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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총성보다 매서운 ‘가격의 공습’…에너지가 전쟁의 수명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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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총성보다 매서운 ‘가격의 공습’…에너지가 전쟁의 수명을 결정한다

정치적 신호가 된 유가, 단순 공급난 넘어 ‘거래 조건의 왜곡’이 패권을 결정한다…에너지·안보·산업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 한국은 ‘신뢰 자산’을 보유했는가
이란이 지난해 11월 중순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나포하자 국제유가 2% 올랐다. 사진은 2023년 1월 10일 마셜제도 국적의 유조선이 트뤼키예 이스탄불 인근 마르마라 해상에 정박 중인 모습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이란이 지난해 11월 중순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나포하자 국제유가 2% 올랐다. 사진은 2023년 1월 10일 마셜제도 국적의 유조선이 트뤼키예 이스탄불 인근 마르마라 해상에 정박 중인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올해 신년 초의 에너지 시장을 흔드는 것은 정유시설 폭발이나 산유국의 돌발 감산 같은 전통적 사건만이 아니다. 시장이 먼저 반응하는 것은 국가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까지 할 것인지, 그리고 그 행동이 얼마나 반복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치적 신호들이다. 지정학(geopolitics)은 더 이상 바깥 변수가 아니다. 지정학은 가격을 만드는 메커니즘이 되었고, 가격은 다시 전쟁과 패권 경쟁의 지속 능력을 재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에너지 부문을 다루고 있는 언론 보도는 크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유형의 기사가 있는데 이들 기사에서 하나의 공통된 결론이 나온다. 첫 번째 보도는 여러 지역의 긴장을 묶어 에너지 시장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기사이고 두 번째 보도는 특정 국가의 원유 수출과 가격이 동시에 약화될 때 국가 재정과 전쟁 수행 능력이 어떤 방식으로 흔들리는지 보여주는 기사다.

요컨대 전자 유형의 보도는 시장이 무엇을 두려워 하는지를 보여주고, 후자 유형의 보도는 국가가 어디서 먼저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둘을 합치면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의제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바로 에너지는 더 이상 전쟁의 연료가 아니라 전쟁을 지속하는 권력 자체이며, 그 권력은 군사력보다 먼저 가격과 거래 조건에서 마모된다는 사실이다.

행동이 시장을 움직이는 시대


오늘의 시장은 공급이 실제로 끊겼는지보다 국가가 무엇을 결심했는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변했다는 뜻이 아니다. 시장은 오히려 더 냉정해졌다. 공급이 끊기는 사건은 드물고, 끊기더라도 대체 공급과 재고라는 완충 장치가 존재한다. 반면 국가의 결심은 그 자체가 불확실성의 원천이다. 결심은 확장될 수 있고 반복될 수 있으며 다른 지역으로 전염될 수 있다. 시장은 물리적 공급보다 정치적 통제의 안정성, 더 정확히는 통제가 흔들릴 때 누가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지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사건의 도덕적 정당성이나 특정 정권의 성격이 아니다. 시장이 묻는 것은 통치의 연속성, 제재의 지속성, 시설과 인력의 정상화 속도, 운송과 결제의 원활성이다. 어떤 국가는 석유가 있어도 팔지 못하고, 어떤 국가는 팔아도 제 값을 받지 못한다. 누군가는 바다 위에서 보험료가 치솟고, 누군가는 항구 앞에서 선박이 맴돈다. 행동이 커질수록 공급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급의 조건이 왜곡되고, 바로 그 왜곡이 가격의 변동성을 키우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 에너지 시장은 전쟁을 예측하려 하지 않는다. 시장은 전쟁이 현실화할 때 생기는 비용을 앞당겨 계산하는 것이다. 해상로가 불안해지면 운송이 비싸지고, 제재가 강화되면 할인 폭이 커지며, 권력 공백이 생기면 정상화 비용이 늘어난다. 시장은 그 비용을 위험 프리미엄으로 가격에 얹는 것이다. 그래서 공급이 실제로 크게 줄지 않아도 유가가 반응할 수 있고, 반대로 큰 사건이 있어도 시장이 즉각 폭등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의 관심은 사건의 크기보다 사건이 남기는 제도적 후유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가격이 전쟁의 수명을 결정하는 메커니즘


위의 두 번째 유형의 보도가 보여주는 구조는 더 냉혹하다. 전쟁 수행 능력은 포탄과 병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전쟁은 재정으로 지속되고, 재정은 수출로 충당되며, 수출은 가격과 거래 조건에 종속된다. 생산량을 유지한다고 해서 전쟁 자금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가격이 떨어지고 할인 폭이 커지며 수출 가치가 줄어들면 그 나라의 재정 여력은 먼저 흔들린다.

