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관계, 무기 거래의 후퇴가 아니라 경제·산업 기반의 확장하고 있어...미국과 서구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실패 속에서 드러난 인도의 대러 전략 모델에서 배우는 한국의 전략적 선택
이미지 확대보기인도–러시아 관계의 조용한 재구조화가 의미하는 것
인도와 러시아의 관계는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을 맞고 있다. 최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차세대 전투기, 첨단 방공 체계, 소형 모듈 원전 같은 상징적 방산 프로젝트가 모두 빠져 있었다. 대신 경제 협력, 북극항로, 쇄빙선 공동 설계, 인력 이동, 교역 구조 재편이 전면에 배치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군사 관계가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지 글로벌이코노믹이 분석한, 인도 군사안보 전문 매체와 로이터 통신 보도들을 함께 놓고 보면,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은 오히려 무게 중심의 이동에 가깝다. 인도와 러시아는 무기 중심의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경제와 산업, 인구와 물류가 결합한 수평적 전략 동맹으로 관계의 틀을 다시 짜고 있다. 무기 거래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경제·산업 기반 위에 다시 얹기 위한 준비 단계로 이동한 것이다.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인도는 러시아 고위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하며 전략 무기 분야에서 굵직한 합의가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에는 기존에 언급되던 스텔스 전투기나 장거리 방공 체계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인도 매체는 이를 실패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금융 제재, 공급망 붕괴, 러시아의 루피 활용 제약 등 현실적 환경에서 군사 계약보다 경제 기반 조성이 먼저라는 판단이 작동했다고 분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유럽의 제재로 러시아는 달러 결제망에서 사실상 이탈했다. 인도는 루피 결제를 선호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루피를 받아도 국제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하기 어렵다. 인도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와 자원을 대량으로 들여오며 교역의 균형은 러시아의 루피 잔고 누적으로 나타났다. 이 구조에서는 대형 무기 계약을 체결해도 러시아는 실질적 구매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양국이 군사 계약보다 경제 기반을 먼저 구축하기로 판단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북극항로와 쇄빙선 협력에 담긴 새로운 해양 전략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북극항로와 쇄빙선 협력이었다. 인도 조선소와 러시아 조선업이 얼음을 뚫고 항해할 수 있는 선박을 공동 설계하고 인도 현지 생산 가능성까지 열어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한 인도 선원이 북극 해역에서 운항할 수 있도록 러시아가 항해 훈련과 운항 경험을 제공하는 방안도 담겨 있다.
이 협력은 단순한 선박 제작을 넘어선다. 러시아는 북극해 연안을 따라 극동과 유럽을 잇는 새로운 해상 교역 축을 전략 목표로 삼고 있다. 기존의 북유럽–대서양–지중해 항로가 서방 제재로 사실상 제한된 상황에서, 러시아는 자신이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북극항로를 새로운 경제 회랑으로 성장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 항로를 연중 가동하려면 수십 척의 쇄빙선과 극지 선박이 필요하지만 글로벌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인도는 이러한 수요를 전략적 기회로 해석한다. 조선·철강·기계 산업 역량을 동원해 극지 대응 선박을 대량 생산하고, 북극항로 진입을 준비하는 각국 해운사에 선박과 선원을 공급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인도 매체는 인도가 단순한 선박 공급국을 넘어 유라시아 교역 회랑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한다.
노동력 이동 협정이 가져오는 동맹의 깊이 변화
노동력 이동 협정 역시 이번 공동성명의 핵심이다. 러시아는 전쟁과 인구 감소로 산업 전반에서 노동력이 부족하고, 인도는 대규모 청년층을 보유하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이미 일부 노동력 이동이 존재했지만, 이번 합의는 그 흐름을 제도화하고 규모를 확대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노동력 이동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실제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국경을 오가고, 이들이 국내에 보내는 송금과 소비 패턴이 지속적인 경제 흐름을 만든다. 이러한 흐름은 무기 계약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깊게 양국 관계를 연결한다. 이것은 단기 군사 계약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구조적인 상호 의존을 만든다.
러시아 시장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인도산 산업·소비재
인도산 산업재와 소비재가 러시아를 빠르게 채우고 있다. 공작 기계, 산업용 부품, 의약품, 제네릭 약품, 향신료, 차, 커피, 가공식품, 의류와 소비재가 러시아 시장에서 유럽 브랜드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검역·인증 문제가 해결될 경우 농산물과 수산물 수출도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흐름은 단순한 품목 교체가 아니라 러시아 시장의 구조적 재편이다. 러시아의 산업 생태계와 소비 생태계가 서방에서 떨어져 나와 인도와 연결되는 새로운 축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제재 이후 러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방향이기도 하다.
