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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여 前 싱가포르 장관 “미·중은 서로의 머리에 '금고아'를 씌운 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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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여 前 싱가포르 장관 “미·중은 서로의 머리에 '금고아'를 씌운 형국”

달러 패권의 균열과 초강대국의 ‘급소’ 희토류… 트럼프 2기 질서 진단
“대만은 미·중 관계의 하위 범주, 홍콩과 싱가포르는 경쟁 아닌 상호 보완 관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양자 회담 후 마라라고 저택 앞 파티오를 걷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양자 회담 후 마라라고 저택 앞 파티오를 걷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
싱가포르 외교의 거물이자 아시아의 대표적 전략가인 조지 여(George Yeo) 전 싱가포르 외교장관이 격변하는 세계정세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내놓았다.

그는 미·중 관계의 안정화 가능성과 달러 패권의 위기,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홍콩의 미래에 대해 거침없는 견해를 밝혔다고 22(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 미·중 관계의 새로운 평형: 서로의 머리에 씌운 ‘금고아’


조지 여 전 장관은 현재의 미·중 관계를 소설 『서유기』 속 손오공의 머리띠인 ‘금고아’에 비유했다. 양국이 서로에게 치명적인 ‘골칫거리(Chokehold)’를 쥐고 있어 함부로 폭발하지 못하는 상호 억제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첨단 산업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중희토류(Heavy Rare Earths) 공급망을 독점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단기적으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초크홀드’다.

미국은 핵심 기술의 중국 유입을 차단하고 항공기 엔진 등 정밀 부품 공급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는 “트럼프는 임기 내내 중간선거와 경제 안정을 위해 중국과의 무역 휴전이 절실하다”며, 당분간은 양측이 서로를 통제하는 이성적인 상태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 미국 달러의 위기와 기축 통화의 다변화


여 전 장관은 특히 미국 달러의 위상 변화에 대해 경고했다. 미국의 막대한 적자와 부채를 고려할 때, 언젠가는 그 빚을 현금화(인플레이션 유발)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금 가격 상승을 미 재정 상황에 대한 우려의 지표로 보았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 재고를 늘리는 것 역시 달러 패권의 균열에 대비한 신중한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위안화의 국제화에는 자본 통제라는 장벽이 있어 단기간에 브릭스(BRICS) 통화가 달러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대신 미국의 금융 무기화에 대한 억제력으로서 대안 결제 시스템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 대만과 류큐 문제: “베이징과 일찍 협상하는 것이 낫다”


대만 문제에 대해 그는 “대만은 미·중 관계의 하위 범주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트럼프가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에서 대만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대만이 중국과의 큰 거래를 망치지 않기를 원한다는 강력한 신호라는 것이다.

그는 리콴유 전 총리의 말을 인용해 “대만이 10년을 더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 협상하는 것이 더 많은 자치권을 누릴 수 있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대만 문제를 자극함에 따라, 중국이 과거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덮어두었던 류큐(오키나와) 귀속 문제를 비공식 채널을 통해 다시 제기하며 대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 홍콩 vs 싱가포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관계”


최근 다국적 기업들이 홍콩을 떠나 싱가포르로 이전하는 현상에 대해 그는 “술집 잡담 수준의 과장”이라고 일축했다. 두 도시는 런던과 모스크바만큼 거리가 멀며, 홍콩은 중국을,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를 섬기는 상호 보완적 존재라는 설명이다.

그는 “홍콩의 가치는 중국 시스템의 ‘장벽 밖’에 있다는 점에 있다”며, 홍콩이 본토를 전복하는 통로가 아닌, 중국과 세계를 지능적으로 연결하는 포털 역할을 유지할 때 밝은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아세안의 생존 전략: “팍스 아메리카나의 후퇴를 준비하라”


여 전 장관은 미국이 재정적 한계로 인해 세계 800여 개의 군사 기지를 줄이고 ‘핵심권’ 위주로 후퇴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제국이 후퇴할 때 지역 패권국이 등장하고 불안정이 초래되는 역사의 법칙에 따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아세안(ASEAN)을 중심으로 뭉쳐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중국은 이미 동남아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며, 우리는 동남아에 미국이 계속 머물길 원하지만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 정신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