여기서 핵심은 수출량과 수출 가치의 분리다. 수출량이 일정해도 수출 가치는 급감할 수 있다. 제재가 강화되면 거래가 복잡해지고, 결제와 보험과 운송이 비싸지며, 구매자는 그 비용을 가격 할인으로 전가한다. 수출국은 더 싸게 팔고 더 많은 마찰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전쟁은 이 구조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군사적 성과가 이어져도 가격이 무너지면 재정의 압박이 전략의 선택지를 줄인다.
전쟁은 전선에서 갑자기 끝나기보다 먼저 지연과 축소의 압력으로 나타난다. 무기 조달과 생산의 병목, 재정 지출의 긴축, 환율 방어의 부담, 내부 경제의 왜곡이 겹친다. 전쟁의 수명은 군사적 결전보다 이런 회계적 현실에서 먼저 깎인다. 그래서 에너지 가격의 하락은 단지 시장의 사건이 아니라 전쟁 지속 능력에 대한 구조적 공격이 된다.

왜곡의 시대가 만드는 연쇄 반응


위의 두 유형의 보도들을 합치면 위기의 핵심은 단절이 아니라 왜곡이라는 점이 더 선명해진다. 완전한 공급 중단은 극단적 사건이고 국제사회는 그 극단을 피하기 위해 대체선을 마련한다. 그러나 왜곡은 일상화될 수 있다. 선박이 돌아가고 물량이 머물고 결제가 늦어지고 보험료가 오르고 할인 폭이 커지는 일이 반복되면 시장은 그것을 새로운 정상으로 받아들인다. 그 새로운 정상은 가격의 경로를 바꾸고 투자와 생산의 방향을 바꾼다. 결국 에너지의 흐름이 재배치되고, 그 재배치는 경제의 비용 구조를 바꾸며, 비용 구조의 변화는 산업 경쟁력을 흔든다.

왜곡이 지속되면 에너지는 단지 비싸지거나 싸지기만 하지 않는다. 어떤 곳은 재고가 쌓이고, 어떤 곳은 선박이 부족해지고, 어떤 곳은 정제 능력이 병목이 되며, 어떤 곳은 전력 인프라가 취약해진다. 이 재배치가 외교와 군사 위기와 결합되면 파장은 더 커진다. 에너지 시장의 왜곡이 한 국가의 전략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또 하나의 연쇄 반응은 동맹과 파트너십의 성격 변화다. 에너지 거래가 단순한 상업 계약이 아니라 전략 계약이 되는 것이다. 안정적 공급은 우호의 표현이 아니라 조건부 혜택이 되고, 안정적 가격은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부산물이 된다. 이 때 중견국은 딜레마에 빠진다. 안보를 위해 특정 진영에 더 깊이 기대면 경제의 비용이 늘고, 경제를 위해 다른 진영과 거래를 늘리면 안보의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중립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왜곡의 시대에는 중립조차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어느 쪽도 중립을 값싸게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질서에서 핵심 질문은 단순히 '공급'이 충분한가 여부가 아니다. 핵심 질문은 위기에서도 거래 조건이 유지되는 '신뢰할 수 있는 공급'이 충분한가 여부다. 신뢰할 수 있는 공급이란 물량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위기에서도 계약이 유지되고 결제가 가능하며 운송이 통제되고 가격이 급변하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그 신뢰는 기술과 금융, 군사와 외교가 함께 만들어낸다. 에너지 시장을 둘러싼 패권 경쟁은 결국 신뢰라는 자산을 누가 더 많이 보유하느냐의 경쟁으로 이동한다.

한국의 최소 대응 원칙과 마무리


한국의 대응은 여기서 길게 늘어놓지 않겠다. 앞의 구조 분석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하다. 에너지의 왜곡이 상수화되는 시대에는 에너지 정책과 안보 정책, 산업 정책이 서로 따로 놀면 비용이 폭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대응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구조를 지키는 원칙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첫째, 수입선의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위기 시에도 결제와 운송이 유지되는 계약 구조와 비상 조달 체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둘째, 가격 변동이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전력과 연료의 완충 장치를 현실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변동성의 시대에는 가격 수준보다 변동 폭이 기업의 투자를 멈추게 한다. 셋째, 동맹과 파트너십은 군사만이 아니라 해상로 안정과 제재 환경, 금융 조건까지 포괄하는 체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에너지의 신뢰가 무너지면 안보의 신뢰도 함께 흔들린다.

결론은 역설적이다. 총성이 들리기 전에 가격이 먼저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격은 전쟁과 패권 경쟁의 수명을 먼저 깎는다. 한국의 과제는 그 현실을 과장 없이 받아들이되, 과잉 대응 없이도 견딜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