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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TSMC, 1nm 공정 로드맵 수정…'High-NA EUV' 대신 '펠리클'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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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TSMC, 1nm 공정 로드맵 수정…'High-NA EUV' 대신 '펠리클' 택했다

4억 달러 장비 비용 부담, 연간 5~6대 불과한 공급량에 '현실적 판단'
표준 EUV 노광 횟수 늘리고 '펠리클'로 수율 관리…"시행착오 불가피"
세계 1위 파운드리 TSMC가 1nm 차세대 공정 로드맵을 수정했다. 대당 4억 달러의 비용 부담과 연간 5~6대에 불과한 공급량을 고려해 'High-NA EUV' 장비 도입 대신, 기존 표준 EUV 장비와 '포토마스크 펠리클'을 활용하는 '현실적 판단'을 내렸다. 이는 표준 EUV의 노광 횟수를 늘리고 펠리클로 수율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공정 안정화까지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1위 파운드리 TSMC가 1nm 차세대 공정 로드맵을 수정했다. 대당 4억 달러의 비용 부담과 연간 5~6대에 불과한 공급량을 고려해 'High-NA EUV' 장비 도입 대신, 기존 표준 EUV 장비와 '포토마스크 펠리클'을 활용하는 '현실적 판단'을 내렸다. 이는 표준 EUV의 노광 횟수를 늘리고 펠리클로 수율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공정 안정화까지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진=로이터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1.4나노미터(nm)와 1nm 등 2nm 이하 초미세 공정 도입 전략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현재 최첨단 장비로 꼽는 ASML의 'High-NA(하이 NA)' EUV(극자외선) 장비를 도입하는 대신, 기존 표준 EUV 장비와 '포토마스크 펠리클(Pellicle)' 조합을 활용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이 결정은 대당 4억 달러(약 52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장비 비용과 공급 안정성 문제를 고려한 전략이다. TSMC가 비용과 안정성의 균형점을 찾아 업계의 통상적인 예상을 깬 '대안'을 선택하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고 IT전문 매체 WCCF테크가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TSMC는 2025년 말 2nm 공정의 본격적인 대량 생산을 앞두고 있다. 현재 보유 중인 표준 EUV 장비로도 2nm 공정은 충분히 대응 가능하며 높은 수율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단계다. A14(1.4nm)와 A10(1nm)으로 이름 붙인 2nm 미만 노드로 전환할 경우, TSMC는 심각한 제조상 난관에 봉착한다. 이 단계의 초미세 공정 과정에서는 미세먼지(fine dust) 같은 극소량의 오염물질조차 공정 신뢰도를 치명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4억 달러 비용·연 5대 공급난…High-NA 도입 '주저'


반도체 업계는 네덜란드 ASML이 개발한 High-NA EUV 장비를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여겼다. 이 장비는 1.4nm와 1nm 웨이퍼를 높은 수율로 안정적으로 제조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하지만 TSMC의 선택은 달랐다.

TSMC가 High-NA EUV 장비 구매를 거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는 천문학적인 비용이다. 이 장비의 가격은 대당 4억 달러에 이른다. TSMC는 이 막대한 비용이 보장하는 가치보다 실제 하드웨어의 가치가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극도로 제한된 공급량이다. ASML이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High-NA EUV 장비는 고작 5~6대에 불과하다. 이는 TSMC가 앞으로 대량 생산을 위해 30대 이상 확보하려는 수요와 비교할 때, 장기적인 대량 생산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펠리클'로 수율 방어…표준 EUV 활용 극대화


이러한 배경에서 TSMC는 대안으로 '포토마스크 펠리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댄 나이스테트(Dan Nystedt)와 대만 상업시보(Commercial Times) 등 외신에 따르면, TSMC는 High-NA 장비 도입 대신 기존 표준 EUV 장비를 추가 확보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미 애플을 비롯한 수많은 핵심 고객사의 폭증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30대 이상의 표준 EUV 장비를 확보해야 하는 TSMC 처지에서는, 소량의 고가 장비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것이 길게 보면 '부질없는 일'이라고 결론 내린 셈이다. 이들은 표준 EUV 장비의 활용을 극대화해 대량 생산 체제의 안정성을 도모하려 하고 있다.

물론 이 전략은 상당한 기술 위험과 복잡성을 수반한다. 표준 EUV 장비로 1.4nm나 1nm 같은 초미세 공정을 구현하려면, 웨이퍼에 더 많은 횟수의 노광(Exposure)이 필요하다. 이는 곧 반도체 회로 패턴이 새겨진 '포토마스크'를 더 자주 사용해야 함을 의미하며, 이 과정에서 수율이 저하될 위험이 커진다.

TSMC가 '포토마스크 펠리클'을 핵심 요소로 내세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nm 미만 공정에서는 펠리클 사용이 절대 필수다. 펠리클은 포토마스크를 먼지나 기타 오염 입자로부터 보호하는 얇은 막이다. 포토마스크 위에 이물질이 착지하는 것을 막아, 빛을 쬐는 광 노광 공정의 실패율을 줄이는 핵심 역할을 한다. 노광 횟수가 필연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펠리클을 통해 마스크 오염을 원천 차단하고 수율을 방어하겠다는 계산이다.

High-NA 장비가 제공하는 '신뢰도'를 자체 공정 기술과 재료(펠리클) 관리로 따라잡겠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TSMC가 이 방식을 통해 생산 신뢰도를 안정적인 궤도에 올리기까지 상당한 '시행착오' 접근법을 취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1.4nm와 1nm 공정처럼 노광 횟수가 급격히 늘어나면, 펠리클의 수명과 관리가 매우 까다로워져 오히려 생산 수율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TSMC는 이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착오'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펠리클을 통한 공정 안정화가 TSMC의 1nm 시대를 여는 핵심 과제가 됐다.

TSMC는 이 같은 전략을 현실화하기 위해 이미 막대한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1.4nm 공정 전환을 위해 약 490억 달러(약 1조 5000억 신 대만 달러)에 이르는 초기 투자를 단행했으며, 대만 신주(Hsinchu) 공장에서 1.4nm 공정 연구개발(R&D)을 시작했다.

TSMC는 2025년 말 2nm 양산에 성공한 뒤, 2028년경 1.4nm 노드 전환을 완료한다는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했다. 1nm 공정(A10)은 1.4nm 공정 안정화 이후 단계로 적용할 예정이다. TSMC가 차세대 장비의 상징성이나 기술적 명분보다는, 천문학적 비용 지출을 피하고 기존 인프라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비용 효율성'과 '대량 생산 안정성'이라는 실리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4억 달러짜리 장비 구매를 보류한 TSMC의 '펠리클 승부수'가 1nm 시대의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업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