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플리스 붐'의 성공과 실패 되짚으며 '포스트 붐' 대비
'정보제조소매업'과 '개별 점포 경영'으로 지속 성장 모델 구축
'정보제조소매업'과 '개별 점포 경영'으로 지속 성장 모델 구축

실적이 좋을 때일수록 '위기'를 외치던 그가 평소답지 않게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 겸 사장이 지난 9일 2025년 8월기(2024년 9월 1일부터 2025년 8월 31일까지) 결산 발표 기자회견에서 사상 최고 실적을 발표하며 '붐(boom)'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는 "전 세계적인 붐이 오는 것 아닌가. 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이 팔리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현상"이라고 밝혔다. 찬사보다 채찍질로 사내를 독려해 온 그의 경영 방식을 생각하면 드문 발언으로, 이는 단순한 성공의 자축을 넘어 30여 년 전 일본에서 '플리스 붐'을 일으켰던 성공과 그 직후 닥쳤던 실패의 교훈을 일부러 되새기려는 노련한 경영자의 생각이 담겼다고 닛케이가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패스트리테일링이 발표한 25년 8월기 연결 실적은 눈부시다. 매출 수익은 3조 4000억 엔(약 32조 2962억 원)을 넘었고, 연결 순이익은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중국 시장의 부진을 빼면, 북미, 유럽, 동남아시아 등 거의 모든 주요 거점에서 크게 성장했다. 유니클로가 '일본 브랜드의 세계화'라는 오랜 과제를 사실상 이뤘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야나이 회장이 굳이 '붐'이라는 단어를 꺼낸 것은 이 같은 세계적인 성공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과거 일본에서의 성공 방정식을 마침내 세계 무대에서 풀어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사상 최대 실적 이면에 '30년 전 데자뷔'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본 성공에 취해 그 기세 그대로 영국, 중국, 미국 등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유니클로가 무엇을 상징하는 브랜드인지' 해외 소비자에게 뚜렷하게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성공 공식은 해외에서 통하지 않았고, 모든 해외 사업이 철수 직전의 위기에 몰렸다. 이 뼈아픈 실패를 통해 야나이 회장은 "유니클로의 철학을 얼마나 뚜렷하게 알릴 수 있는가"가 세계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임을 깨달았다. 그는 9일 기자회견에서 "'유니클로란 무엇인가'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과거의 실패를 딛고 드디어 브랜드의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했음을 내비쳤다.
현재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야나이 회장은 이미 3년 반 전, 팬데믹 속에서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결연한 뜻을 드러냈다. 당시 그는 "코로나가 끝나면 단숨에 승부를 걸겠다. 사업 방식을 전부 바꿔야 한다. 여기서 뒤처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한 초조함을 내비쳤다. 팬데믹이 오랜 기간 준비해 온 두 가지 핵심 개혁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개혁은 '출점 전략을 다시 살피는 것'이었다. 각국 핵심 도시에 대규모 대표 매장을 열어, 단순히 상품을 파는 공간을 넘어 소비자가 '유니클로의 세계관'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무대로 삼는 전략이다. 두 번째는 2014년부터 착수한 '정보제조소매업'으로의 전환이다. 야나이 회장이 '만든 것을 파는 장사에서 팔릴 것을 만드는 장사'라고 정의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다. 소비자의 자료를 분석해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한발 앞서 기획하고 생산하는 방식으로, 플리스 붐 이전부터 구상했지만 기술의 한계로 이상에 머물렀던 개념이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해 현실이 되면서 현재 세계적인 호황을 이끈 핵심 동력이 됐다.
'붐은 끝난다'…데이터 기반 '개별 경영'으로 돌파구
야나이 회장은 코로나19 위기가 끝나자, 억눌렀던 초조함을 도약의 힘으로 바꿨다. 그런데 그 결과로 얻은 좋은 실적을 그는 왜 하필 '붐'이라고 했을까. 그가 '붐'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붐은 언젠가 끝난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휩쓴 플리스 붐 역시 불과 몇 년 만에 끝났다. 현재의 세계적인 호황이 약 30년 전의 데자뷔가 되지 않으려면, 과거의 교훈을 철저히 되새기고 적용해야 한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그가 내놓은 해법 중 하나가 바로 '개별 점포 경영(個店経営)' 모델 강화다. 과거처럼 모든 매장에서 똑같은 상품을 팔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각 매장이 지역과 고객 자료에 따라 상품 구성을 세밀하게 꾸리고, 점장에게 자율 경영 판단을 맡겨 소비 흐름 변화에 한발 앞서 대응하는 체계다. 본사는 이를 뒷받침할 자료 기반 시설을 제공한다. 모든 점포에 도입된 이 자료 기반 자율경영 체계는 붐의 흐름이 꺾이는 지점을 미리 알아채고 충격을 줄이려는 전략이다.
유니클로가 마주한 질문은 뚜렷하다. 과연 이번 '붐'을 넘어 계속 성장하는 세계적인 리더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올해 일흔여섯 살인 야나이 회장의 나이는 이 숙제가 '야나이 이후' 체제로의 이행과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단순히 후계자를 정하는 것을 넘어, 강력한 창업자의 '개인 중심 경영'에서 '조직 중심 혁신'으로 바꿀 수 있는 튼튼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30년 전 교훈을 잊지 않으려는 노장의 자기 성찰이, 유니클로를 또 한 번의 진화로 이끌지 주목할 만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