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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엔비디아는 제2 시스코"…'빅쇼트' 버리, 회계 조작설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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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엔비디아는 제2 시스코"…'빅쇼트' 버리, 회계 조작설 제기

"매출은 돌려막기, 감가상각은 꼼수"…닷컴 붕괴 악몽 경고
社측 "재무 건전" 반박에도 2600억 하락 베팅…'창과 방패' 격돌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해 월가의 전설이 된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 타깃은 AI(인공지능) 열풍의 심장, 엔비디아(Nvidia)다. 그는 단순히 주가가 비싸다는 식의 고전적 고평가 논란을 넘어섰다. 엔비디아의 재무제표 속에 숨겨진 '회계적 착시'와 '비정상적 매출 순환 구조'를 정밀 타격하고 나섰다. 시장이 환호성에 취해 있을 때, 그는 과거 닷컴버블 붕괴의 신호탄이었던 시스코(Cisco)의 차트를 엔비디아 위에 겹쳐 놓고 있다고 쿼츠(Quartz)가 2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최근 청산된 버리의 사이언 자산운용(Scion Asset Management) 13F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11월 중순 펀드 등록을 취소하기 직전까지 엔비디아 주식 100만 주에 대한 풋옵션(Put Options)을 쥐고 있었다. 명목 가치만 1억 8700만 달러(약 2700억 원)에 달하는 거대한 하락 베팅이다. 그는 자신의 뉴스레터 '사슬 풀린 카산드라(Cassandra Unchained)'를 통해 현재의 AI 광풍을 "영광스러운 어리석음(glorious folly)"이라 명명하며, 엔비디아가 그 중심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① 감가상각의 마법…'이익 착시'


버리가 지적한 첫 번째 뇌관은 '감가상각(Depreciation) 스케줄'의 인위적 조정 가능성이다. 그는 엔비디아와 관련 업계가 하드웨어의 감가상각 기간을 경제적 현실보다 길게 늘려 잡고 있다고 의심한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빛의 속도로 빨라지는 AI 시장에서, 최신 칩의 실제 수명은 급격히 짧아지고 있다. 하드웨어 교체 주기가 빨라짐에도 불구하고 장부상 감가상각 기간을 길게 설정하면, 당장 장부상 비용은 줄어들고 이익은 급증하는 착시 효과가 발생한다. 버리는 "수조 달러짜리 AI 모델이 완성되기도 전에, 이를 뒷받침하는 하드웨어 사이클이 먼저 붕괴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당장의 실적 잔치가 미래의 비용을 당겨 쓴 결과일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버리는 감가상각 이슈가 단순한 회계적 처리가 아니라, 기업의 본질 가치를 왜곡하는 핵심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② 매출 돌려막기…'순환 거래' 의혹


더욱 치명적인 의혹은 소위 '순환적 자금 고리(circular money loops)'다. 버리는 클라우드 공룡 기업들과 AI 스타트업, 그리고 엔비디아 사이에 형성된 기이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구조는 이렇다. 클라우드 대기업이나 벤처캐피털이 AI 연구소나 스타트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다. 그리고 그 투자를 받은 기업들은 그 돈을 다시 엔비디아의 칩을 사는 데 쏟아붓는다. 겉보기엔 폭발적인 수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투자금이 매출로 둔갑해 뱅글뱅글 도는 '주고받기(give-and-take)'식 거래라는 것이다. 버리는 이러한 구조가 엔비디아의 매출 퀄리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본다. 실수요가 아닌, 투기 자본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 있다는 논리다.

여기에 더해 버리는 엔비디아의 주식 기반 보상(SBC)과 자사주 매입 정책도 도마 위에 올렸다. 회사가 자사주를 사들여 주가를 부양한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임직원들에게 뿌려지는 주식 보상으로 인한 지분 희석(dilution) 비용이 훨씬 크다는 주장이다. 발표된 주당순이익(EPS) 뒤에 가려진 주주 가치 훼손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③ "우린 다르다"…엔비디아의 정면 반박


엔비디아는 즉각적인 방어 태세를 취했다. 회사는 애널리스트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버리의 자사주 매입 계산법이 틀렸다고 반박하며, 자사의 사업 구조는 "경제적으로 건전하고, 재무 보고는 투명하다"고 못 박았다. 특히 논란이 된 '순환 매출'에 대해서는 "전략적 투자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sliver)하며, 파트너사들은 대부분 외부 고객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젠슨 황(Jensen Huang) CEO 역시 실적 발표에서 "우리는 과거의 버블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시장도 일단은 젠슨 황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엔비디아 주가는 실적 호조에 힘입어 5% 급등했고, 고점 대비 조정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시장의 주도주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다.

④ "파티 끝났다"…고독한 풍선 사냥꾼


하지만 버리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는 닷컴버블 당시 시스코가 "곡괭이와 삽을 파는 독점 기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영원히 성장할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이라는 거시경제의 벽에 부딪혀 90% 폭락했음을 상기시킨다. 그는 지금의 AI 인프라 구축 열풍이 당시의 '과잉 공급(overbuilt supply)'과 판박이라고 확신한다.

시장은 현재 하이퍼스케일러들이 3조 달러를 AI에 쏟아붓는 시나리오에 5조 달러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버리는 이 계산법이 틀렸다고 베팅했다. 그는 뉴스레터 마지막에 찰리 멍거(Charlie Munger)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외로운 싸움을 암시했다.

"파티장에서 풍선을 터뜨리고 다니면, 그 방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샴페인을 터뜨릴 때 '음악은 이미 멈췄다'고 외치는 버리. 그의 경고가 이번에도 적중할지, 아니면 빗나간 예언으로 남을지 월가의 시선이 그의 '빅쇼트'에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