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중국 견제 속 한국에 새 경쟁자로 등장
일본, 1990년대 50% 점유율에서 급락...5500억 달러 투자해 미국과 손잡기
일본, 1990년대 50% 점유율에서 급락...5500억 달러 투자해 미국과 손잡기

힌리치재단이 지난 2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 '조선업이 트럼프 2.0 시대에 미·일 관계를 다시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에 따르면 중국·한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린 일본 조선업이 미국 해군력 재건의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 중국, 22년 새 조선업 점유율 8배 급증... 일본은 "규모의 경제" 한계 봉착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조선업은 1956년 유럽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 기준 세계 1위 조선국이 된 뒤 199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 건조량의 약 50%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시점부터 중국과 한국 조선업이 막대한 국가 보조금, 보호주의 정책, 규모의 경제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 시작했다.
2001년 세계 조선 시장 점유율이 6%에 불과했던 중국은 2023년 현재 50%로 치솟았다. 중국의 '군민 융합' 정책에 따라 조선소들이 상업 선박과 해군 함정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게 됐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중국선박집단공사(CSSC)는 100개 이상의 자회사를 거느리며 전 세계 상업용 조선 시장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대형 조선 기업들도 수직 통합과 정부 지원 자금을 활용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특수 선박 등 주요 시장을 장악해왔다.
이런 가운데 일본 조선업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새로운 선박 주문이 줄어들면서 일본 조선소들은 가격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앞으로 주문이 들어올지 확실하지 않아 조선소들이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설비 투자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조선업 인력이 고령화되고 전문 기술자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
◇ 미국 조선업 쇠락 심각... 18억 달러 정비 적체에 상업 조선은 "무시할 수준"
미국 조선산업은 장기간 쇠퇴 상태다. 수십 년간 투자가 부족하고, 규제가 복잡해지고, 국가가 조선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한때 강력했던 조선소들이 무너졌다. 현재 18억 달러(약 2조51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만성 정비 적체가 미 해군 함대를 괴롭히고 있다. 반면 미국 상업용 조선업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주요 조선소들은 오래된 장비와 줄어드는 숙련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어 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려운 상태다. 미국 항구 간 화물 운송은 반드시 미국이 건조한 선박으로만 해야 한다는 1920년 존스법 때문에 미국 조선소들은 독점 지위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이런 보호 정책이 오히려 미국 조선업의 해외 진출을 막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 결과 1981년 미국 국적 항공사에 대한 연방 보조금이 줄어든 뒤 지난 40년 동안 미국에서 건조된 거의 모든 상선은 국내 항로에서만 운항했다. 따라서 필라델피아와 샌디에이고에 있는 두 개의 상업용 조선소는 비용을 줄이거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을 거의 받지 않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백악관에 조선 전담 사무소를 새로 만들어 조선업 살리기에 나섰다. 의회도 국내 투자를 늘리고 잃어버린 조선 능력을 되찾기 위해 세금 혜택과 각종 지원책을 담은 '미국 선박법(Ships for America Act)'을 발의했다.
◇ 이시바, 미국에 5500억 달러 투자하며 "일-미 조선 살리기 기금" 제안
이시바 정부는 워싱턴과의 협력을 늘리기 위한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5500억 달러(약 767조 원)를 투자하는 미·일 전략무역투자협정 협상에서 일본은 특별한 제안을 했다. 새로운 미국 조선소 건설, 기존 미국 조선소 현대화, 일본이 미국에서 LNG 운반선과 자동차 운반선 건조를 직접 지원하는 '일-미 조선 살리기 기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본 국내에서도 이시바 총리는 경제안보촉진법을 활용해 자국 조선소 복구, 기술 개발, 지원 시설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는 주로 미국 해군 함정의 정비와 수리, 점검을 더 잘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일본 최대 조선소인 이마바리는 지난해 6월 일본 2위 조선소인 재팬 해양유나이티드(JMU) 지분을 30%에서 60%로 늘렸다. 인수 이유에 대해 시장 발표에서 "이마바리 조선과 JMU가 서로 장점을 살려 중국, 한국과 경쟁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지금까지 일본 조선소는 요코스카와 사세보 기지에서 미 해군 함정 수리와 보급 지원을 하는 제한된 역할만 해왔다. 하지만 법적 제약 때문에 본격적인 협력으로 확대되지 못했다.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다. 미 해군이 처음으로 일부 함정을 미국 밖 항구에서 개조하는 것을 허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 한국, 이미 미국과 '마스가' 프로젝트로 협력 중... 일본과 경쟁 격화 예상
한국 조선업계는 이미 트럼프 정부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통해 협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한국에서 선박을 사고, 한국이 미국에서 우리 노동자를 써서 선박을 만들게 하겠다"며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에 힘을 실었다.
미국 정부는 이미 자국 조선업을 정상화하는 데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미 해양 지배력 강화' 행정명령 8조를 통해 동맹국 조선소들이 미국에 투자할 수 있도록 모든 혜택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미국 상무부가 주도해 90일 안에 나올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조선업이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지난해 7월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이 노력은 즉시 성과로 이어졌다. 존 펠란 미국 해군장관과 러셀 보트 백악관 관리예산국장이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방문한 지 약 2시간 후인 7월 30일, 한국과 미국이 관세 협상에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조선업이 쇠퇴한 미국이 해군 목표 물량을 달성하기 어려운 만큼 동맹국과의 협력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과 일본 간 조선 협력은 경제, 안보, 외교가 한 곳에서 만나 세 분야 모두에서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드문 경우"라며 "조선업이 제대로 추진된다면 앞으로 10년 동안 미·일 동맹을 다시 단단하게 묶는 분야가 될 수 있다. 이는 관세와 강경 대화, 거래 정치의 시대에도 공통된 전략 이익이 여전히 두 나라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