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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쏠림의 부메랑…“범용 D램 씨 말랐다, 2026년 가격 20% 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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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쏠림의 부메랑…“범용 D램 씨 말랐다, 2026년 가격 20% 폭등”

생성형 AI 블랙홀, 레거시 라인 잠식…PC·가전 등 전방산업 ‘공급 쇼크’ 예고
SK하이닉스·마이크론 HBM 올인에 범용 칩 생산 절벽…2027년까지 ‘공급자 우위’
‘슈퍼 사이클’ 착시 주의…HBM·범용 ‘양수겸장’ 갖춘 기업 주목해야
삼성전자의 HBM3E와 HBM4.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의 HBM3E와 HBM4.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 테크 산업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이라는 금광을 쫓느라 정작 곡괭이 자루가 부러지는 사태를 맞고 있다. 반도체 제조사들이 수익성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사활을 걸면서, 전체 D램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범용 메모리 생산 라인이 급격히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공급 절벽은 2026년을 넘어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자공학 전문매체 EE타임스는 지난 17(현지시각) ‘AI 수요 폭발과 반도체 현실 점검이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2025년 반도체 시장이 외형적 성장 속에서도 심각한 메모리 수급 불균형이라는 암초를 만났다고 지적했다.

‘HBM 올인이 부른 나비효과… 범용 칩 공급이 메말랐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 보고서를 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반도체 매출은 3640억 달러(538조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9% 늘었다. 2025년 전체 시장은 9750억 달러(1441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통계의 이면에는 공급망 동맥경화가 도사리고 있다. 문제는 공급 능력의 한계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주요 메모리 기업은 제한된 설비투자(CAPEX) 내에서 HBM 생산 능력을 늘리기 위해 기존 범용 D(LPDDR4, DDR4 ) 생산 라인을 HBM용으로 전환했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식의 대응이 결국 탈을 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는 주요 제조사의 라인 전환으로 범용 LPDDR4 메모리 재고가 바닥을 드러냈다“AI 확산에 따른 간접 효과까지 겹쳐 메모리 가격은 2026년에만 최대 20% 급등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PC·자동차 산업으로 번지는 불똥… 2027년까지 고물가지속


이러한 공급 부족은 AI 서버를 넘어 PC, 스마트폰, 자동차 전장 등 정보통신기술(ICT)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최신 AI 가속기를 돌리려 해도 데이터를 받아줄 일반 D램이 부족하면 시스템 성능을 낼 수 없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부족 사태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신규 팹(Fab·반도체 공장)을 건설해 가동하기까지 최소 2~3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EE타임스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로 중국산 저가 메모리 유입마저 막힌 상황이라며 공급자 우위 시장은 2027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맥킨지앤드컴퍼니는 2030년까지 생성형 AI 연산 수요가 현재 슈퍼컴퓨터 성능을 뛰어넘는 25×10^30 플롭스(FLOPs)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연산량을 감당할 메모리 인프라가 필수적임을 뜻한다.

글로벌 기업의 생존법… M&A와 기술 초격차


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각자도생에 나섰다. 미국 마벨 테크놀로지는 지난 2일 광소자 기술 기업 셀레스티얼 AI’325000만 달러(48000억 원)에 인수하며 데이터 전송 병목 해결에 뛰어들었다. 마이크론은 일본 히로시마에 96억 달러(141900억 원)를 들여 HBM 신공장을 짓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기술 리더십으로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기흥 캠퍼스에 차세대 R&D 단지 ‘NRD-K’를 짓고 1000단 이상의 V낸드와 차세대 D램 개발에 속도를 낸다. HBM뿐 아니라 범용 메모리의 집적도를 높여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 투자자들은 이번 반도체 사이클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 호황기가 모든 반도체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밀물이었다면, 이번 AI 사이클은 준비된 기업만 살아남는 차별화 장세.

첫째, HBM 공급망에 진입했는지 여부보다 범용 메모리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HBM은 수익성이 좋지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반면 공급이 부족한 범용 D램 가격 상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종합 반도체 기업(IDM)의 전체 영업이익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둘째, 2026년까지 이어질 설비 투자(CAPEX) 사이클의 수혜주를 선별해야 한다. 삼성과 마이크론 등이 부족한 생산능력을 메우기 위해 장비 발주를 늘릴 수밖에 없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중에서도 HBM 공정과 범용 공정 모두에 장비를 공급하는 하이브리드형기업이 유망하다.

딜로이트 보고서가 경고했듯 반도체 산업은 변동성이 큰 변덕스러운 연인과 같다. AI라는 화려한 간판 뒤에서 벌어지는 범용 칩의 공급 전쟁, 그 틈새에 진짜 기회가 숨어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