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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오라클, 'AI 베팅 역풍' 현실화...한 달간 주가 30% '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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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오라클, 'AI 베팅 역풍' 현실화...한 달간 주가 30% '와르르'

AI 인프라 확장 위해 부채 폭증...월가, 회사채 투자 의견 줄줄이 하향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 시티의 오라클 본사 외관     사진=A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 시티의 오라클 본사 외관 사진=AP/뉴시스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이 최근 기술주와 채권 시장 전반의 매도세 속에서 유독 빅테크 경쟁사들보다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인공지능(AI) 전환을 위해 회사가 대규모 차입에 나선 결정이 월가의 불안감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오라클은 AI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향후 수년간 수천억 달러를 칩과 데이터센터 구축에 투입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챗GPT 제작사인 오픈AI에 컴퓨팅 용량을 공급하는 대규모 계약과 연계돼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4일(현지시각)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잇달아 구축 중인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지출에 시장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오라클의 이 같은 공격적 행보가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라클 주가는 지난 한 달 동안 거의 30% 급락했다. 주가 급락으로 인해 오라클의 시가총액은 지난 9월 고점 대비 약 2500억 달러가 증발했다.
또한 FT가 집계한 오라클 회사채 가격 지수는 9월 중순 이후 약 6% 하락해 주요 동종 업체 중 가장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FT는 오라클이 경쟁사들보다 늦게 기업용 소프트웨어 중심에서 클라우드 사업으로 전환한 점이 투자자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회사의 전략이 사실상 오픈AI의 성공에 베팅하는 ‘올인’ 구도로 굳어진 점도 부담 요인이다.

로스차일드 &코 레드번의 알렉스 하이슬 애널리스트는 “오라클의 전략은 투자자들이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에서 중시하는 비즈니스 모델과 완전히 다르다”면서 “매출만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자본집약도가 너무 높아 실질적인 가치 창출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오픈AI, 앤트로픽 등 아직 손실 상태인 주요 AI 스타트업들이 기술적 약속을 실현하지 못할 경우, 극소수 대형 기술 기업들의 고평가와 막대한 설비투자가 오히려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또 한 차례 거센 매도세에 직면하며 전날 2.3% 하락했다. 오라클 주가도 4.15% 떨어지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오라클은 지난 9월에 오픈AI와의 계약을 통해 2027년부터 2032년까지 3000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라클 경영진은 현재 AI 수요가 기존 컴퓨팅 파워 공급 능력을 훨씬 웃돌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만한 보상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오라클 주가는 최근 조정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약 30% 상승했다.

S&P 비저블 알파의 컨센서스 추정치에 따르면, 오라클의 인프라 사업 매출은 2029년까지 지금보다 1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월가 애널리스트들 역시 전반적으로 오라클 주가 전망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오라클은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채권시장을 과감하게 활용해 빠르게 자본을 조달하고 있다.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오라클이 보유한 장기 부채는 약 960억 달러로, 지난해(750억 달러)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모건스탠리는 해당 부채가 2028년에는 약 2900억 달러 규모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다. 오라클은 9월에만 18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고, 미국 주요 은행들을 통해 추가로 380억 달러의 부채 조달을 협의 중이다.

오라클을 오랫동안 추적해온 한 공매도 투자자는 “오라클 공동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은 지금 지출 규모 면에서 완전히 선을 넘었다”면서 “시장은 더 이상 AI에 끝없는 현금을 쏟아붓는 기업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클레이스는 이번 주 오라클 회사채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축소’로 하향 조정하고 오라클의 AI 인프라 지출 규모가 잉여현금흐름을 크게 초과했다고 경고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 역시 오라클이 소수 AI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중대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했다. S&P 글로벌은 오라클 매출의 3분의 1이 2028년까지 단일 고객에게서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이는 사실상 오픈AI 의존도를 의미한다.

S&P 글로벌의 앤드루 창 이사는 “오라클의 최대 고객이 벤처캐피털 자금에 의존하는 스타트업이라는 점은 매우 큰 부채 리스크이자 신용 리스크”라고 분석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