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기후변화 대응이 본격화되면서 에너지 관련 국제기구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석유를 둘러싼 논쟁의 초점이 고갈 시점에서 수요 정점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석유를 얼마나 더 생산할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세계 석유 생산이 이르면 향후 2년 안에 정점을 찍고 이후 급격한 감소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고 독일 공영 국제방송 도이체벨레가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세계 석유 소비량은 하루 약 1억300만~1억400만배럴 수준이나 노후 유전의 빠른 생산 감소와 신규 유전 발견 부진이 겹치면서 수요와 무관하게 공급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며 도이체벨레는 이같이 전했다.
글로벌 석유 시장의 핵심 변수로 공급 측 구조적 위험이 부상하고 있다는 얘기다.
◇ 수요 정점 놓고 엇갈린 국제에너지기구와 석유수출국기구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석유 수요 전망을 두고 국제기구와 산유국 단체의 시각은 뚜렷하게 엇갈린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각국이 에너지·기후 정책을 계획대로 이행한다는 전제 아래 세계 석유 수요가 2030년 전후 하루 약 1억200만배럴 수준에서 정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IEA는 지난달 발표한 ‘세계 에너지 전망 2025’ 보고서에서 전기차 확산과 청정에너지 전환이 수요 증가를 억제할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정반대 전망을 내놓고 있다. OPEC은 최근 장기 전망 보고서에서 세계 석유 수요가 2050년 이전에 정점을 찍지 않을 것이며 중반기에는 하루 약 1억2300만배럴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산유국들의 지속적인 투자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정책 이행 부족하면 공급 감소가 더 큰 위협”
전망은 엇갈리지만 공급 측 불안정성에 대해서는 공통된 우려가 나온다.
IEA는 별도의 투자가 없을 경우 기존 유전의 생산량이 매년 약 8%씩 감소하고 있으며 현재 투자의 대부분은 신규 생산 확대가 아니라 노후 유전 감소분을 메우는 데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카 홀츠 독일경제연구소(DIW) 에너지·교통·환경 부문 부소장은 “보수적인 정책 시나리오가 다시 포함된 것은 세계가 기후 목표 달성 궤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서 “화석연료를 에너지 체계에서 충분히 빠르게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IEA는 현재 법과 정책만 유지되는 ‘현행 정책 시나리오’에서는 2028년 이후 미국, 브라질, 가이아나, 캐나다 등 비석유수출국기구 국가들의 공급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등 중동 산유국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IEA는 내다봤다. 기후 공약이 이행되지 않으면 2050년 석유 수요가 하루 약 1억1300만배럴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도 IEA는 내놨다.
◇ “미국 셰일오일도 한계…생산 정점 임박”
공급 위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스페인 국립연구위원회(CSIC) 소속 물리학자이자 피크 오일 연구자인 안토니오 투리엘은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이미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텍사스와 뉴멕시코에 걸친 퍼미안 분지의 핵심 유망 지역은 이미 대부분 개발됐다”며 “생산 감소 속도가 해마다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투리엘은 “앞으로 1~2년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만 이후에는 매우 빠른 하락이 시작될 것”이라며 “전 세계 유전의 약 80%는 이미 생산 정점을 지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2030년 이전 연간 약 5% 수준의 뚜렷한 생산 감소가 시작되고 이후 20년 동안 전체 석유 생산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 트럼프 정책 변수…에너지 전환 지연 우려
공급 제약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각국의 에너지 전환 속도는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르웨이의 전기차 정책, 중국의 청정기술 산업 전략, 유럽연합(EU)의 기후 법제처럼 일관된 정책 틀을 유지하는 국가는 제한적이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화석연료 생산 확대와 전기차 지원 축소가 추진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제프 콜건 브라운대 정치학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 정부의 녹색 산업 정책을 되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기후 정책을 떠받쳐온 과학과 제도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다”며 “이같은 움직임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도이체벨레는 석유 수요 정점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실제 시장을 뒤흔들 핵심 변수는 수요보다 공급일 수 있으며 생산 정점이 예상보다 빨리 도래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 상당한 혼란 속에서 진행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