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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적자는 손실 아닌 소비"…경제학자들, 트럼프 관세 정책 강하게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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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적자는 손실 아닌 소비"…경제학자들, 트럼프 관세 정책 강하게 반박

달러 기축통화 지위 약화·국가 생산성 하락 우려…대법원 심리 앞 새로운 논란 예고
경제학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경제학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지=GPT4o
경제학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글래스고대학교 애덤 스미스 경영대학원의 루이스 앙헬레스 경제학 교수는 5(현지시각) 더 컨버세이션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적자를 미국의 손실로 보는 관점 자체가 잘못됐으며, 관세로 인한 경제구조 변화는 국가 생산성을 오히려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라는 무형 자산 약화 가능성은 미국 경제 전체의 장기 성장 잠재력까지 손상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현실의 경제 메커니즘과 충돌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평가다. 올해 2월부터 시행된 광범위한 관세 조치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2.5%에서 18.3%로 급등했으며, 이는 1934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정책이 예상과 달리 의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무역적자는 국민 소비 선택의 결과"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첫 번째 반박의 논거는 무역적자의 본질에 대한 이해 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위스 대통령 카린 켈러-수터와의 만남에서 "미국의 무역적자가 410억 달러(59조 원)"라며 "우리는 손실을 본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이를 근본적으로 잘못된 해석이라고 지적한다.

무역적자란 단순히 한 국가가 다른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수출하는 것보다 많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수입 대금 지급으로 더 많은 자금이 국외로 흐르지만, 그 대신 상품과 서비스라는 실물이 들어온다. 달라스 연방준비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무역 적자가 발생한다는 것은 국내 투자가 국내 저축을 초과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국민들은 자신의 선호도를 반영해 수입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앙헬레스 교수는 무역적자를 "상품과 서비스 잉여(surplus in goods and services consumed)"로 재명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미국 국민이 외국으로부터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고 있다는 긍정적 결과를 의미한다.

관세는 산업 간 이동만 초래…국가 생산성 오히려 하락


두 번째 비판점은 관세 정책의 산업적 파급 효과에 관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로 수입 상품 가격을 올려 국내산 제품 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산 시계에 관세를 부과해 가격을 올리면, 그 대신 미국산 시계 수요가 증가해 미국 시계 산업이 성장하고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하다.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수출할 수 없으면 미국 상품을 구매할 달러를 벌 수 없다. 따라서 외국의 수입이 감소하면 미국 상품 수출도 줄어든다. 미국의 시계 산업이 성장하는 대신 항공기 제조업이나 금융 서비스 같은 전통적 수출 산업이 축소된다는 의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산업 간 노동력 이동이다. 사람들이 시계 제조업으로 이동하려면 다른 산업의 기술을 버리고 새로 습득해야 한다. 애초에 미국이 스위스로부터 시계를 수입한 이유는 스위스 시계 제조 기술이 미국보다 우수하기 때문이다. 즉 관세로 인한 노동력 이동은 미국이 잘하는 영역에서 미국이 상대적으로 못하는 영역으로의 재배치를 의미한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연구원들은 "광범위한 관세 정책이 산업 부활을 돕는다는 주장은 실제 연구 결과와 반대"라며 "오히려 각국 간 생산 효율성을 악화시켜 산업 부문 자체에 손상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에 관세를 부과했을 때 중국은 미국 농산물 수출에 대한 보복 관세를 부과해 미국 농민들을 직격했던 경험이 있다.

최근 추정에 따르면 관세 정책은 2025년 미국 경제 성장률을 0.23퍼센트포인트 낮추고, 2026년에는 0.62퍼센트포인트를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가구당 평균 1300달러(187만 원)의 세금 인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달러 신뢰 상실 시 미국의 '무형 부'까지 훼손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논거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와 관련한 것이다. 국가 간 무역에서 화폐 교환의 어려움이 발생할 때, 상호 수입이 균형을 이루면 문제가 간단하다. 그러나 무역 적자가 발생할 경우 상황이 복잡해진다.

A국이 B국보다 더 많이 수입할 때 B국은 A국의 화폐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 화폐로 다른 무언가를 구매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는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 자산이거나 부동산 같은 실물 자산이다. 즉 무역적자를 갖춘 국가는 자신의 자산 일부를 외국인에게 양보해야 한다.

미국은 여기서 유일한 예외가 된다.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낸 외국이 미국 달러를 보유하고 있을 때, 반드시 미국 자산을 구매할 필요가 없다. 대신 많은 국가와 개인들이 미국 달러를 현금 형태로 보유하고 싶어한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 달러의 신뢰도가 높아 자국 화폐보다 달러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국외에 유통 중인 달러 현금은 1조 달러(1400조 원)를 넘는다.

연방준비제도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 달러가 세계 공식 외환보유액의 5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유로화(20%)나 엔화(6%), 파운드화(5%), 중국 위안화(2%)를 훨씬 상회한다.

이는 미국에 엄청난 이득을 안긴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면서도, 그 대가로 생산 비용이 거의 없는 '종이쪽'을 제공하기만 하면 된다. 앙헬레스 교수는 이를 "미국만이 누리는 대단한 이득(bonanza)"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관세를 통해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시도는 정확히 이 특권의 기반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달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전 세계 금융 시장에서 미국의 위상이 급락한다. 실제로 2025년 초부터 관계자들 사이에서 달러 약세와 기축통화 지위 약화 가능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경제학자들의 관세 비판, 대법원 심리에도 영향


컬럼비아대학교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는 "거의 모든 경제학자가 관세의 영향이 미국과 세계에 매우 부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관세는 거의 확실히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최신 분석에 따르면 20256~8월 관세로 인해 미국 소비자물가지수(PCE) 인플레이션의 약 0.5퍼센트포인트가 상승했다. 또한 관세 정책이 해석되는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기업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고용 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로 무역적자를 줄이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며 정부 세수를 증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이 거시경제학적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무역적자는 국가 저축과 투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관세 정책은 산업 간 이동만 초래해 국가 경쟁력을 오히려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라는 무형 자산의 약화는 미국 경제 전체의 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경고는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현재 대법원이 트럼프 관세 정책의 적법성을 심리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대법관의 판결뿐만 아니라 일반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로도 이어져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대한 새로운 논란과 불신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