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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의회 "돈 벌려다 나라 뺏길 판"… 中의 스파이 총력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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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의회 "돈 벌려다 나라 뺏길 판"… 中의 스파이 총력전 '경고'

정보위 "中, 기업·학계·시민 동원해 英 경제 뼛속까지 침투"
스타머 총리 "국익 우선" 실리 외교 vs 의회 "FIRS '고위험국' 지정 시급"
전문가 "英, 美 트럼프 2기 '선별적 관여' 전술과 동조… 안보·경제 줄타기"
영국 해군 소속의 45형(Type 45, 데어링급) 방공 구축함인 HMS 디펜더(HMS Defender, D36)입니다. 예인선(tugboat)의 도움을 받으며 항구에 접근 중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영국 해군 소속의 45형(Type 45, 데어링급) 방공 구축함인 HMS 디펜더(HMS Defender, D36)입니다. 예인선(tugboat)의 도움을 받으며 항구에 접근 중이다. 사진=로이터

영국 정부가 당장의 경제적 실리를 챙기느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국의 공세에 눈을 감고 있다는 의회 차원의 강력한 경고음이 울렸다. 중국이 이른바 '국가 총력전'을 통해 영국 사회 전반에 침투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대응 수위를 높이지 않고 늑장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현지시각) 에포크타임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영국 의회 정보보안위원회(ISC)는 최근 발간한 ‘2023-2025 연례보고서를 통해 영국 정부가 안보 우려보다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는 안일한 태도를 보인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스파이·M&A·학계 교류 앞세워 영국 안방 장악


지난 15일 공개된 ISC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국가 정보 조직을 가동하며 영국 안보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위원회는 중국의 접근 방식을 '국가 총력전'으로 규정했다. 이는 중국 국영 기업뿐만 아니라 비국영 기업, 학술·문화 기관, 심지어 일반 시민까지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해외 간첩 활동과 내정 간섭에 동원될 수 있음을 뜻한다.
보고서는 "중국 영향력은 경제력, 기업 인수합병(M&A), 학계와의 교류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중국은 그 규모와 야망, 능력을 앞세워 영국 경제의 모든 부문에 성공적으로 침투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중국의 위협은 고도화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가 배후 세력과 사이버 범죄자들이 인공지능(AI)을 악용해 공격의 규모와 파급력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5년 안에 상업적 사이버 침해 사고가 급증할 것이며, 위협의 원점을 파악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경제냐 안보냐'FIRS 지정 둘러싼 갈등


이번 보고서의 핵심 쟁점은 지난 7월 시행된 '외국 영향력 등록 제도(FIRS)'의 운영 방식이다. 영국 국가안보법에 근거한 이 제도는 외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 활동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 현재 가장 높은 감시 수준인 '강화된 등급(Enhanced Tier)'에는 이란과 러시아만 지정되어 있다.

ISC"중국의 간섭 작전이 제기하는 위협의 정도를 고려할 때, 정부가 중국을 강화된 등급에 포함하는 결정을 미루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해명했지만, 위원회는 "안보 우려가 경제적 고려 때문에 간과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신속한 의사결정을 촉구했다.

스타머 정부의 딜레마와 트럼프식 해법... 안보 규제 강화 속 '줄타기' 계속될 듯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안보 위협을 인정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스타머 총리는 지난 1일 런던 길드홀 연설에서 "중국은 국가 안보 위협"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단순한 이분법을 거부하고 국익을 위해 교역과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황금시대''빙하기'도 아닌 실용적 접근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대만 난화대학의 쑨궈샹 국제문제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영국 정부가 고위험 부문은 철저히 방어하되, 저위험 부문에서는 무역과 투자 채널을 열어두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대만 국방안보연구소의 중즈둥 부연구위원은 스타머 총리의 행보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중국 정책 기조와 맞물려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비교적 유연한 태도를 보이며 안보보다는 경제·무역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영국 역시 과거처럼 중국을 안보의 절대적 도전자로만 규정하기보다 미국의 접근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영국 정부가 전면적인 대중국 대결보다는 '관리된 관여(managed engagement)' 정책을 펼칠 것으로 내다봤다. 쑨 교수는 "영국 내에서 경제적 이익보다 안보를 우선해야 한다는 의회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사이버 활동에 연루된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처럼 안보 집행 도구는 강경해지겠지만, 전면적인 관계 단절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ISC 보고서에 대해 "국가 안보는 정부의 최우선 의무"라며 "국익과 국제적 이익에 기반해 중국과의 관계를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한편, 리처드 나이턴 영국 국방참모총장은 지난 15일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연설에서 "점점 위험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더 많은 국민이 국가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경고하며 안보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