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 빚 1000만원·대출금 6000만원 남았지만 재취업 안 돼
실업급여 월 156만원 5개월 만에 끊겨…미국 장기실업자 25% 육박
실업급여 월 156만원 5개월 만에 끊겨…미국 장기실업자 25% 육박
이미지 확대보기65세 린 리가 올해 4월 네 번째 해고를 당했을 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보도한 린 리의 사례는 저축 없이 재정 부담을 안은 고령 노동자들이 직면한 미국 취업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 30년간 경제 격변 속에서 계속 일자리를 찾아왔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30년 직장 폐쇄 뒤 반복된 해고
린 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커쇼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동자다. 10학년 때부터 일을 시작해 새벽 5시에 일어나 스쿨버스를 운전하고, 방과 후엔 소닉 드라이브인에서 일했다. 16세에 어머니를 잃은 뒤 섬유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29년간 린 리는 스프링스 인더스트리스 섬유 공장에서 일했다. 연봉 4만 8000달러(약 6900만 원)에 복지 혜택까지 받으며 이 회사에서 은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7년 스프링스가 미국 공장을 폐쇄하고 브라질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면서 첫 번째 해고를 당했다. 퇴직금으로 6개월치 급여를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간판 제작업체가 인력을 감축했다. 올해 4월엔 글로벌 농업기업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가 구조조정으로 커쇼의 콩 가공 공장을 폐쇄하면서 네 번째 해고를 맞았다. 린 리는 2021년부터 이 공장에서 시간당 17.4달러를 받으며 송장 처리와 콩 선적 추적 업무를 담당했다.
월 156만원 실업급여 5개월 만에 끊겨
해고 후 린 리가 받는 실업급여는 세후 주당 270달러(월 1080달러·약 156만 원)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법에 따라 5개월 뒤엔 이마저 끊긴다. 이후엔 2020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전 남편의 유족 연금 월 830달러(약 119만 원)에만 의존해야 한다.
린 리에겐 2020년 유방암 치료와 2024년 심장 시술로 발생한 의료비 빚 7000달러(약 1000만 원)가 남아 있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 잔액 4만 2000달러(약 6000만 원)까지 있어 은퇴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주택담보대출 월 상환액은 700달러(약 100만 원)다.
본인 명의 사회보장연금을 신청하면 월 1850달러(약 267만 원)를 받을 수 있지만, 그러면 전 남편의 유족 연금을 포기해야 한다. 의료비와 각종 청구서를 감안하면 빠듯한 액수다.
27주 이상 실직자 25% 육박
린 리의 구직 활동은 난항을 겪었다. ADM 폐쇄 직후 치과 스케줄 담당자, 수도 회사 사무직에 지원했다. 지인 소개로 프로판 회사 인사 업무 면접을 봤을 때는 시간당 22달러를 제시받았다. "면접을 아주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회사는 다른 사람을 채용했다.
커쇼에 새로 들어선 오셔나골드의 헤일 금광에도 지원했다. 이 광산은 1820년대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금광 중 하나였으나, 1942년부터 2017년까지 대부분 휴면 상태였다가 2015년 오셔나골드가 인수해 재가동했다.
ADM 해고 노동자 대상 채용 박람회에서 오셔나골드 인사 담당자를 만났고, 며칠 뒤 면접 연락을 받았다. 엑셀 사용 경험, 직원과의 갈등 대처법 같은 일반적인 질문을 받았다. 몇 주 뒤 동물원에서 손녀와 함께 있던 린 리는 탈락 통보를 받았다.
미국 노동시장에서 장기 실직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실직자 가운데 27주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의 비율이 4분의 1에 이른다. 지난달 기준 미국 실업률은 4.6%로, 약 4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총 실업자 수는 약 780만 명이다.
고령 노동자들은 물가 상승 때문에 은퇴를 미루거나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은퇴 번복' 현상을 보이지만, 재취업은 녹록지 않다. 지난달 기준 55세 이상 고령 실업자 중 25.1%가 27주 이상 구직 중인 장기 실업자다. 은퇴자 중 약 6%가 올해 안에 다시 일터로 돌아갈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들 중 51%는 '생활비 상승'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65세 이상 고령 취업자의 38.3%는 정규직보다는 파트타임으로 일해 고용의 질 측면에서도 불안정하다.
임시직 전전하다 결국 주택담보대출 중단
린 리는 처음으로 커쇼의 월간 푸드뱅크를 찾았다. 닭다리, 돼지 갈비, 신선 채소, 우유를 받았다. 평생 커쇼에서 살며 동네 사람들을 이름으로 부르던 그에게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이 걱정이었다.
오셔나골드가 또 다른 사무직 6개월 계약직 면접 기회를 줬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애완동물 영양제 회사 모의 고객 응대 테스트도 봤고, 채용 박람회에서 임시직 에이전시에도 등록했다. 어느 것도 성사되지 않았다.
"문이 닫히면 신은 어딘가 창문을 열어주신다"고 말하던 린 리는 8월 어느 주말 "너무 화나고 기가 꺾였다. 앉아서 울고 겁이 난다"고 문자를 보냈다.
9월 30일 마지막 실업급여를 받았다. 처음으로 은행에 전화해 주택담보대출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은행은 내년 2월까지 납부 유예를 허락했다.
10월 임시직 에이전시를 통해 시간당 17.3달러를 받는 수도 요금 수납 업무를 구했다. 높은 회전의자에 올라가는 게 힘들었다. 며칠 뒤 의자에서 떨어져 머리를 부딪쳤지만, 다음 날 다시 출근했다. 이 일자리는 곧 끝났다.
12월 초 딸이 콜롬비아에서 찾아와 크리스마스트리를 가져왔다. 돈을 아끼려 올해는 트리를 사지 않으려던 참이었다. 손녀와 함께 트리를 장식했다. 친구가 쇼핑에 데려가 햄과 칠면조, 냉장고를 가득 채울 식료품을 사줬다.
린 리는 광산 사무직과 시간제 은행 창구 업무 면접을 더 잡았다. 이제 결과를 가늠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축복받았다고 느낀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정신도 있다. 뭔가 풀릴 것이다. 풀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60세 이상 실업자는 13만 4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만 9000명 늘었다. 60세 이상 실업률은 2.2%로 전 연령대 평균(2.4%)보다 낮지만, 이는 구직을 포기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층의 재취업 소요 기간은 평균 11.3개월로 전체 평균(7.2개월)보다 4개월 이상 길다. 국민연금 수급액이 월평균 60만원대에 그쳐 많은 고령자가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지만, 일자리 질은 낮은 수준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