방산 공동생산 검토가 드러내는 인도의 이중 전략
러시아 매체인 모스크바타임스가 12월9일 로이터통신 보도를 인용해 전한 러시아와 인도 간 방산 협의는 군사 협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도 방산 대표단은 미그 전투기와 러시아 방공 시스템에 필요한 부품을 인도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러시아는 인도 생산 시설을 통해 부품을 역수출하는 방안까지 제안했다. 이는 방산 협력이 완제품 구매 중심에서 설계·생산 기반의 공동 개발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동 연구개발, 공동 설계, 공동 생산은 단순한 무기 거래가 아니라 기술 축적과 산업 기반의 공유로 이어진다. 인도는 서방과의 군사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러시아와의 협력을 끊지 않는 이중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공급망과 제재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현실적 선택이기도 하다.
자유주의 국가 인도가 보여주는 ‘현실주의적 제한적 승리 전략’
이 모든 움직임을 관통하는 핵심은 인도의 전략적 선택이다. 인도는 분명 자유주의 민주국가이지만 미국·서유럽처럼 자유주의 확장 전략을 외교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인도는 가치를 중심에 둔 해방 서사를 추구하지 않고, 철저히 국익을 중심에 둔 현실주의 전략을 구사한다.
러시아는 권위주의 국가이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인도는 안보·에너지·산업 공급망이라는 현실적 필요 때문에 러시아와의 협력을 유지한다. 이것은 완전한 승리를 추구하는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아니라, 충돌을 최소화하면서 필요한 영향력만 확보하는 제한적 승리 전략의 전형이다.
이 전략은 미국과 서유럽의 전략 실패와도 대비된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를 서구식 자유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완전한 승리(a full victory)의 전략, 즉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추진했다. 그 상징적 사례가 바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편입 시도였다. 미국과 서유럽이 러시아의 레드라인을 오판하고 나토 확장을 시도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된 것이다.
이 점은 본지 글로벌이코노믹이 지난 11월 하순부터 워싱턴과 브뤼셀을 향해 제기한 문제의식과 일치한다.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폐기하고 현실주의적 세력균형 전략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본지의 분석은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레이건 국방포럼에서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종식을 선언한 흐름으로 확인되었다.
인도의 선택은 바로 이 같은 시대적 전환의 실체이다. 자유주의 국가라도 국익을 위해서는 권위주의 국가와 협력할 수 있으며, 완전한 승리가 아니라 제한적 승리(a limited victory)를 추구하는 것이 국제 정치의 현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이 인도와의 협력을 바라보아야 할 새로운 전략적 관점
한국은 인도가 보여주는 이 현실주의 전략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중 의존 구조 안에 갇혀 있으며 전략 자율성이 제한되어 있다. 인도처럼 가치보다 국익, 진영보다 균형, 동맹보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한국은 인도와의 안보·경제 협력을 제한적 승리 전략의 관점에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북극항로, 선박 건조, 방산 공동생산, 산업 공급망 구축, 에너지 안보까지 협력 범위는 넓다. 인도와의 협력은 단순한 시장 확대가 아니라 한국의 전략 공간을 넓히는 현실적 선택이 될 수 있다.
한국이 어느 시점에 어떤 동맹과 경제 축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균형을 만들고 어떤 자율성을 확보할 것인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인도–러시아의 전략적 재구조화는 한국에게 바로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기 거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전략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인도와 러시아의 관계 변화는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말한다. 냉전 시기의 전략 동맹이 무기와 군사기지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면, 새로운 시대의 전략 동맹은 해상 교역과 에너지, 인력과 산업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무기 계약이 빠진 것은 공백이 아니라 전략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신호인 것이다.
경제 기반이 전략을 규정하고, 무기는 그 기반 위에 얹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한국이 이 같은 구조적 변화를 읽고 선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여부가 한국의 다음 10년을 결정할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일본증시] 닛케이평균, AI 거품 우려에 하락...한때 4만9000엔 ...](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setimgmake.php?w=80&h=60&m=1&simg=2024080515474400644e250e8e18810625224987.jpg)
![[특징주] KRX 2차전지 TOP10지수 6%대 '급락'...하루만에 시총 1...](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setimgmake.php?w=80&h=60&m=1&simg=2025121816155401634edf69f862c1182356624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