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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EU 동부 포퓰리즘 급부상에 러시아 위협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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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EU 동부 포퓰리즘 급부상에 러시아 위협 가중

러시아, 2028년 NATO 회원국 에스토니아 침공 시나리오 현실화 우려
체코·헝가리·슬로바키아 친러 포퓰리스트 집권...독일 전문가 "발트 3국 점령" 구체적 경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주 훈련장에서 열린 러시아-벨라루스 합동 군사 훈련에 참석해 군사 장비 전시회를 견학하고 있다. 사진=AF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주 훈련장에서 열린 러시아-벨라루스 합동 군사 훈련에 참석해 군사 장비 전시회를 견학하고 있다. 사진=AFP/뉴시스
유럽연합(EU) 동부 회원국들이 잇따라 친러시아 성향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을 선택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차질을 빚고 있다.

러시아가 유럽 곳곳에서 드론 공격과 해저 케이블 파괴 등 도발을 강화하는 가운데, 독일 전문가는 러시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발트 3국 침공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충격을 주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8(현지시각) 보도했다.

체코 총선서 친러 바비시 승리...헝가리·슬로바키아와 'EU 동맹' 형성


체코에서 지난 4일 치러진 총선에서 억만장자 출신 안드레이 바비시 전 총리가 이끄는 포퓰리스트 정당 ANO(예스당)가 승리했다. 71세인 바비시는 선거 기간 미국 공화당의 빨간 모자를 연상시키는 체코판 'MAGA' 모자를 쓰고 '체코 우선'을 내걸며 친서방·친우크라이나 성향인 페트르 피알라 보수 총리가 이끄는 연정을 겨냥했다.

바비시는 체코가 주도해 유럽 포탄의 대부분을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프로그램 중단을 공약했다. 그는 "체코 엄마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모든 것을 준다"고 현 정부를 비판했다. 다만 ANO는 전체 득표의 3분의 1에 그쳐 단독 과반에 실패했고, 연정 협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바비시는 우크라이나 이민자 추방을 주장하는 극우 자유직접민주주의당, EU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그린딜'에 반대하는 신생 자동차운전자당 등과 연정 협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비즈니스스쿨 HEC 파리의 알베르토 알레만노 EU ·정책 교수는 "이는 미국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반항하는 EU 회원국들 사이 전례 없는 이념 결속과 맞물린다""최근 사태는 EU의 정치 균형을 더욱 우파로 기울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헝가리 오르반 "EU 붕괴 중" 주장...210억 달러 지원금 삭감당해


이웃 헝가리에서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반EU·반우크라이나 수사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27개국으로 구성된 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친러 성향인 오르반은 유럽 지도자들이 모스크바를 겨냥한 "전쟁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비난하며, 우크라이나의 EU 정식 가입 협상 개시를 거부하겠다고 공언했다.

오르반은 지난달 열린 덴마크 정상회담에서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의장이 제안한 우크라이나 가입 협상 신속 추진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계획은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EU'붕괴'하고 있어 헝가리는 유로화를 채택해서는 안 된다""헝가리는 지금보다 EU와 운명을 더 가깝게 묶어서는 안 되며, 유로화 채택은 가장 가까운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오르반은 2010년부터 스스로를 "반자유주의적 기독교 민주주의" 옹호자로 자리매김하며 성소수자 퍼레이드 금지, 사법부 독립성 약화, 언론과 학문의 자유 제한 등을 추진해왔다. 이 때문에 EU는 헝가리에 대한 210억 달러(29조 원) 지원금을 중단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로베르트 피초 총리가 베이징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났다. 이 때문에 유럽의 주요 중도좌파 정당이 슬로바키아 지부인 SMER당을 이달 제명할 것으로 보인다. 피초는 지난 7TV 토론에서 "우리 목표는 러시아의 패배가 아니라 가능한 한 빨리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것"이라며 "EU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쏟는 에너지를 평화에 쏟았다면 전쟁은 훨씬 전에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드마저 흔들...보수 나브로츠키 대통령 당선


한편 폴란드에서는 지난 6월 보수 역사학자 카롤 나브로츠키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우익 법과정의당의 지지를 받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얻은 나브로츠키는 '폴란드인을 위한 폴란드' 구호로 성공적인 선거전을 펼쳤다.

나브로츠키는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범죄에 대해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불법 이민에 맞서 싸우고 폴란드 화폐를 지키며 EU의 권한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를 강하게 비판하며 최근 푸틴을 "전쟁 범죄자"라고 불렀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드러내며 NATOEU 가입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리투아니아서도 혼란...프랑스·독일 지도력 공백


오래전부터 안정되고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던 리투아니아에서도 지난 주말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예술가들이 거리로 나와 반유대주의 혐의를 받는 포퓰리스트 네무나스 돈당 소속 문화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 당은 올여름 부패 혐의로 사임한 긴타우타스 팔루츠카스 전 총리의 사회민주당이 새 연정 파트너를 찾는 과정에서 정부에 참여했다.

