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 자회사 통합 지주사 설립, 흩어진 투자 역량 결집
단순 로봇 넘어 산업 현장 지능화…스마트 팩토리 정조준
단순 로봇 넘어 산업 현장 지능화…스마트 팩토리 정조준

소프트뱅크의 상징이었던 로봇 '페퍼'의 시대가 저물고, 인공지능(AI)을 심장으로 삼은 거대한 로봇 제국 건설의 막이 올랐다고 닛케이 아시아가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소프트뱅크 그룹의 손정의 회장이 “초지능(AI) 시대에는 실체를 지닌 로봇이 인간과 함께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비전 아래, 소프트뱅크 그룹이 ‘AI 중심 로봇 통합 플랫폼 기업’으로의 대대적인 전환을 선언했다. 지난 10년간 기술 상징물 역할을 넘어, AI가 이끌 로봇 산업의 큰 변화를 내다보며 사업 구조를 근본부터 개편하고 야심 찬 미래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산업 현장의 틀을 바꾸려는 거대한 구상의 시작을 알린다.
이러한 전략 변화의 신호탄은 지난 9월 열린 '2025 오사카·간사이 세계 박람회'에서 쏘아 올렸다. 소프트뱅크는 이 자리에서 4m 높이의 휴머노이드부터 고양이 로봇까지, 크기와 형태가 전혀 다른 5종의 로봇을 선보였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로봇이 단 하나의 통합 소프트웨어, 즉 단일 운영체제(OS)를 바탕으로 완벽하게 움직였다는 점이다. 이 시스템을 개발한 소프트뱅크 자회사 아스라테크의 요시자키 와타루 이사는 "PC 한 대로 이렇게 다양한 로봇들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며 기술적 자신감을 보였다.
‘페퍼’ 시대 넘어…AI로 통합하는 로봇 군단
지주사 체제로의 통합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이뤄졌다. 올해 6월 말까지 총 13개 로봇 관련 회사를 소프트뱅크 로보틱스 그룹 산하로 편입했다. 여기에는 휴머노이드와 물류 로봇의 대표주자인 소프트뱅크 로보틱스, 미국 물류 자동화 전문기업 버크셔 그레이 등이 포함된다. 또한, 비전펀드 2호가 투자한 산업용·휴머노이드 로봇 신생기업 7곳이 새로 합류하며 막강한 기술력을 갖췄다. 독일의 산업용 로봇 강자 어자일 로보틱스와 노르웨이의 휴머노이드 로봇 신생기업 원엑스 테크놀로지스 등이 대표적이다.
소프트뱅크 그룹의 고토 요시미쓰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개편의 목적을 명확히 했다. 그는 "로봇 관련 투자를 통합해 성장 계획과 투자금 회수 경로를 명확히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소프트뱅크 로보틱스 그룹은 앞으로 그룹 내 로봇 사업 확장을 이끄는 명실상부한 '지휘 본부' 역할을 맡는다.
산업 현장 파고드는 ‘로봇 통합자’로 진화
이는 2014년 처음 공개된 '페퍼'의 시대와는 결이 다른 움직임이다. 본래 “움직이는 휴대전화 매장 직원”으로 기획됐던 페퍼는 점차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의 하스미 카즈타카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페퍼는 단순한 장치가 아닌, 기업 가치를 높이는 상징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2015년 출시된 뒤 10년이 지난 지금, 페퍼는 대화형 AI(챗GPT 등)를 가슴의 태블릿에 탑재해 자연스러운 대화와 학습이 가능해졌고, 교육, 요양 서비스, 고객 응대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러나 소프트뱅크 로보틱스 그룹이 그리는 미래는 페퍼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룹은 스스로를 물류, 외식업 등 여러 산업 현장의 문제를 로봇 기술로 해결하는 '로봇 통합사업자'로 재정의했다. 구체적인 예로는 자동 지게차와 포장 로봇 체계를 갖춘 스마트 물류창고, 스스로 움직이는 배달 로봇과 주문 정보 분석을 활용하는 음식 서비스 등을 들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율주행차나 태양광과 연계한 로봇 시스템 개발까지 구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AI는 운송 횟수, 이동 경로 같은 방대한 운영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며 전체 현장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지능형 로봇망의 핵심 두뇌 역할을 맡는다.
지주회사의 사업 영역은 로봇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AI, 로봇, 정보, 사회기반시설을 엮는 ‘초융합 사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소프트뱅크가 추진하는 'AI 기반 산업단지'라는 더 큰 그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AI 사회기반시설 투자 계획인 '스타게이트'와 연계해 자동화 공장을 세우며, 이는 제조업을 자국으로 되돌리려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도 맞물려 강력한 동반 상승 효과를 낼 전망이다.
이러한 큰 그림의 정점에는 손정의 회장이 있다. 그는 지난 6월 주주총회에서 “초지능 시대에는 AI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물리적 존재, 곧 로봇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 인류는 모든 면에서 바뀔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시장 전망도 밝다. 정보 분석 기관인 마켓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전 세계 스마트 공장 시장은 2024년부터 2033년까지 130% 커져 2343억 달러(약 330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기 이익 회수보다 장기 기술 생태계를 만드는 데 힘쓰는 만큼 풀어야 할 숙제도 뚜렷하다. SBI 증권의 쓰루오 미쓰노부 연구원은 "로봇 구상은 실현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큰 계획"이라며 "성공은 소프트뱅크 그룹이 여러 기업을 끌어들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 조언했다. 시장에 ‘페퍼 다음’의 뚜렷한 수익 사례를 보여주고, 다양한 기술 자산을 아우르는 강력한 지도력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관건은 소프트뱅크 그룹이 '포스트 페퍼' 시대에 맞는 구체적인 성공 사례를 시장에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전 세계적인 AI 열풍에 힘입은 로봇 사업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소프트뱅크의 주가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