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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파나마, 코브레 광산 협상 테이블에 '자원 주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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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파나마, 코브레 광산 협상 테이블에 '자원 주권' 올렸다

GDP 5% 차지하던 핵심 자산…정치·환경 갈등 속 가동 중단 2년 만에 재개 물꼬
채프먼 재무장관 "재정적자 목표는 협상 불가"…경제 회생 동력 확보 사활
세계 최대 노천 구리광산 중 하나인 코브레 파나마 광산 전경. 파나마는 캐나다 퍼스트 퀀텀 미네랄스 소유인 이 광산 재개에 앞서 '자원 주권'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최대 노천 구리광산 중 하나인 코브레 파나마 광산 전경. 파나마는 캐나다 퍼스트 퀀텀 미네랄스 소유인 이 광산 재개에 앞서 '자원 주권'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사진=로이터
파나마 정부가 자국 경제의 명운이 걸린 '코브레 파나마(Cobre Panama)' 구리 광산의 재가동 협상에서 '자원의 국가 소유권'을 명확히 하는 것을 최우선 원칙으로 내세웠다. 이는 광산 개발에 따른 경제적 이익과 자원 주권 수호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루려는 현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광산 운영사인 캐나다 퍼스트 퀀텀 미네랄스(First Quantum Minerals) 산하 현지 법인 미네라 파나마(Minera Panamá S.A.)와의 본격적인 협상이 어려울 전망이다.

파나마의 펠리페 채프먼 경제재정부 장관은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에서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를 갖고 이 같은 정부의 확고한 뜻을 밝혔다. 채프먼 장관은 "우리에게는 자원이 파나마 공화국에 속한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명시하는 합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앞으로 진행될 모든 협상에서 토지와 지하자원에 대한 파나마의 배타적 권리를 계약서에 글로 못 박는 것을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이는 자원 국유화와 같은 강경책보다는 국가의 소유권과 관리 통제권을 명문화하려는 현실적인 시도다.

한때 파나마 국내총생산(GDP)의 약 5%를 차지하며 세계 구리 채굴량의 1%를 공급했던 코브레 파나마 광산은 2023년 말, 환경 문제와 정치 격변 속에서 파나마 대법원으로부터 기존 채굴 계약(법률 406호)이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자원 주권을 명확히 하지 않았고, 환경 보호 조치가 미흡하며, 정부의 운영 감독과 지역 사회 이익 분배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당시 폐기된 계약은 퍼스트 퀀텀 측에 20년(최대 40년 연장 가능)의 채굴권을 보장하고 해마다 3억 7500만 달러(약 5325억 원)의 사용료를 정부에 지급하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수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이 생겼다. 지난해 7월 취임한 호세 라울 물리노 대통령의 신정부는 경제 회생을 위해 광산 재가동을 주요 국정 과제로 삼고, 운영사와의 협상을 위한 법적, 행정적 토대를 닦는 데 힘써왔다.

정부의 협상 의지는 광산을 둘러싼 국제 중재 소송이 잇따라 중단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올해 6월, 광산에서 생산되는 금속 공급 계약을 맺은 프랑코-네바다(Franco-Nevada)사가 파나마 정부를 상대로 냈던 국제 중재 소송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것이 결정적인 기회가 됐다. 이에 앞서 광산 운영사인 퍼스트 퀀텀 역시 파나마 정부를 상대로 냈던 중재 소송을 잠정 중단하라고 자사 법무팀에 지시했다. 물리노 대통령은 당시 "퍼스트 퀀텀과 대화를 시작할 테이블이 명확해졌다"며 협상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광산 재가동을 향한 정부의 가장 큰 숙제는 나빠졌던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일이다. 채프먼 장관은 이와 관련해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광산 폐쇄 여론이 들끓던 1년여 전에는 국민 80% 이상이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5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민이 상당수 있으며, 이들은 국가에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이 타결된다면 재가동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면 반대에서 '조건부 재개'로 돌아선 여론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자원 주권을 협상 전면에 내세운 정부의 전략이 국민 공감대를 얻기 위한 밑바탕임을 시사한다.

한편, 채프먼 장관은 코브레 파나마 광산 문제와는 별개로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그는 "올해 재정 적자 목표치 4%, 명년 목표치 3.5%는 '협상 불가' 원칙"이라고 못박으며 강력한 재정 긴축을 예고했다. 또한, 국제 금리가 충분히 내릴 때까지 기다린 후 국채 발행 등 국제 채권 시장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거대 사업 재추진과 동시에 국가 재정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현 정부의 균형 잡힌 경제 정책 방향을 보여준다. 파나마 경제가 장기 평균 성장률을 밑도는 가운데, IMF 등 국제기구는 올해 파나마 경제가 4% 성장률로 반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광산 재가동 여부가 앞으로 경제 방향의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양측은 이르면 올해 말이나 2026년 초 재가동 조건에 대한 초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이며, 파나마 정부가 자원 소유권을 명시하는 대신 퍼스트 퀀텀이 운영권과 생산 이익의 일부를 보장받는 혼합형 공유 방식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광산이 다시 가동될 경우, 세계 구리 공급 안정화에 기여하고 파나마의 투자 신뢰도를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파나마 정부는 이번 협상을 통해 '자원은 국가의 자산'이라는 대원칙을 세우면서도, 외국인 투자자와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는 고도의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코브레 파나마의 앞으로 운명은 중남미 자원 부국의 외국인 투자 정책 방향을 가늠할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