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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가치 상승 속 엔화 신뢰도 하락 ‘뚜렷’...안전자산 가치 흔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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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가치 상승 속 엔화 신뢰도 하락 ‘뚜렷’...안전자산 가치 흔들리나

안전자산으로써 엔화의 신뢰도가 뚜렷한 반면, 금과 은의 가치에 대한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외환시장 판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안전자산으로써 엔화의 신뢰도가 뚜렷한 반면, 금과 은의 가치에 대한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외환시장 판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세계 각지를 둘러싸고 경제적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안전자산 중 하나인 엔화의 지위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자산으로써 엔화의 신뢰도가 뚜렷한 반면, 금과 은의 가치에 대한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외환시장 판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11일(현지시각) 안전자산으로 엔화를 사들였던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자 동향이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금융 위기와 지정학적 긴장 등 시장 혼란이 도래할 때마다 엔화를 사들여왔지만, 최근 들어 엔화가 헤지 수단으로서 일관성을 잃어가는 한편 금과 은을 매입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일본이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한편 자국 내 막대한 투자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과 안정적인 정치적 상황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위험 자산이 급격히 하락했을 때 안전 피난처로써 엔화를 선택해 왔다.

그러나 최근 세계 시장에서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편, 일본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부각되면서 엔화 가치 하락이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최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보수파인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의원이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면서 엔화 가치는 지난 9일 153엔을 돌파, 하락세가 가속화됐다.

CNBC에 따르면 10일 장중 한때 엔·달러 환율은 153.27엔까지 치솟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10일에는 일본 재무상의 시장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면서 151.18엔을 기록하는 등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온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나온다.

슈뢰더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아시아 담당 멀티애셋 투자 책임자 콘도 케이코는 “이전 사이클에서는 엔화가 상당히 신뢰할 수 있는 존재였다”라며 “그러나 현재는 신뢰성이 크게 낮아 굳이 헤지 수단으로 삼고 싶은 이유가 없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엔화의 헤지 수단 신뢰도 하락이 상관관계 전환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엔화가 미국 S&P500 주가지수와 역상관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엔화가 시장의 헤지 수단으로 신뢰를 받고 있다면 글로벌 위험자산 매수 국면에서 상승하는 한편 위험자산 매도 시 하락해야 하는데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관관계가 무너진 핵심적 원인은 일본 특유의 금융 환경에 있다. 일본은행은 주요국 중 유일하게 긴축 방향의 편향을 유지하고 있다. 2025년 금융정책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그 속도가 매우 완만해 금리 인하를 추진하고 있는 다른 주요 국가들과는 다른 상황을 보이고 있다.

시티그룹 웰스매니지먼트 부문 아시아 투자전략 책임자 켄 펭(Ken Peng)은 “더 이상 엔화를 리스크 바로미터로 사용할 수 없다”라며 “엔화는 현재 일본은행이 어느 정도 금리를 인상할지, 그리고 일본의 리플레이션과 성장이 지속될지에 대한 시장 전망치를 반영하는 존재가 됐다”고 설명했다.

옵션 시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달러-엔 내재변동성(IV, 예상 변동률)의 급격한 하락은 엔의 헤지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달러-엔의 상승·하락 방향 각각 헤지 수요를 측정하는 리스크 리버설은 상승하고 있어 엔화 약세 방향의 포지션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10월 두 번째 주 1.7% 가까이 상승했지만, 달러 자금 조달 비용(4% 이상)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을 기록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투자자들이 엔화를 매수할 경우 상당한 마이너스 캐리를 감수해야 함을 의미한다.

블룸버그는 “세계적 변동성 감소로 헤지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엔화 캐리 트레이드도 다시 활발해지고 있으며, 엔화는 과거와 같은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에서 멀어지고 투기적 자금이 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종합적인 데이터로 연초 이후 엔화는 G10 통화 중 가장 부진한 성과를 보였고 달러 대비 일시적으로 3% 상승했지만 전반적으로 약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최신 자료에 따르면 각국 자산운용사는 4월 후반 이후 엔 매수 포지션을 약 40% 줄였으며, 헤지펀드는 엔을 숏(매도 포지션)으로 잡고 있다.

안전자산 수단으로 엔화에 대한 가치가 하락하는 가운데, 다른 헤지 수단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골드만삭스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애널리스트들은 스위스 프랑이 엔화보다 신뢰도가 높고 비용이 낮은 헤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스위스 프랑은 10월 두 번째 주 엔화 대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또 금값은 미국과 중국 간 긴장 고조 속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12일 글로벌 금융정보 사이트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지난 10일 금 현물 가격은 전날보다 1.06% 오른 트로이온스당 4018.3달러를 기록했다. 8일 현물 기준으로 처음 4000달러를 돌파한 금 시세는 이튿날 소폭 하락했다가 재차 4000달러 선을 넘었다.

금값은 주간 기준으로 8주 연속 상승세로, 올해 들어 50% 이상 올랐다. 시장에서는 금값 상승세는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픽테 재팬 츠카모토 타쿠지 선임 연구원은 투자자들이 금 매입을 늘리는 이유 중 하나로 엔화 약세가 더 진행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엔화 급락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 가늠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다카이치 자민당 신임 총재는 자신의 취임 후 엔화 가치 하락이 급격해지자 일본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엔화를 지나치게 약세로 유도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언급하면서 "수출 중심 기업에는 트럼프 관세에 대한 우려를 고려할 때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카이치 측 경제 자문단들은 엔화 가치 하락을 반드시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다카이치 총재 측 경제통으로 알려져 있는 아이다 다쿠지 크레디아그리콜 일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엔화 약세가 나쁘다는 패배주의적 사고는 중대한 오류"라며 "현재 엔화 약세는 주가 상승과 투자자 신뢰 확대와 맞물려 일본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언급했다.

또 다카이치 총재가 계승을 천명한 아베노믹스를 설계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혼다 에쓰로 경제고문은 로이터와 인터뷰서 "다카이치 대표 선출은 긍정적인 모멘텀을 만들어냈다"면서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캐나다 투자분석업체 인베스팅라이브의 애덤 버튼 수석 외환 애널리스트는 "잠시나마 엔화 반등이 있었다는 것은 일본 당국이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는 신호이긴 하지만, 급격한 하락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분명“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엔화 가치 하락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스즈키 히로시 수석 환율 애널리스트는 ”다케이치 트레이드가 현 단계에서는 엔화 약세 방향으로 기울고 있지만, 한 달 정도면 한 차례 돌아갈 것으로 보이며 일시적인 움직임일 수 있다”라며 “또 엔화가 1달러=160엔에 접근하면 정부 개입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산운용사 원(One) 채권 담당 최고투자책임자(CIO) 시미즈 다케토모(清水岳友)는 “예전의 일본은 변함없는 신뢰감을 주는 나라라는 인상이었지만, 지금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져 엔화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