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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 “AI 때문이라는 해고, 실제론 기존 구조조정일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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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 “AI 때문이라는 해고, 실제론 기존 구조조정일 가능성”

2025년 기준 미국의 사유별 해고 규모 비교. 사진=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이미지 확대보기
2025년 기준 미국의 사유별 해고 규모 비교. 사진=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

인공지능(AI)이 대규모 실업을 초래하고 있다는 우려와 달리 실제로는 기업들이 기존 구조조정을 AI 도입의 결과처럼 포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8일(이하 현지시각) 포춘에 따르면 영국의 경제 분석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전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업들이 AI로 노동자를 대규모로 대체하고 있다는 증거는 거시경제 지표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며 “일부 기업은 인력 감축을 긍정적인 이야기로 보이게 하기 위해 AI를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AI로 인한 일자리 상실 사례가 일부 존재하긴 하지만 구조적인 고용 변화로 볼 만한 수준은 아니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대신 과거 과도한 채용이나 경기 둔화 같은 전통적인 이유로 발생한 해고를 ‘AI 전환’이라는 서사로 포장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지적했다.

◇ 투자자 설득 위한 ‘AI 해고’ 프레임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보고서는 기업들이 인력 감축의 원인을 AI로 설명하는 가장 큰 이유로 투자자 대응을 꼽았다. 전통적인 경영 실패나 수요 부진을 인정하는 대신, 기술 전환 과정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설명하면 투자자에게 더 긍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는 판단이라는 설명이다.

와튼 경영대학의 피터 캐펠리 교수도 포춘과 인터뷰에서 “기업들이 실제로는 실행되지도 않는 ‘유령 해고’를 발표하는 사례를 봤다”며 “주가가 해고 소식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몇십 년 전에는 이런 발표만으로도 주가가 올랐지만 이후 시장은 기업들이 실제로는 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캐펠리는 AI와 해고의 연관성을 둘러싼 발표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헤드라인은 ‘AI 때문에 해고한다’고 하지만 실제 설명을 보면 ‘AI가 이 일을 대신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수준인 경우가 많다”며 “아직 실행된 것이 아니라 희망에 가깝다”고 말했다.

◇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채용 정보업체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의 자료를 인용해 AI 해고에 대한 인식과 현실의 괴리도 짚었다. 지난해 11월까지 미국에서 AI를 이유로 보고된 해고 규모는 약 5만5000명으로 2023년 이후 AI 관련 해고의 75% 이상을 차지했다.

다만 이 수치는 같은 기간 전체 해고의 4.5%에 불과했다. 반면 ‘시장 및 경제 여건’을 이유로 한 해고는 약 24만5000명으로 AI를 이유로 한 해고의 네 배에 달했다. 매달 150만~180만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는 미국 노동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AI로 인한 해고는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분석이다.

◇ 생산성 지표도 ‘대규모 대체’ 부정


보고서는 AI가 실제로 노동자를 대규모로 대체하고 있다면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이 급격히 상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분석이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AI가 이미 광범위하게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면 생산성 증가율이 가속화돼야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최근 생산성 증가율은 오히려 둔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AI 혁명보다는 경기 순환의 영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KPMG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포천에 “현재 노동시장은 ‘저채용·저해고’ 상태에서 ‘고용 없는 성장’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리서치의 사비타 수브라마니언 미국 주식·퀀트 전략 총괄도 “기업들이 사람 대신 프로세스로 대체하는 법을 배웠다”면서도 “2001년 이후 생산성이 뚜렷하게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가 제시한 이른바 ‘생산성 역설’, 즉 “컴퓨터 시대는 어디에서나 보이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과도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다.

◇ 청년층 일자리도 구조적 문제 아냐


보고서는 AI가 신입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미국 대학 졸업자의 실업률은 2025년 3월 5.5%로 정점을 찍었지만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이를 경기 순환적 현상으로 해석했다.

미국에서 22~27세 인구 중 대학 교육을 받은 비율은 2019년 기준 35%까지 상승했고 유로존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학위 보유자의 공급 증가가 단기적인 취업 압박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노동시장의 변화는 혁명적이라기보다 점진적인 성격을 띨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지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