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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재산 지키려 나라 떠난다"... 전 세계 억만장자 36% '역대급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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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재산 지키려 나라 떠난다"... 전 세계 억만장자 36% '역대급 엑소더스’

"정치 불안·세금 폭탄 못 버텨"...억만장자 36% 거주지 옮겼다, 사상 최대 '부의 대이동’
영국·미국 자산가 이탈 급증...UAE·유럽은 '황금비자' 앞세워 억만장자 싹쓸이
단순 절세 넘어 사법·정치 위험 피하는 '방어적 이주' 기조 뚜렷
전 세계 초고액 자산가들이 지정학적 긴장과 급격한 정책 변화를 피해 거주지를 옮기는‘역대 최대 규모의 부유층 이주’ 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전 세계 초고액 자산가들이 지정학적 긴장과 급격한 정책 변화를 피해 거주지를 옮기는‘역대 최대 규모의 부유층 이주’ 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미지=제미나이3
전 세계 초고액 자산가들이 지정학적 긴장과 급격한 정책 변화를 피해 거주지를 옮기는 ‘역대 최대 규모의 부유층 이주’가 현실로 나타났다.

과거 부유층의 이주가 주로 더 높은 수익과 세금 혜택을 쫓는 ‘공격적 이동’이었다면, 최근에는 자산의 영속성과 신변 안전을 도모하는 ‘방어적 이주’가 주를 이루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지난 10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이러한 흐름을 분석하고 전 세계적인 부의 재편 현상을 집중 조명했다.

자산 다변화 넘어 '거주지 다변화' 시대... 억만장자 36% 이미 이동


최근 부유층 사이에서는 특정 국가의 사법 체계나 정책 급변에 따른 위험(Jurisdictional Risk)을 금융 위험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가 87명의 억만장자 고객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에만 전체의 36%가 이미 거주지를 옮겼으며 9%는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54세 이하 젊은 억만장자 층에서는 이 비율이 44%에 달해 젊은 자산가일수록 이동에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이주 컨설팅 업체 헨리 앤 파트너스(Henley & Partners)에 따르면 지난해 218개 국적의 자산가들이 상담을 신청했으며, 이는 95개국 40여 개 투자 이민 프로그램에 대한 신청으로 이어졌다. 전체 신청 건수 역시 전년보다 28% 늘어났다.

자산 이동 솔루션 업체 파로 앤 코(Farro & Co.)의 디페쉬 아가왈 공동창립자는 "자산가들은 정책 체제가 순식간에 바뀌고 규제가 강화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며 "특정 국가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거주권과 시민권 옵션을 자산 포트폴리오처럼 다변화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영국·미국서 빠져나간 자산가들, UAE·유럽으로 결집


이러한 이동 흐름 속에서 전통적 자산 강국이었던 영국과 미국은 체면을 구겼다. 영국은 지난해 4월, 200년 넘게 유지해 온 '외국인 비거주자(Non-dom) 세제 혜택'을 전격 폐지하면서 자산가들의 이탈을 불렀다.
헨리 앤 파트너스는 지난해 영국에서 약 920억 달러(약 133조5900억 원)의 자산을 가진 자산가 1만6500명이 순유출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2024년 9500명 유출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미국 역시 정치적 양극화와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이주 행렬을 부추기고 있다. 국제 세무 컨설팅 업체 그린백(Greenback)의 조사 결과, 해외 거주 미국인 중 시민권 포기를 고려하는 비중은 2024년 30%에서 지난해 49%로 급증했다. 응답자의 51%는 미국 정부의 정치적 방향성에 대한 불만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반면 아랍에미리트(UAE)는 '부의 블랙홀'로 떠올랐다. 개인 소득세와 부유세, 자본이득세가 없는 파격적인 세제 환경과 유연한 '골든 비자' 제도를 앞세워 지난해에만 자산가 9800명을 불러모았다.

이는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많은 유입 수치다. 유럽에서는 포르투갈과 그리스가 투자 이민 제도로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스위스도 사법적 안정성을 원하는 자산가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신뢰 잃은 정치 시스템... '생존형 이동' 당분간 지속


전문가들은 이번 대이동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근본적인 변화라고 평가한다. 시민권 서비스 전문 업체 사보리 파트너스(Savory Partners)의 제레미 사보리 설립자는 "정치 불안과 시민 소요, 감시 강화 등이 이주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개인의 주권과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리브해 국가들도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우디의 '프리미엄 거주 프로그램'은 2024년 확대 개편 이후 8000개 이상의 허가증을 발급했다. 앤티가 바부다 등 카리브해 국가들의 시민권 프로그램도 유럽 거주 전략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업계에서는 거주지 이전을 고민하는 자산가들의 움직임이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 간의 정책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자산가들은 법적 보호와 세대 간 자산 전승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한 땅'을 찾아 계속해서 국경을 넘을 전망이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