은 불평등한 조약을 통한 청나라 시대 영토 손실을 기억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미국의 소설가 톰 클랜시는 2000년 소설 '곰과 용'에서 현재 상황을 예견했다. 이 소설에서 중국은 자원이 필요해 시베리아를 군사 침공한다. 클랜시는 시베리아가 엄청난 자원을 가졌고, 중국이 이를 노리며, 러시아가 이 둘 사이에서 흔들린다는 큰 그림은 정확히 봤다. 그러나 클랜시는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지는 잘못 예상했다. 소설에서는 탱크와 군대로 침공하지만, 실제로는 계약서와 돈으로 서서히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파트너십은 러시아가 서방에서 고립된 상황에서 나온 현실적 타협이다. 그래서 이는 부서지기 쉽고 불평등한 관계라는 분석이다.

이 매체는 러시아 극동의 중국화 해결책으로 '평화를 위한 회랑' 구상을 제시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휴전을 지킬 조건으로 러시아 동부의 팔라듐, 티타늄 같은 자원을 일본과 한국에 제한 수출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돈 거래는 제3자가 관리하는 중간 계좌를 통해 이뤄져 러시아가 약속을 어기면 언제든 거래를 중단할 수 있다. 러시아는 중국 외에 다른 구매자를 확보해 중국에만 의존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일본과 한국은 안정된 광물 공급처를 확보해 공급망을 튼튼히 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