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빚으로 지은 데이터센터”… 1250억 달러 ‘부채 폭탄’ 째깍

글로벌이코노믹

“빚으로 지은 데이터센터”… 1250억 달러 ‘부채 폭탄’ 째깍

오라클 주가 급락·CDS 프리미엄 2009년래 최고… 금융 불안 ‘전조’
사모대출·ABS 등 ‘그림자 금융’으로 위험 전이… “2008년 위기 데자뷔”
韓 투자자, ‘묻지마 투자’ 경계령… 재무 건전성·현금흐름 옥석 가려야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막대한 빚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시장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를 불렀던 구조화 금융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막대한 빚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시장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를 불렀던 구조화 금융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미지=제미나이3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막대한 빚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만해도 2025년 데이터센터에만 약 1180억 달러(174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를 불렀던 구조화 금융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코노믹 타임스는 지난 12(현지시간) UBS 보고서를 인용해 올해 들어 AI 데이터센터 및 프로젝트 파이낸싱 규모가 1250억 달러(184조 원)로 폭증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50억 달러) 대비 8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글로벌 증시가 AI 열풍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를 달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부채로 쌓아 올린 인프라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앤턴 돔브로브스키 티로우프라이스(T. Rowe Price) 채권 포트폴리오 스페셜리스트는 공모 및 사모 신용 시장이 AI 투자의 핵심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급격한 부채 증가는 시장의 불안 요인을 키운다고 진단했다.

오라클의 경고등… 치솟는 부도 위험 지표


부채 급증에 따른 시장의 불안감은 이미 주요 기술 기업의 주가와 신용 지표에서 드러나고 있다. 오라클은 지난 11일 주가가 11% 가까이 급락하며 1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대규모 지출 계획과 실적 전망 악화가 투자 심리를 냉각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오라클의 신용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은 2009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S&P 글로벌 데이터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오라클의 채무 불이행 가능성에 대비해 보험 성격인 CDS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보아즈 와인스타인이 이끄는 사바 캐피털 매니지먼트(Saba Capital Management) 등 헤지펀드들도 최근 몇 달간 오라클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채권에 대한 신용 보호 상품을 매도하며 변동성에 베팅하고 있다. 기술 기업 경영진은 "AI 기술 선점을 위해 과감한 지출이 필수적"이라고 항변하지만, 시장은 막대한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지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다.

우량채부터 정크본드까지… 회사채 시장 덮친 ‘AI 자금 블랙홀


투자등급(IG) 회사채 시장에서도 기술 기업의 자금 조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난 9월과 10월 오라클(180억 달러, 26조 원)과 메타(300억 달러, 44조 원)가 대규모 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도 차입 대열에 합류했다. JP모건은 자사 투자등급 지수에서 AI 관련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4%에 달해 미국 은행 섹터를 앞질렀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신용도가 낮은 '하이일드(고수익·고위험)' 채권 시장으로 위험이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딜로직 데이터에 따르면 기술 분야 정크본드 발행액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알 캐터몰 미라보 에셋 매니지먼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데이터센터가 제때 완공되어 예산 내에서 가동될지, 실제 수요가 뒷받침될지 검증되지 않았다""검증되지 않은 사업은 채권이 아닌 주식과 같은 위험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직 실체가 불분명한 사업에 빚을 내어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다.

그림자 금융의 습격… 사모대출과 ABS 뇌관


은행이 아닌 투자회사 등이 자금을 빌려주는 '사모대출(Private Credit)'과 자산유동화증권(ABS) 시장의 역할 확대도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2028년까지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15000억 달러(2216조 원) 중 절반 이상을 사모대출 시장이 공급할 것으로 내다봤다. UBS 역시 내년 초까지 1년간 AI 관련 사모대출 규모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데이터센터 임대료 등을 담보로 발행하는 ABS 시장도 급성장세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미국 ABS 시장에서 디지털 인프라 관련 상품이 5년 새 9배 이상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2026년에는 데이터센터 담보 ABS 공급 물량이 500~600억 달러(73~88조 원) 추가될 전망이다.

하지만 ABS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꼽혔던 만큼 우려의 시선도 여전하다.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묶어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부실 위험이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중앙은행(BOE)"AI 인프라 붐에 따른 부채 증가는 자산 가치 조정 시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빚더미 위 AI’, 한국 투자자도 옥석 가려야


AI 산업의 성장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이라는 레버리지를 통한 성장은 양날의 검과 같다. 이번 외신 보도는 한국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시각 변화를 제공한다.

첫째, '묻지마 투자'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단순히 AI 관련주라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오르던 시기는 지났다. 오라클의 사례처럼 막대한 설비투자(CAPEX)가 현금흐름 악화로 이어질 경우, 시장은 즉각적으로 밸류에이션 조정을 요구할 것이다. 기업의 부채 비율과 이자 보상 배율 등 재무 건전성을 꼼꼼히 따져야 할 때다.

둘째, 크레딧 리스크(신용 위험) 전이 가능성을 주시해야 한다. 미국 하이일드 채권과 사모대출 시장의 부실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유동성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 관련 ABS 부실화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사한 구조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 투자자들은 미국 빅테크 기업 투자 시, 해당 기업의 AI 수익화 시점과 부채 조달 구조를 면밀히 살피는 '선별적 접근'이 필요하다. 화려한 AI 청사진 뒤에 가려진 재무적 그림자를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