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 이탈 가속화...인도·중국 등 경쟁국 수혜, 관세 정책과 맞물려 공급망도 혼란

클린테크니카는 지난 22일(현지시각) "이번 조치가 미국의 미래를 축소하는 10만 달러짜리 실수"라고 보도했으며, 가디언도 같은 날 "경제학자들이 미국 경제 성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10만 달러 비자료로 스타트업 '인재 가뭄' 우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행정명령을 통해 H-1B 비자 신청 수수료를 기존 1665달러(약 230만 원)에서 10만 달러로 60배 올린다고 발표했다. 백악관 대변인 테일러 로저스는 CNBC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근로자를 우선에 두겠다고 약속했으며, 이 상식에 맞는 조치는 기업들이 시스템을 남용하고 임금을 끌어내리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조치는 특히 스타트업 분야에 치명타를 줄 것으로 보인다. 클린테크니카는 "빠듯한 예산과 초기 단계 벤처캐피털 자금으로 운영하는 스타트업들은 이런 추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인도에서 전문가 한 명을 데려오려는 스타트업은 급여와 복리후생비를 지급하기도 전에 추가로 10만 달러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시민권·이민서비스국(USCIS)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아마존이 1만4000명으로 H-1B 비자 보유자가 가장 많았으며, 마이크로소프트·메타·애플·구글이 각각 40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고 CNBC가 보도했다.
투자은행 베렌버그의 아타칸 바키스칸 경제학자는 "기업들이 외국 인재를 유치하는 데 매우 비싼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고, 일부 유학생들을 졸업 후 출국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두뇌 유출이 생산성에 심각한 부담을 줄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베렌버그는 올해 초 2%였던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1.5%로 낮췄으며, 바키스칸 경제학자는 "트럼프가 양보하지 않는다면 1.5% 전망도 곧 낙관으로 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H-1B 프로그램은 전문 분야 임시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해마다 6만5000개 비자를 제공하며, 고급 학위 소지자를 위해 추가로 2만 개를 더 준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인도·중국으로 향하는 세계 인재
H-1B 비자 수수료 급등으로 가장 이득을 볼 나라는 인도로 꼽힌다. 지난해 승인한 H-1B 비자의 71%가 인도인에게 나갔으며, 역사를 보면 H-1B 비자 수혜자의 65~75%가 인도 출신이었다고 클린테크니카는 전했다.
인도 상무부 장관 피유시 고얄은 지난 21일 "미국도 우리 인재를 조금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그에 대해 이의가 없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인도 정부는 또한 비자 수수료가 10만 달러로 오르면 미국에서 일하던 인도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가족을 미국으로 데려올 수 없게 되어 가족이 떨어져 살게 되는 등 "가족 해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클린테크니카는 "미국 사무소에서 근무했을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대신 방갈로르나 하이데라바드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며 "외국 직원을 미국으로 전근시키는 데 의존했던 다국적 기업들은 대신 인도 캠퍼스를 늘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VC펀드 20VC 창립자 해리 스테빙스는 지난 21일 소셜미디어에 "유럽 혁신에 가장 큰 위협은 인재 손실이었는데, 트럼프가 유럽에 최대 기회를 안겨줬다"고 CNBC가 보도했다.
관세 정책과 맞물린 '이중 타격'
H-1B 비자 수수료 급등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맞물려 미국 기업들에게 이중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다. 인더스트리위크는 지난 23일 "트럼프의 관세 계획이 미국 공급망에 미치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90개국 이상에서 들여오는 물건에 관세를 매기면서 기업들이 늘어난 무역 비용과 높아진 불확실성에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농업 장비 제조업체 존 디어는 관세 정책의 직접 피해 사례로 꼽힌다. 인더스트리위크에 따르면 존 디어는 순이익 26% 감소와 매출 9% 하락을 기록했으며, 이는 관세 때문에 철강과 알루미늄 생산비용이 늘어나고 농민들의 지출이 줄어든 탓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보복관세로 미국 콩 수출도 급감했다. 인더스트리위크는 "역사를 보면 미국 콩을 가장 많이 사던 중국이 최대 34%의 관세를 매겨 구매량이 급격히 줄었다"며 "2025년 중국은 가을 수확물에 대해 신규 주문을 전혀 하지 않아 콩 가격이 부셸당 9달러(약 1만2500원) 아래로 급락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중국이 미국의 친환경 에너지 분야 지원 축소로 오히려 더 큰 이득을 볼 것으로 내다봤다. 클린테크니카는 "미국이 배터리, 풍력, 태양광 산업에 대한 장기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면서 중국 공장들이 가격 경쟁에서 더욱 유리해졌다"며 "미국에서 계획된 대형 배터리 공장(기가팩토리) 건설이 늦어져도, 중국에서 만든 제품 수출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정책연구재단 스튜어트 앤더슨 전무이사는 CBS뉴스에 "이 비자 계획이 미국 기업들이 특히 연구개발 같은 전문 분야에서 일자리를 해외로 옮기도록 부추긴다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이체뱅크의 짐 리드 시장전략가는 "새로운 신청 수수료가 주말 동안 이에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불확실성을 불러일으켰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클린테크니카는 "이러한 변화가 일단 일어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 미국의 구조상 문제"라며 "인재 풀은 환영받는 곳에서 밀도를 높이고, 투자자들은 장기 규칙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본을 나누는데, 믿음은 한번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