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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자리 뺏는 AI 멈춰라"...믿었던 'MAGA'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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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자리 뺏는 AI 멈춰라"...믿었던 'MAGA'의 반란

경제난·AI 공포 겹치며 지지층 균열 가속화...디샌티스 등 공화당 주지사들 "연방 정부의 AI 규제 무력화 반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21년을 맞아 현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강력한 행정부 권한을 구축했지만, 그 막강한 권한 탓에 국정 실패의 책임을 홀로 떠안아야 하는 '권력의 역설'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23(현지시각)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공지능(AI) 규제 철폐 움직임에 공화당 텃밭인 주()지사들과 핵심 지지층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이 반기를 들며 정치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권력 집중의 그늘..."더 이상 '남 탓' 할 곳이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와 법무부 등 전통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해 온 기관들까지 백악관의 통제하에 두면서, 역설적으로 국정 운영의 방패막이를 잃었다고 진단했다.

켄트 위버(R. Kent Weaver) 조지타운대 교수는 1986년 논문 '비난 회피의 정치학'에서 "정치인은 인기 있는 정책으로 공을 인정받기보다 인기 없는 조치에 대한 비난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과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농업 개혁 실패의 책임을 장관에게 돌려 자신의 지지율을 방어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은 다르다. 그는 "법무부가 내 지시를 직접 따른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는 물가 상승이나 정책 실패가 발생했을 때 비난을 돌릴 대상, '희생양'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4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지난 5일 치러진 중간선거 성격의 지방 선거에서 공화당이 고전한 것 또한 고물가에 따른 유권자들의 불만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저널리스트 조쉬 바로(Josh Barro)"대중은 트럼프가 정부를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메시지를 10개월 내내 들었다""정부 셧다운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대중이 트럼프를 탓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믿었던 '집토끼'의 반란... AI 규제 두고 보수 진영 분열


더 큰 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기조가 자신의 핵심 지지 기반인 노동자 계층의 이해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AI 행정명령을 폐기하고, 각 주() 정부가 독자적인 AI 규제 법안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연방 우선권'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론 디샌티스(Ron DeSantis) 플로리다 주지사, 세라 허커비 샌더스(Sarah Huckabee Sanders) 아칸소 주지사 등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AI 기술이 일자리를 위협하고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지난 21일 플로리다 기자회견에서 "거대 기술 기업이 우리 사회에 대해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며 연방 정부의 규제 무력화 시도를 코로나19 당시의 마스크 의무화 조치에 비유해 비판했다. 스펜서 콕스(Spencer Cox) 유타 주지사 역시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우리는 이미 소셜미디어 기업이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파괴하도록 방치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만 배 불리나"...흔들리는 '포퓰리즘' 연대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등 기술 업계 거물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며 친()기업 행보를 보였다. 데이비드 색스(David Sacks)와 같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참모로 활동 중이다.

그러나 공화당 내 포퓰리즘 세력은 이러한 행보가 "트럼프의 지지 기반인 노동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보수 정치 전략가 브렌던 스타인하우저(Brendan Steinhauser)"트럼프는 수천억 달러를 벌어들일 소수의 자기들만의 세상에 사는 실리콘밸리 기술 엘리트들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하지만 그들은 트럼프의 기반이 아니다. MAGA(지지층)는 이런 정책을 원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텍사스주의 앤젤라 팩스턴(Angela Paxton) 주 상원의원은 "일자리 지형이 급격히 바뀔 것이라는 우려 속에 많은 사람이 '나와 내 가족은 어떻게 되는가'를 묻고 있다"며 딥페이크 등 AI 부작용을 막기 위한 주 차원의 규제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고물가 속 '장밋빛 미래'만 강조...다가오는 2026년 선거의 그늘


기술 업계는 AI 투자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부양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반 유권자가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6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절반은 AI가 일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고 답했다. 이는 202137%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월마트와 아마존 등 주요 기업 CEO들조차 AI로 인한 업무 자동화와 인력 감축을 예고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없는 기술 지원'은 고물가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괴리감을 주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휴머노이드 로봇이 빈곤을 없앨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스타인하우저는 이에 대해 "사람들은 그런 유토피아적 약속을 믿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강력한 권한을 바탕으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견제 장치를 스스로 제거함으로써 정책 실패의 위험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여기에 AI 정책을 둘러싼 보수 진영 내부의 이념적·경제적 분열은 다가오는 2026년 선거에서 공화당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