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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TSMC 인재 빼오고, 애플엔 '손짓'…인텔의 독한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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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TSMC 인재 빼오고, 애플엔 '손짓'…인텔의 독한 반격

빅테크 3社 채용 공고에 '인텔 기술' 명시…파운드리 수주 청신호
TSMC R&D 수장 전격 영입…2나노 기밀 유출 놓고 '일촉즉발'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반도체 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인텔(Intel)의 반격이 마침내 본궤도에 올랐다. 그동안 경쟁사에 밀려 고전하던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판을 흔들기 위해 꺼내 든 카드는 치밀한 '양동작전'이다. 세계 1위 TSMC의 핵심 두뇌를 전격 스카우트하고, 애플과 퀄컴 등 빅테크(Big Tech)의 차세대 패키징 물량을 노리며 실리적인 '연합 전선' 구축에 나섰다. 막대한 자금 투입에도 성과가 더디다는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킬 결정적 승부수라는 평가다.

애플·퀄컴이 탐내는 '인텔 패키징'


지난 19일(현지 시각) 업계와 외신 뉴스케이스닷컴에 따르면, 인텔의 첨단 패키징 기술인 'EMIB(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채용 시장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애플, 브로드컴, 퀄컴 등 팹리스(반도체 설계) 거물들이 최근 낸 엔지니어 채용 공고에 인텔의 EMIB 기술 전문성을 필수 요건으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검토 수준을 넘어서는 징후다. 현재 AI 및 고성능 반도체 패키징 시장은 TSMC의 'CoWoS' 기술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자사 차세대 칩 개발 인력에게 인텔의 기술 표준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인텔을 '제2의 파트너'로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인텔에게 이는 제조 공정(Front-end) 수주 이상의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최선단 공정의 칩 제조를 직접 맡지 않더라도, 후공정인 패키징 분야에서 이들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음으로써 막대한 수익 창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텔이 그토록 원하던 '파운드리 생태계 진입'이 패키징을 매개로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적장(敵將) 빼오자…TSMC "기밀 유출"


인텔의 공격 본능은 인재 영입전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인텔은 지난 10월, 경쟁사 TSMC의 연구개발(R&D)을 총괄했던 위젠 뤄(Wei-Jen Lo)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파운드리 업계에서 R&D 수장의 이직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인텔이 기술 격차 해소를 위해 얼마나 공격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 과정에서 양사 간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위젠 뤄가 2나노미터(nm) 이하 초미세 공정과 관련된 기밀 문서를 유출했을 가능성을 두고 내부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인텔이 영입을 강행한 것은, 현재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18A(1.8나노급)' 공정의 성공을 위해선 TSMC의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인텔은 위젠 뤄의 합류가 18A 공정 수율 안정화와 양산 체제 구축에 결정적 트리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월가 "기대감 속 실적 증명 남았다"


인텔의 이러한 광폭 행보는 지난 18일 열린 RBC 테크놀로지 컨퍼런스를 기점으로 시장의 재평가를 받을 전망이다. 수년간 이어진 시장 점유율 하락과 기술 경쟁력 약화라는 오명 속에, 이번 전략적 움직임이 단순한 '선언'에 그칠지 실질적인 '턴어라운드'의 시작점이 될지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월가의 시각은 아직 신중하다. 번스타인(Bernstein) 등 주요 투자은행은 인텔에 대해 여전히 '중립(Neutral)'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 반전의 조짐은 뚜렷하다. 애플과 퀄컴의 관심이 구속력 있는 장기 계약으로 이어지고, 18A 공정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인텔은 수년 만에 가장 강력한 전략적 성과를 거두게 된다.

"팔아야 하나, 사야 하나?" 투자자들의 물음에 인텔은 '기술'과 '사람'으로 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증명이다. 인텔이 던진 승부수가 TSMC의 아성을 무너뜨릴 '신의 한 수'가 될지, 아니면 무모한 도전에 그칠지,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시계가 다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