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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韓·美 관세 협상, “10일 내 타결”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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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韓·美 관세 협상, “10일 내 타결” 초읽기

3500억 달러 투자 구조·환율 안전장치 집중 조율,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로 압축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미국 뉴욕 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면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미국 뉴욕 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면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미 관세협상이 이달 말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최종 타결 국면에 진입했다.

정부와 미국이 이달 말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협상 최종 타결을 위한 막판 조율에 돌입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10일 내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낙관적 전망을 내놓은 반면, 한국 측은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의 조달 방식과 환율 안정장치 문제를 둘러싸고 여전히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을 통해 현지에서 흘러나오는 구체적 시나리오를 종합하면, 협상의 핵심 쟁점과 타결 가능성, 그리고 잠재적 변수들이 명확히 드러난다.

핵심 쟁점, 3500억 달러 투자 구조와 외환 안전장치


협상의 최대 난제는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의 조달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현지시각)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3500억 달러를 선불(upfront)로 투자하기로 서명했다"고 재차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러한 현금 선지급 방식이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을 우려해 대출과 보증 중심의 구조를 고수하고 있다.

​포착되는 타협안은 세 가지 방향이었다. 첫째, 직접투자 비율 조정이다. 한국 측은 전체 투자의 5% 미만을 현금 출자로 제공하고 나머지는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대출·보증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둘째, 원화 담보 달러 조달 방식이다. 한국은행이 미 재무부 명의 계좌를 개설하고, 한국 정부가 원화를 순차적으로 예치하면 미국 측이 해당 원화에 상응하는 달러를 투자 프로젝트에 공급하는 구조다. 이는 전통적인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와 달리 미 재무부의 외환안정기금(ESF)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최근 미국과 아르헨티나 간 200억 달러 통화스와프 사례가 참고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

셋째, 외환안정채권 발행 또는 특수목적법인(SPV) 활용이다. 달러표시 외환안정채권을 발행해 국제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거나, SPV를 통해 단계적으로 투자금을 집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외환보유액 감소를 최소화하면서 환율 안정을 도모하려는 전략이다.​

이 가운데 두 번째 안이 타협의 대상으로 유력하다. 미국 정부가 제안한 ‘원화 계좌 투자’ 방식은 기존의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와는 다른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통화스와프는 두 나라 중앙은행이 서로 상대국 통화를 일정 환율에 맞춰 직접 교환하는 거래를 말한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통화스와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해왔고, 이에 따라 미국 측은 직접적인 통화 교환 대신에 ‘원화 계좌 투자’ 방식을 제안했다.

이 방식은 한국 정부가 미국 내에 원화로 된 특별 계좌를 마련해 그 계좌에 투자 규모에 해당하는 원화를 예치하면, 미국 정부 또는 투자기관이 그 원화 금액만큼 달러를 투자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구조다. 즉, 한국 정부가 직접 달러를 선지급하는 대신, 미국 측이 관리하는 계좌에 원화를 맡기고, 미국 측이 그에 상응하는 달러 자금을 투자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대규모 달러가 즉시 한국 밖으로 유출되어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원화 계좌 투자’는 자금을 직접 달러로 송금하는 대신, 원화를 기반으로 달러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일종의 후순위·간접 투자 구조로 볼 수 있다. 외환시장 안정과 투자 집행 효율성 사이에서 절충한 방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원하는 대로 현금 투자 비중을 낮추고 대출과 보증 비중을 높이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어 조율이 아직 진행 중이다.

이 방식은 미국 연준이 통화스와프의 직접적 확대에 부정적이고, 또 미국 의회에서 통화스와프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큰 점을 고려한 실무적 대안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한미 간 통화스와프가 전면적으로 체결되지는 않더라도, ‘원화 계좌 투자’를 통해 사실상 외환 안정장치를 마련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통화스와프 협상의 미묘한 엇갈림


통화스와프 문제는 협상의 또 다른 변수다. 베선트 장관은 지난 15"내가 연준 의장이라면 한국은 이미 싱가포르처럼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을 것"이라며 한국의 입장에 이해를 표시했다. 이는 20203월 미국과 싱가포르 간 600억 달러 스와프 협정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제안했지만, 미국 측에서 잘 작동되지 않았고, 최근 새로운 진전이 있다고 알지 못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반면 구윤철 부총리는 "미국이 우리 외환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어 우리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낙관했다. 이러한 엇갈린 메시지는 통화스와프가 아직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핵심은 통화스와프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한국은 통화스와프 외에도 국회 동의, 법 개정, 상업적 합리성을 갖춘 투자 구조 등 추가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APEC 정상회의, 타결의 골든타임


