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트랜지스터 혁신 '리본펫'·후면 전력 공급 '파워비아' 첫 동시 적용
차세대 CPU '팬서레이크' 연말 양산…AI 반도체 주도권·美 공급망 강화 동시 겨냥
차세대 CPU '팬서레이크' 연말 양산…AI 반도체 주도권·美 공급망 강화 동시 겨냥

10년 만의 기술 혁명, 리본펫과 파워비아 동시 탑재
인텔 18A 공정의 핵심은 단순한 회로 선폭 미세화를 넘어선 근본 기술 혁신에 있다. 반도체 공정의 발전은 나노미터 단위로 표시되는 트랜지스터 크기에 좌우된다. 크기가 작을수록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해 성능과 효율을 높일 수 있어서다. 18A는 2나노급 공정으로, 현재 최첨단 기술의 정점에 서 있다.
특히 18A 공정은 업계 처음으로 두 가지 혁신 기술을 상용화 칩에 구현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첫 번째는 '리본펫'이다. 이는 지난 10여 년간 업계 표준이었던 '핀펫(FinFET)' 구조를 대체하는 차세대 트랜지스터 설계다. 기존 핀펫이 3면에서 게이트가 채널을 감싸는 구조였다면, 리본펫은 게이트가 채널의 4면을 모두 감싸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구조를 채택했다. 이를 통해 전류 흐름을 더욱 정밀하게 제어하고 누설 전류를 최소화해 와트당 성능을 극대화한다.
두 번째 핵심 기술은 후면 전력 공급 기술 '파워비아'다. 기존 반도체는 칩 다이(Die)의 앞면에 신호선과 전력선을 함께 배치해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신호 간섭과 병목 현상이 심화하는 문제가 있었다. 파워비아는 전력선을 칩 뒷면으로 완전히 따로 배치해 앞면은 신호선 전용 공간으로 확보하는 혁신 방식이다. 이를 통해 칩에 더 안정이고 효율 높은 전력을 공급해 AI와 같은 고전력 고성능 컴퓨팅 작업에서 일관된 성능을 보장하고 설계 복잡성을 줄여준다. 인텔은 이 두 기술을 두고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리본펫과 파워비아는 평범한 '해마다의' 개선이 아니다. 이는 프로세서 제조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다."
인텔에 따르면 18A 공정은 같은 성능에서 전력 효율을 최고 15% 높이고 전력 소모를 25% 줄이는 효과를 내, 고성능과 에너지 절약을 동시에 이룬다.
축구장 수백 개 넓이…40조원 투입된 첨단 공학의 집약체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의 오코티요 캠퍼스에 자리 잡은 '팹 52'는 인텔 기술 야망을 실현하는 거대한 전초기지다. 인텔의 다섯 번째 대량 생산 공장인 이곳은 1990년대부터 조성된 259만㎡(약 1제곱마일) 넓이의 캠퍼스 안에서도 최신이자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시설로, 그 자체로 첨단 공학 기술의 집약체다.
팹 52는 2021년 말 착공해 4년간 320억 달러(약 45조 원) 이상을 투입한 대규모 사업이다. 건설 과정에서 파낸 흙과 암석의 양은 올림픽 규격 수영장 400개 이상을 채울 수 있는 규모이고, 사용한 콘크리트만 60만 세제곱미터에 달해 인텔은 현장에 자체 콘크리트 혼합 시설을 운영해야 했다. 구조물 보강에는 강철 7만 5000톤 이상을 사용했으며, 미국에서 가장 큰 봉쇄급 청정실(Clean Room)을 포함한다.
이러한 거대한 규모는 18A 공정의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안정적으로 지지하는 데 꼭 필요했다. EUV 장비는 한 대를 옮기는 데 보잉 747 화물기 3대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무게와 크기를 자랑한다. 팹 52는 이런 무거운 장비를 건물 안에서 설치하고 유지보수하기 위해 천장에 이동식 다리형 기중기(브리지 크레인)를 기본으로 갖췄다. 또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4.8헥타르(약 12에이커) 넓이의 자체 물 처리와 재활용 시설을 갖추고, 하루 최고 900만 갤런의 물을 처리한다.
공장 내부 환경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엄격하게 통제한다. 온도, 습도, 공기 구성 성분까지 정밀하게 관리하며, 전용 공기 추출탑이 1분에 6번씩 내부 공기를 순환시켜 일반 병원의 수술실보다 수천 배 더 깨끗한 환경을 유지한다. 방문객과 작업자는 완전한 보호복인 '바니슈트(bunnysuit)'와 장갑, 고글, 덧신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또, 특정 빛 파장이 미세 회로에 미치는 영향을 막고자 내부는 필름 암실과 비슷한 낯선 황록색 조명으로 채운다. 천장에는 수 마일에 이르는 선로가 설치돼 수백 대의 자동화 로봇이 쉴 새 없이 규소판(실리콘 웨이퍼)과 다이를 각 공정 장비로 옮기며 완벽한 자동화 체계를 갖췄다.
팬서레이크·클리어워터 포레스트로 AI 시대 주도권 잡는다
팹 52의 가동은 인텔의 차세대 제품군 확대를 실현하는 신호탄이다. 팬서레이크는 18A 공정으로 양산하는 첫 개인용 컴퓨터 프로세서로, 성능 코어(P-core)와 효율 코어(E-core)를 최대 16개 탑재하고 AI 가속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이어 2026년 상반기 나올 서버용 프로세서 클리어워터 포레스트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환경의 고성능컴퓨팅(HPC) 시장을 겨냥해 최적화했다.
나아가 인텔은 18A 공정을 첨단 3차원(3D) 칩 포장(패키징) 기술인 '포베로스(Foveros)'와 결합해 여러 기능을 가진 칩렛을 하나의 칩처럼 융합함으로써, 고객 맞춤형 칩 설계와 빠른 시장 출시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는 인텔의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인텔은 팹 52를 성공으로 가동해 2026년을 기술 주도권을 회복하는 첫해로 삼겠다는 포부다. 최첨단 공정 기술과 대규모 생산 능력을 결합한 팹 52가 인텔의 미래는 물론,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와 세계 반도체 지형도를 바꿀 주역이 될지 업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