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패권의 한계와 K-방산의 역설: 서방의 ‘빈 탄약고’를 채우며 세계 안보의 ‘공급 축’으로 서다
이미지 확대보기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3년이 흐른 지금, 전쟁은 유럽·미국의 안보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들고 있다. 동시에 군수·안보 생태계에서는 전례 없는 중력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탄약·장비 재고가 빨려 나가고, 기존의 거대 방산국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공백이 발생하면서, 그동안 미국의 무기를 사 오던 한국이 역설적으로 ‘국제 공급국’으로 부상하는 충격적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이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자유주의적 완전 승리 전략을 고집한 결과, 동맹국 내부에서 군수 역량이 과도하게 소진되며 나타난 구조적 결과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 이후의 전개는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군수·안보·패권 구조가 동시에 뒤틀리는 거대한 진동이다. 이 틈에서 한국은 위험과 기회가 뒤섞인 새로운 전략적 고지를 맞이하고 있다.
나토 확장과 전쟁의 역설: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피로가 드러나다
워싱턴 전략가들은 오랫동안 나토의 동진 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계속해 왔다. 자유주의 진영의 입장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는 주권국가이며, 나토 가입 가능성은 원칙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주의 학파는 정반대의 경고를 보냈다. 핵무기 보유국의 ‘생존 공포’를 무시한 확장 전략은 언젠가 파국적 반응을 촉발할 것이라고.
2021~2022년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는 입장을 유지했고, 푸틴은 이를 체제 붕괴 위협으로 간주했다. 전쟁이 터진 그 순간,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가진 내재적 한계가 폭발한 셈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이를 이렇게 말했다.
“1990년대에는 전략적으로 가능했지만, 2020년대에 이르면 핵 보유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불안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전쟁 이후 벌어진 일련의 현상은 이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러시아는 북한과 이란으로부터 군수 자원을 끌어다 쓰며 버티고,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전략적 후견을 강화했다. 북·중·러의 축이 과거 어느 때보다 견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북·중·러 협력의 심화: 우크라이나 전쟁이 만든 위험한 ‘신축’
러시아는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어가면서 북한에 포탄·탄약·미사일까지 요청하는 ‘군수 의존 관계’를 만들었다. 북한은 그 대가로 정찰위성 기술, 미사일 엔진, 군사훈련 협력을 포함한 여러 이익을 챙기고 있다. CSIS 연구자들은 이를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역사적 수준으로 재정렬되는 징후”라고 진단한다.
미국·유럽 군수 공급망의 공백: SIPRI가 보여준 냉혹한 현실
SIPRI의 최신 통계를 보면 2020~2024년 동안 미국산 무기 이전의 절반 가까이가 유럽에 집중되었다. 미국은 러시아를 억제하려는 나토의 요구를 충족시키느라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었고, 생산 능력도 병목을 드러냈다.
이 공백은 두 가지 사실을 드러낸다.
하나는 미국이 더 이상 러시아·중국을 동시에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생산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공급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한국이 들어섰다.
한국 방산의 비약: 위기가 만든 구조적 기회의 창
한국은 이미 K9 자주포, K2 전차, 천무 MLRS, FA-50으로 세계 군수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 위상은 급격히 변했다. 유럽 국가들이 미국·독일로부터 장비를 받기 위해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즉시 인도 가능한” 거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폴란드·루마니아·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 각국은 한국산 무기 체계를 대량 도입했다. 미국의 한 군사 분석가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은 더 이상 미국 방산 생태계에서 무기를 ‘사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공급국’이 되어가고 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세계 군수 생태계의 중심축 일부가 한국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기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직면한 새로운 위험
한국의 부상은 전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만은 아니다. 미국이 자유주의적 완전 승리 전략을 고집하는 한, 러시아는 중국과 더 깊이 결속하고, 북한은 핵탄두·미사일·전술무기 생산을 가속화할 것이다. 한국은 한미동맹의 핵심 파트너이면서도, 동시에 북·중·러의 압박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전방국가다.
즉, ‘한국의 공급국화’는 미국 전략의 실패가 만든 구조적 공백을 메우는 과정이지만, 그 전략 실패가 장기적으로 한국의 안보를 약화시킬 위험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 기회를 활용하되, 미국 전략을 현실주의로 되돌릴 것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방산 공급국으로의 도약이라는 기회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둘째,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전략을 자유주의적 완전 승리가 아닌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으로 유도해야 한다.
중국 견제, 러시아 관리, 한반도 억제 안정이라는 세 축을 균형 있게 유지해야만 한국의 안보와 지역 안정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한국만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미국 자신에게도 필요한 개혁이다.
한국은 이제 세계 군수생태계의 핵심 국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질서의 오래된 균형을 뒤흔들었고, 그 충격 속에서 한국은 ‘수입국’에서 ‘공급국’으로 이동하는 전례 없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군수 공급난을 겪는 이 시기에, 한국은 단순한 전방 방어국을 넘어 세계 군수 체계의 핵심 부품이자 전략적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위상은 자동적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한국이 이 기회를 안정적 전략으로 전환하려면, 위협의 본질을 직시하며, 미국의 전략을 균형 축으로 되돌리고, 자국 안보·군수 역량을 일관된 구조로 발전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워싱턴의 전략 커뮤니티는 지금 묻고 있다. “한국은 이제 국제안보 공급망의 필수 국가가 되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현실에서 형성되고 있다. 한국은 국제질서의 ‘새로운 군수 축’으로 올라섰고, 그 위치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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