양국은 1029~30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협상을 마무리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정상 간 만남은 양측 모두에게 진전을 만들려는 심리적 영향을 준다""큰 프레임은 만들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미국 측도 적극적이다. 베선트 장관은 "우리는 한국과의 협상을 마무리 단계에 있다. 세부 사항을 조율 중"이라며, CNBC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중 추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타결 시나리오는 명확하다. 양국이 투자 구조와 외환 안전장치에 합의하면,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 정상이 양해각서(MOU)에 서명하고,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이 현행 25%에서 15%로 즉시 인하된다. 철강은 50% 관세가 유지되지만, 반도체와 의약품은 다른 국가들과 동등하게 처우받게 된다.

​다만,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협상안이 더 나아진 면도 있으나 반드시 수용된다고 보긴 어렵다”고 신중론을 밝혔다.​ 정부는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협상 마무리 시점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협상 타결을 서두르기보다 국익과 국민 이해에 부합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김용범 실장이 밝혔다. 협상 일정이 APEC 정상회의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재계의 측면 지원, 마러라고 회동


협상을 둘러싼 또 하나의 변수는 한국 4대 그룹 총수들의 미국 방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이 오는 18(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리는 투자 유치 행사에 참석한다.

이번 회동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초청으로 이뤄졌으며, 5000억 달러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중심으로 한·미 기업 간 협력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 1일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만나 스타게이트 참여를 공식화했다.

재계 총수들의 마러라고 방문은 정부 협상단의 워싱턴 출장과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민간 투자를 통한 협상 지원 효과를 낼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관세 협상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우리 기업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 이 이슈가 나올 가능성이 있고 협상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잠재 리스크는 트럼프의 협상 전술과 외환시장 변동성


그러나 낙관론만으로는 협상의 불확실성을 설명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력 확보를 위해 "선불 투자" 주장을 반복하고 있으며, 일본의 사례를 들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본은 9월 초 미국과 5500억 달러 투자 합의를 공식화하며 15% 기준 관세를 먼저 확보했다.

일본 모델의 핵심은 국제협력은행(JBIC)과 일본무역보험(NEXI)을 통한 지분 투자, 대출, 보증의 혼합 구조다. 일본 정부는 외환시장 영향 없이 투자를 집행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실제로는 정부 부채 증가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이 참고할 부분이자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외환시장 불안도 변수다. ·달러 환율은 10월 들어 1400원을 돌파하며 5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는 "원화가 올해 하반기 아시아 통화 중 최악의 성과를 기록했다""3500억 달러 투자 계약이 향후 수년간 달러 수요 급증을 촉발해 원화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9월 말 기준 4220억 달러로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지만,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외환 당국이 외환보유액 감소 없이 조달할 수 있는 달러 규모는 연간 200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3500억 달러의 5.7%에 불과해 현금 선지급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방증한다.

일본 사례와의 차이점


일본과 한국의 협상 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본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없이 15% 기준 관세를 확보했지만, 한국은 한미 FTA가 있음에도 같은 15% 관세를 받아들여야 했다. 김용범 실장은 "FTA가 심각한 훼손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또한, 일본은 투자 수익 배분에서 초기에는 미국과 5050, 원금 회수 후에는 미국 90%, 일본 10%로 합의했다. 한국도 유사한 구조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만, 구체적 조건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전망, 3가지 시나리오


미국 현지 동향을 종합하면 한미 관세협상은 세 가지 시나리오로 수렴된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10월 말 APEC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MOU에 서명하고, 한국이 제시한 원화 담보 달러 조달 방식 또는 외환안정채권 발행 방식을 미국이 수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자동차 관세가 즉시 15%로 인하되고, 외환시장 충격도 최소화된다.

중간 시나리오는 큰 틀에서 합의하되 세부 집행 방안은 추후 조율하는 것이다. 위성락 실장이 언급한 "큰 프레임"이 이에 해당한다. 정상 간 원칙적 합의 후 실무 협상을 지속하며 단계적으로 관세를 인하하는 방식이다.

최악 시나리오는 협상 결렬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금 선지급을 고집하거나, 통화스와프에 대한 양국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협상은 교착 상태로 빠질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산 자동차는 25% 관세 부담을 계속 지게 되고, ·달러 환율은 1450원을 향해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서는 최선의 시나리오와 중간 시나리오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양국 고위 당국자들의 낙관적 발언, 미국 측의 양보 신호, 그리고 APEC 정상회의라는 명확한 데드라인이 타결 모멘텀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협상 스타일과 외환시장 변동성은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어,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