통상 EU가 혼란에 빠지면 창립 회원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안정성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독일은 경제 침체에 빠져 있고, 프랑스는 정치·재정 위기에 처해 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지난달 취임 한 달도 안 돼 사임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국내에서 크게 약화됐고,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아직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누렸던 위상과 영향력을 갖추지 못했다.

알레만노 교수는 "프랑스의 정치 위기는 EU가 가장 큰 도전들에 대응하는 것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지연시킨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군 드론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동북부 하르키우 지역 주거용 건물.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군 드론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동북부 하르키우 지역 주거용 건물. 사진=연합뉴스


러시아, 유럽 전역서 '회색지대 전쟁' 격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면서 유럽 곳곳에서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뮌헨 공항이 드론 때문에 운영을 중단했고, 코펜하겐을 포함한 여러 덴마크 공항과 F-16·F-35 전투기를 배치한 군사 기지가 드론으로 방해를 받았다.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해온 덴마크는 곧 우크라이나 무기 제조업체를 유치할 예정이다. 폴란드와 루마니아도 괴롭히는 드론을 경험했다.

여러 사례에서 신원과 활동을 숨긴 '그림자 선박들'(전 세계로 약 1000척으로 추산)이 유럽의 상업·군사 인프라에 필수인 해저 케이블을 절단한 혐의를 받았다.

지난달 19일에는 러시아 MiG-31 전투기 3대가 에스토니아 영공을 침범했다가 NATO가 배치한 이탈리아 F-35에 쫓겨났다. 올해만 다섯 번째 러시아의 침범이었다.

푸틴의 목적에는 정보 수집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공격받은 국가들이 어떤 군사 대응을 하는지, 얼마나 빨리 대응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또한 서방이 계속해서 우물쭈물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는지도 측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하이브리드' 또는 '회색지대'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뮌헨 연방군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카를로 마살라는 "형용사를 지워라. 이것은 전쟁이다"라고 단언했다.

전문가 "2028년 러시아의 에스토니아 침공" 시나리오 제시


마살라 교수는 최근 119쪽 분량 소책자 '러시아가 이긴다면: 시나리오'를 펴내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즉각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승리가 '단지 시작'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시나리오는 20283, 러시아 2개 여단이 에스토니아 국경 도시 나르바(인구 57000)를 침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민 88%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 도시에 밀수 무기가 공급됐고, 관광객으로 위장한 러시아 군인들이 해안 섬 히우마를 동시에 점령한다는 설정이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우크라이나가 3년 전 중국과 미국의 압력으로 영토 20% 이상을 포기하고 항복했다. 푸틴은 물러나고 47세 후계자가 서방에서 "새로운 고르바초프"로 환영받아 발트 3국 보호 의지가 약해진 상태다.

마살라 교수는 러시아가 1936년 히틀러의 '라인란트 재무장' 전략을 모방할 것으로 봤다. 당시 독일은 공격 의도가 없다고 말하며 비무장 지대를 재무장했고, 서방은 이를 받아들였다. 시나리오에서 러시아는 이민자 선단으로 유럽을 교란하고, 중국은 필리핀과 위기를 조성해 미국의 주의를 분산시킨다.

NATO가 소집되지만, 일부 회원국들은 "에스토니아가 러시아어 사용자 권리를 존중하지 않았다", "러시아 목표는 제한적이다"며 흔들린다. 미국 대통령이 NATO 행동에 반대하고, 극우 정당이 부상한 프랑스와 독일도 주저한다. 결국 러시아의 핵무기가 작은 도시 점령에 대한 재래식 대응을 막는다는 분석이다.

마살라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승리가 단지 시작이라면? 미국 약화의 시작이라면?"이라는 질문으로 돌아간다.

트럼프, 푸틴 도발에 "좋아하지 않는다"만 되풀이


푸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알래스카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에도 트럼프가 요구한 조치들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 트럼프는 "러시아가 이런 조치들을 취하지 않으면 매우 엄중한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푸틴은 무시하고 오히려 우크라이나 공격을 더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휴전에 동의하도록 푸틴을 설득하지 못한 후 모스크바에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러시아산 석유·천연가스 구매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오르반과 피초는 거부했다. 이에 따라 워싱턴에서 크렘린에 새로운 압력이 나올지 의문이 제기된다.

서방이 결단력 없이 우물쭈물 대응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푸틴은, 자신이 유럽 곳곳에서 벌이는 도발 공격에 서방이 약하게 반응할 것을 미리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일련의 공격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브뤼셀 싱크탱크 유럽정책센터의 타베아 샤우만 분석가는 "바비시가 다시 권력을 잡으면 유럽이사회에서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마비시키는 또 한 명의 골칫거리 지도자가 추가될 수 있다""우크라이나 지원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겠지만, 바비시가 어떤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지원 규모나 방식이 재검토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