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 유로 배터리공장 건설에 전례없는 인력 파견...노스볼트 파산으로 중국 의존 심화

이는 유럽 최대 경제국에서 벌어지는 중국 산업 사업 중 전례 없는 규모의 인력 투입으로, 유럽이 중국 전기차 기술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0억 유로 공장 건설에 전례 없는 중국 인력 투입
CATL은 스텔란티스와 반반씩 투자하는 합작사업을 통해 스페인 사라고사 근처 피게루엘라스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공장부지는 축구장 100개 크기로, 내년 말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CATL은 현지 관계자들에게 공장 건설과 장비 설치를 위해 모두 2000명의 자국 일꾼을 교대로 보내겠다고 알렸다고 FT는 전했다. 이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에서 벌어진 중국 산업 사업 중 가장 큰 규모의 인력 투입이다.
스텔란티스의 유럽 노사협의회 간사인 호세 후안 아르세이스는 "중국 쪽이 기술을 우리와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건설과 설치를 위해 2000명의 일꾼을 데려오는 까닭 중 하나"라고 말했다.
CATL은 공장이 완성되면 주로 스페인 일꾼 3000명을 뽑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기술 전수에는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부지 근처 페드롤라 지역의 마누엘라 베르헤스 시장은 "그들(CATL)은 산업 스파이의 위협에 강박적"이라며 정보 공유를 꺼리는 중국 쪽 태도를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댐, 철도, 항구를 지으면서 수만 명의 중국 일꾼을 보냈지만, 현지 고용을 늘려야 호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CATL은 독일에 지은 배터리 공장에서 현지 일꾼을 뽑아 훈련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헝가리에도 70억 유로(약 11조 5500억 원) 규모의 더 큰 공장을 짓고 있는데, 여기서도 해외에서 온 전문 일꾼을 얼마나 쓸지는 밝히지 않았다.
기술 보호 걱정 속 중국의 '요새화' 전략
전문가들은 CATL의 대규모 인력 파견이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요새'로 바꾸는 한편, 나머지 세계를 중국 제조업에 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유럽연합(EU) 안보연구소의 요리스 테어 경제안보 분석가는 "중국 기업들이 지적재산권을 엄격히 보호하는 까닭은 부분적으로 대만을 둘러싼 전쟁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도 중국 경제가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테어 분석가는 "시진핑은 중국을 자급자족하는 요새로 만들면서 동시에 나머지 세계를 중국 제조업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려고 한다"며 "CATL을 포함한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핵심 기술을 해외로 보내지 않을 강한 동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CATL은 올해 1월 중국군과 연결된 기업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미국 국방부 명단에 올랐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올해 초 스페인 정부에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이 "스스로 목을 베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노스볼트 파산으로 유럽 배터리 자립 좌절
유럽이 중국 배터리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진 것은 지난 3월 스웨덴의 노스볼트가 망하면서 더욱 빨라졌다. 노스볼트는 한때 중국 배터리 업체들과 겨룰 수 있는 유럽의 최고 희망으로 여겨졌지만, 생산 차질과 돈 부족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
노스볼트는 지난 3월 12일 "자본 비용 오름, 지정학적 불안정, 공급망 차질, 시장 수요 변화 등 복합적 어려움에 부딪혔다"며 스웨덴에서 파산을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2016년 창립 뒤 140억 달러(약 19조 7000억 원) 이상을 투자받았지만, BMW와의 20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 계약 취소 등 잇따른 타격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
노스볼트가 망하면서 유럽은 2030년까지 계획된 배터리 생산능력의 13%를 잃게 됐다. 이로 인해 유럽은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업체와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등 아시아 배터리 제조업체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CATL은 현재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38%를 차지하며 확실한 1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전체적으로 전 세계 시장의 67.1%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페인 정치권 환영 속에서도 기술 종속 우려 확산
CATL 사업은 스페인 주요 정당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지난 2년 반 동안 시진핑 주석을 세 차례 만나며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힘써 추진해왔다. 보수 야당인 국민당(PP)도 정부 정책에 대부분 반대하면서도 이 배터리공장 사업만큼은 지지하고 있다.
아라곤 주정부의 마르 바케로 부주지사(국민당)는 "스페인과 중국 간 관계는 이런 사업에 매우 중요하며, 중국이 높은 수준의 혁신과 기술을 갖춘 나라로서 다른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극우 정당인 복스는 이 사업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알레한드로 놀라스코 복스 아라곤 주의회 대표는 "우리는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며 "중국이 기술과 돈을 가져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라곤 자동차산업협회의 베니토 테시에르 회장은 "우리는 앞서가는 자리를 차지했었지만,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고 이제 우리 스스로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중국 기술 도입이 어쩔 수 없다고 인정했다.
스페인 정부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이 앞서가는 나라"라며 "우리는 그들이 투자하고 함께 생태계를 만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피게루엘라스의 루이스 베르톨 시장은 "실용적이어야 하고 투자의 색깔을 따질 때가 아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CATL의 스페인 진출은 이미 독일과 헝가리에 만든 유럽 배터리 생산기지를 늘리는 차원이다. 독일 공장은 지난해부터 생산을 시작했으며, 헝가리에는 70억 유로 규모의 더 큰 공장을 짓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이 사업으로 EU의 차세대 기금에서 2억 9800만 유로(약 4900억 원)를 지원받는다.
중앙유럽아시아연구소의 마르틴 셰베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개별 국가들이 중국 투자자들에게 현지 조달이나 고용 할당량을 요구하려 한다면 투자자들을 쫓아버릴 위험이 있다"며 "EU 차원의 규정이 필요하다. 개별 국가에 맡겨두면 서로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