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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와 원자력이 벌이는 ‘흑연 쟁탈전’… 2030년 초고순도 시장 14억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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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와 원자력이 벌이는 ‘흑연 쟁탈전’… 2030년 초고순도 시장 14억 달러

배터리 양극재와 차세대 원자로 필수 소재 ‘UHP 흑연’ 공급망 지정학적 병목 심화
합성 흑연 비중 86% 달해… 화석 연료 기반의 ‘역설적 녹색 성장’과 막대한 전력 소모 지적
사진=구글 제미나이를 통한 이미지 생성이미지 확대보기
사진=구글 제미나이를 통한 이미지 생성
에너지 전환의 핵심 소재인 초고순도(UHP) 흑연을 두고 글로벌 운송 산업과 발전 산업이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1일(현지시각) 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 프라이스와 주요 분석 기관들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와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에 필수적인 UHP 흑연 시장은 2030년까지 14억 3,000만 달러(약 1.9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장악한 정제 역량과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제조 공정이라는 구조적 마찰이 숨어 있다.

◇ 화석 연료로 만드는 ‘청정 소재’의 역설


UHP 흑연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천연 광물보다 인위적으로 제조된 ‘합성 흑연’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기준 전체 공급의 86%를 차지하는 합성 흑연은 석유 정제 과정의 부산물인 ‘니들 코크스’를 3,000°C 이상의 고온에서 수주간 가열하여 생산된다.

천연 흑연은 불순물로 인해 배터리 고장을 유발할 수 있어 정교한 기가팩토리 공정에는 균일한 품질의 합성 흑연이 선호된다.

그러나 합성 흑연 1톤을 생산하는 데는 3~5MWh라는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며, 이는 결국 ‘녹색 전환’을 위해 대규모 산업용 전력망에 새로운 부하를 가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 원자력 부문의 가세… 99.95% 순도를 향한 제로섬 게임


최근에는 전기차 산업뿐만 아니라 원자력 부문이 UHP 흑연의 새로운 구매자로 급부상하며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SMR과 고온 가스 냉각 원자로(HTGR)는 중성자를 흡수하지 않고 극심한 방사선을 견딜 수 있는 ‘핵급(Nuclear-grade)’ 흑연을 구조적 필수품으로 요구한다.
핵급 흑연은 배터리 등급보다 훨씬 높은 순도 기준을 충족해야 하며, 화학 기상 증착(CVD)과 같은 고비용 공정을 거쳐야 한다.

자금력이 풍부한 두 거대 산업이 한정된 고순도 탄소 공급망을 두고 경쟁하면서, 이는 사실상 원자(Atom)를 확보하기 위한 제로섬 게임으로 변모하고 있다.

◇ 지정학적 병목 지점과 2030년의 경고


공급망의 지정학적 집중도는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흑연 정제 용량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으며, 2024년 말부터 고순도 합성 및 천연 흑연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며 자원 무기화에 나섰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이 공급망 다변화를 압박하고 있으나, 고열 산업 가공 시설을 단기간에 구축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2030년 14억 달러라는 시장 전망치가 단순한 성장의 지표가 아니라, 공급 중단 시 수조 달러 규모의 자동차·발전 산업이 멈출 수 있다는 ‘가치 위험’에 대한 경고라고 분석한다.

결국 에너지 전환의 승자는 가장 화려한 마케팅을 펼치는 곳이 아니라, 고열 용광로와 정제 기술을 소유한 국가와 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