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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엔비디아 "오픈AI 투자 장담 못 해"…흔들리는 'AI 혈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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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엔비디아 "오픈AI 투자 장담 못 해"…흔들리는 'AI 혈맹'

오픈AI, AMD 칩 도입 등 '탈(脫)엔비디아' 움직임에 경고장…미묘해진 동맹
빅테크, 배타적 생태계 대신 '적과의 동침' 선택…리스크 분산 총력전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미국 반도체 패권의 정점에 있는 엔비디아가 가장 강력한 우군이었던 오픈AI를 향해 이례적인 견제구를 던졌다. 엔비디아는 최근 실적 보고서에서 오픈AI에 대한 계획된 투자가 완료될지 보장할 수 없다고 공식화했다. 단순한 행정적 지연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탈(脫)엔비디아'를 꿈꾸며 AMD와 손잡은 오픈AI에 대해 젠슨 황이 '투자 재검토'라는 카드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한다.

25일(현지 시각) 디지타임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이번 공시는 즉각적으로 실리콘밸리와 월가에 파장을 일으켰다. 굳건해 보였던 '엔비디아-오픈AI' 혈맹에 균열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의 발언을 고도로 계산된 '전략적 안전장치(safeguard)'로 분석한다. 오픈AI라는 단일 기업에 대한 대규모 베팅 리스크를 재산정하겠다는 의지다.

엔비디아의 태도 변화는 오픈AI의 행보와 직결된다. 오픈AI는 최근 공급망 다변화를 명분으로 엔비디아의 경쟁사인 AMD 칩 도입을 결정했고, 자체 주문형반도체(ASIC) 개발까지 서두르고 있다. 이에 엔비디아는 특정 파트너에 대한 의무감을 덜어내며 맞불을 놓았다. 오픈AI의 장기적인 재무 변동성을 우려해 투자를 확약하지 않겠다는 신호다. 동시에 엔비디아는 마이크로소프트(MS)·앤스로픽(Anthropic)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오픈AI 의존도 줄이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무너진 '기술 요새'…피아 식별 없는 합종연횡


이번 사태는 글로벌 AI 시장의 게임 법칙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과거 기업들이 자사 기술만으로 폐쇄적인 '기술 요새'를 쌓던 시대는 끝났다. 현재의 AI 생태계는 칩 설계, 클라우드, 모델 개발 전 영역에서 경쟁자와 손을 잡는 '중복 동맹'과 '교차 투자'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네트워크로 재편됐다.

오픈AI의 전략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다수의 클라우드·칩 공급사와 계약을 맺으며 생태계 확장을 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거의 모든 주요 AI 기업이 자본과 공급 계약으로 촘촘히 엮인 거대하고도 불안한 공생관계"라고 진단한다.

각자의 셈법은 명확히 다르다. △엔비디아는 GPU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장악한 압도적 공급망 △오픈AI는 GPT 서비스의 시장 지배력 △구글은 칩·클라우드·서비스의 수직계열화 △MS는 윈도·애저를 통한 기업 고객 기반이라는 확실한 무기를 쥐고 있다. 누구도 최종 승자를 장담할 수 없기에 기업들은 경쟁사에 투자함으로써 리스크를 분산하는 '헤징(hedging)' 전략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오픈AI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도 차가워졌다. 투자자들은 오픈AI가 공격적인 인프라 확장으로 막대한 '캐시 번(cash burn·현금 소진)'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언제쯤 흑자 전환이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오픈AI가 연방정부의 대출 보증을 타진했다는 소식은 향후 수년간 자금난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실속' 앤스로픽 vs '수직계열화' 구글


혼란스러운 오픈AI와 달리 경쟁자들은 차별화된 생존 전략을 가동했다. 오픈AI의 대항마로 꼽히는 앤스로픽은 '안정성'을 무기로 삼았다. 앤스로픽의 '클로드(Claude)'는 개인보다 기업간 거래(B2B)에 집중하며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다지고 있다.
특히 하드웨어 전략에서 앤스로픽은 자체 칩 개발이라는 모험 대신, 엔비디아와 구글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는 실리주의를 택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앤스로픽의 이러한 보수적인 접근이 오픈AI의 높은 운영 리스크와 대비되는 '안정적 균형추(counterweight)'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구글은 가장 강력한 펀더멘털을 과시한다. 자체 칩(TPU)과 모델, 검색·유튜브라는 유통망 그리고 막대한 현금 창출 능력을 모두 갖춘 유일한 '수직계열화' 기업이다. 다수의 전문가는 향후 AI 사이클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구글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엔비디아가 던진 '투자 불확실성'이라는 화두는 결국 AI 산업이 낭만적인 성장기를 지나 냉혹한 '옥석 가리기'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同志)도 없는 실리콘밸리에서 빅테크들의 생존을 위한 수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