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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즌, 창사 이래 최대 1만3000명 감원…"5G 올인하다 집토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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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즌, 창사 이래 최대 1만3000명 감원…"5G 올인하다 집토끼 잃었다"

슐먼 CEO "시장 점유율 7%P 증발은 자해(自害) 행위"…요금 인상 역풍 인정
내년 1월 'AI 기반 회생 로드맵' 공개…"경직된 조직 깨야 산다" 현장 권한 강화
주가 15% 하락·성장 정체…'네트워크 우위' 사라진 통신 공룡의 생존 몸부림
미국 1위 통신사업자 버라이즌(Verizon)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만 3000명 감원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1위 통신사업자 버라이즌(Verizon)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만 3000명 감원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 1위 통신사업자 버라이즌(Verizon)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3000명 감원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지난 5년간 무리한 요금 인상과 경직된 조직 문화로 인해 시장 지배력을 상실했다는 '자기 반성문'을 쓰며, 인공지능(AI)과 조직 유연화를 통한 생존 전략을 천명했다.

배런스는 지난 5(현지시각) 다니엘 슐먼 신임 최고경영자(CEO)가 전 직원 대상 생방송 웹캐스트를 통해 대규모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설파하고, 2026년을 기점으로 한 경영 정상화 비전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지금 도려내지 않으면 죽는다"… 슐먼의 '검은 셔츠' 경고


이날 슐먼 CEO는 검은색 셔츠 차림으로 붉은색 버라이즌 로고 앞에 섰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이번 13000명 감원은 선택이 아닌 필연(Inevitable)이었다"고 단언했다.

슐먼이 진단한 버라이즌의 위기는 외부 환경이 아닌 내부의 실책, '자초한 상처'였다. 그는 "비대한 조직과 경직된 비용 구조로는 급변하는 통신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재정적 유연성'을 가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인건비 절감이 아니다. 막대한 5G 네트워크 투자 비용과 고금리 기조 속에서, 경쟁사 대비 높은 운영 비용은 투자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는 분석이다. 슐먼은 "고객에게 줄 가치에 투자할 돈이 없다면 회사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지금의 고통스러운 감축이 없으면 훗날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금 올리자 고객 떠났다"5년간 점유율 5~7%P 증발


슐먼 CEO가 공개한 수치는 충격적이다. 지난 5년 동안 버라이즌은 시장 점유율을 500~700bp(5~7%포인트)가량 잃었다. 통신 시장에서 점유율 1% 포인트 변동이 수천억 원의 매출을 좌우함을 감안할 때 뼈아픈 실책이다.

원인은 명확했다. 슐먼은 "수익성을 방어하겠다고 요금을 올리자 고객들은 즉각 반발했고, 이탈률이 20~25bp(0.2~0.25%포인트) 치솟았다"고 털어놨다. 경쟁사인 T-모바일(T-Mobile)AT&T가 공격적인 저가 공세와 5G 커버리지 확장으로 치고 올라올 때, 버라이즌은 '프리미엄 네트워크'라는 자만심에 빠져 가격 저항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고객 서비스(CS) 품질 저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슐먼은 "현재 우리의 서비스 수준은 경쟁사보다 나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요금제를 해지하려다 복잡한 절차 때문에 분통을 터뜨린 말기 암 환자의 사례를 들며, "현장 직원에게 권한을 주지 않는 관료주의가 고객을 쫓아내고 있다"고 질타했다.

내년 127'2026 회생 계획' 공개… 승부수는 'AI·데이터센터'


버라이즌은 단순 감원을 넘어선 체질 개선을 예고했다. 슐먼 CEO"복잡한 요금제와 프로모션이 고객과의 마찰을 빚는 주원인"이라며, AI(인공지능)를 도입해 상품 제안을 단순화하고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청사진은 오는 127일 예정된 4분기 실적 발표에서 공개된다. 시장에서는 AI를 활용한 개인화된 요금 설계와 상담 자동화 등 고강도 디지털 전환(DX) 전략이 담길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슐먼은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등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업체)들의 데이터센터 확장 경쟁을 새로운 기회로 지목했다. 통신망과 데이터센터를 잇는 연결성(Connectivity) 사업에서 신규 수익원을 창출하겠다는 복안이다.

5G 투자비 뽑기도 전에… 주가 15% 하락에 쏠린 '냉담한 시선'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전임 한스 베스트베리 CEO 재임 기간 버라이즌 주가는 약 15% 하락했고, 최근 3개월 사이에도 6%가량 빠졌다.

재무 성적표도 제자리걸음이다. 기업의 현금창출능력을 보여주는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2019472억 달러(69조 원)에서 2024488억 달러(72조 원), 5년 동안 사실상 정체 상태다. 천문학적인 5G 주파수 경매 대금과 설비 투자비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수익성은 뒷걸음질 친 셈이다.

월가 전문가들은 "네트워크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버라이즌만의 차별점이 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슐먼의 구조조정이 비용 절감 효과는 있겠지만, 이미 포화 상태인 미국 통신 시장에서 떠나간 가입자를 다시 불러올 획기적인 '한 방'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슐먼 CEO"4분기를 든든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추수감사절 시즌 실적이 호조를 보인 것은 그나마 위안거리다. 통신 공룡 버라이즌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공룡의 멸종'을 피하고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지, 내년 1월 발표될 회생 계획에 전 세계 통신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