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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의 새 질서…엔비디아가 기준을 만들고 삼성·하이닉스·TSMC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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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의 새 질서…엔비디아가 기준을 만들고 삼성·하이닉스·TSMC가 따른다

전력과 메모리, 패키징이 가른 차세대 AI 주도권의 기준
반도체를 만들지 않는 기업이 산업의 규칙을 설계하는 구조
미국 기술 기업 엔비디아 본사는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위치해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기술 기업 엔비디아 본사는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위치해 있다. 사진=로이터

AI 반도체 경쟁의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한때 미세공정과 연산 성능이 승부를 갈랐다면, 이제는 전력 효율과 메모리 대역폭, 패키징과 시스템 안정성이 실제 채택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 기업, 엔비디아가 있다.

미국의 첨단 기술 기업 엔비디아는 더 이상 단순한 칩 설계 회사에 머물지 않는다. AI 데이터센터가 감당할 수 있는 전력 한계와 냉각 부담, 메모리 병목까지 고려해 전체 시스템의 기준을 설정하는 위치로 이동했다. 그 결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엔비디아가 제시하는 조건에 맞춰 각자의 전략을 다시 정렬하고 있다.

공정 경쟁에서 시스템 경쟁으로

AI 반도체 수요는 이제 더 빠른 칩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물리적 한계에 접근하면서, 같은 성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오래 운용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이에 따라 경쟁의 중심은 공정 미세화에서 시스템 완성도로 이동하고 있다. 칩 성능과 함께 메모리 접근 속도, 패키징 구조, 서버와 랙 단위의 전력 밀도까지 함께 고려되지 않으면 실제 현장에서 채택되기 어렵다. AI 반도체 경쟁이 개별 기술의 우위가 아니라 전체 구조의 균형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HBM을 둘러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다른 위치

이 새로운 질서의 핵심에는 고대역폭 메모리, 즉 HBM이 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HBM 협력과 관련해 엔비디아와의 논의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AI 메모리 시장에서의 재도약 의지를 드러냈다. 동시에 인공지능을 반도체 제조 공정에 적용해 수율과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는 방향도 분명히 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이미 엔비디아의 핵심 HBM 공급사로 자리 잡은 상태다. 하이닉스의 경쟁력은 단순한 메모리 성능을 넘어 AI 가속기와 결합되는 패키징 안정성과 전력 효율에서 신뢰를 확보한 데 있다. 두 기업은 같은 시장에 있지만 전혀 다른 위치에서 경쟁하고 있다.

TSMC가 쥔 공급망의 병목

파운드리 영역에서는 TSMC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AI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수록 첨단 공정뿐 아니라 패키징과 생산 능력의 한계가 전체 공급망의 병목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패키징 구조와 전력 밀도, 메모리 구성은 사실상 시장의 표준처럼 작동하고 있다.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생산 역량을 갖춘 TSMC는 단순한 제조 파트너를 넘어 AI 반도체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인텔의 변수와 남은 경쟁

이 구도에서 인텔은 변수로 남아 있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 확대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지만, AI 반도체 경쟁에서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생산 능력 이상의 통합 대응력이다. HBM, 패키징, 시스템 최적화가 동시에 맞물리지 않으면 AI 수요의 중심부로 진입하기 어렵다. 인텔의 향후 행보는 파운드리 경쟁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은 검증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AI 반도체 경쟁은 더 이상 누가 가장 앞선 공정을 보유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고 데이터센터의 제약을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엔비디아가 기준을 만들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가 그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지금의 구조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 질서가 이미 새로운 단계로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