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히말라야에 묻힌 미·중 핵 전쟁사...실패한 공작이 빚어낸 '인도 동맹'의 서막

글로벌이코노믹

히말라야에 묻힌 미·중 핵 전쟁사...실패한 공작이 빚어낸 '인도 동맹'의 서막

미 CIA·인도 합동 중국 핵 감시 극비 작전의 전말...기술 낙관주의가 부딪힌 대자연의 벽
사라진 방사능 장비와 굳건해진 전략적 신뢰...뉴START 종료 시대에 되새기는 집요한 억제력
이미지 확대보기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은 히말라야 고봉에 핵 감시 장비를 설치하려는 극비 작전을 추진했다. 목표는 중국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동향을 조기에 포착하는 것이었다. 이 구상은 단순한 현장 감시를 넘어 중국의 전략적 핵 능력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흐름을 조기경보 체계 차원에서 파악하려는 미 핵 억제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작전은 장비를 회수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고 원자력을 동력으로 하는 감시 장치는 히말라야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단순한 정보 실패로 기록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과 인도 관계의 질적 변화를 끌어낸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최근 미 군사 안보 전문 매체 워온더락스는 이 작전을 냉전기 정보기관의 과감함과 기술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낳은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했다. 실패한 공작이 어떻게 외교적 신뢰와 전략적 자산으로 전환됐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사례라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 2월 5일 뉴START(신전략무기감축협정)가 공식 종료된 이후 미국이 중국의 비밀 핵실험 의혹을 제기하며 미·러·중 3국 체제의 새 핵군축 조약을 촉구하는 현시점에서 이 사건은 과거 미국이 중국 핵을 감시하기 위해 쏟았던 집요한 노력의 무게를 새삼 실감케 한다.

우연한 대화에서 시작된 핵 감시 구상


이 비밀 작전의 시발점은 워싱턴의 한 사교 모임이었다. 히말라야를 등반한 한 산악인이 정상에서 바라본 중국 내륙의 지형과 시야를 설명하자 이를 듣던 미 공군 수뇌부는 고지대에 감시 장비를 설치해 중국 핵시설을 탐지하겠다는 대담한 발상을 떠올렸다. 중국이 1964년 첫 핵실험을 단행한 직후였기에 미국은 중국 핵 능력의 실체를 파악할 정보에 굶주려 있었다. 아이디어는 즉시 CIA로 전달됐고 곧 고산 조기경보 구상으로 구체화됐다.

중국 핵 억제 구조를 겨냥한 전략적 승부수

작전의 목표는 단순 관측이 아니었다. 미국은 히말라야 고봉에서 수집되는 신호와 데이터를 통해 중국의 핵실험 주기 미사일 개발 단계 나아가 전략 핵전력의 운용 방식까지 추론하고자 했다. 당시 소련에 비해 정보가 극도로 제한됐던 중국 핵전력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미국의 전략적 억제력과 핵 균형 판단에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기술적으로는 무모했지만 대안이 없던 시절 선택한 고위험 고수익 수단이었던 셈이다.

미국과 인도가 손을 잡은 공통의 위협


작전지는 인도 영토인 히말라야 산악 지대였다. 미국의 단독 접근이 불가능했기에 인도 정부와 정보기관의 협력은 필수였다. 당시 인도는 비동맹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으나 중국과의 국경 전쟁을 치른 후 안보 환경이 급변해 있었다. 중국의 핵 개발은 인도에도 실존적 위협이었다. 이 공통의 위협 인식이 양국을 하나의 작전으로 묶었다. 인도 내부에서는 주권 침해와 비동맹 원칙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중국 핵이라는 압도적 현실이 정보 협력의 문을 열게 했다.

기술 낙관주의 자연의 벽에 부딪히다


그러나 작전은 대자연 앞에서 좌초됐다. 혹독한 기상 조건과 고산병으로 인해 미 인도 합동 등반팀은 정상 정복에 실패했고 결국 핵 전원을 사용하는 감시 장치를 산맥에 남겨둔 채 철수했다. 이후 수차례 회수를 시도했지만 장비는 눈사태나 빙하 틈에 영원히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냉전기 정보기관의 낙관주의가 현실의 한계에 부딪힌 상징적 사건이 됐다. 더 큰 문제는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었다. 히말라야 수계는 인도의 젖줄인 주요 강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가 장기간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으나 다행히 방사능 유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실패가 전략적 신뢰로 승화된 이유


수년 뒤 언론 보도로 작전이 폭로되자 일부에서는 미국의 무모함을 비난했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이례적으로 작전을 공식 승인했음을 인정하며 당시 중국 위협의 심각성을 당당히 설명했다. 인도는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지 않았고 미국은 이를 계기로 인도를 신뢰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로 재평가했다. 히말라야에서 미국이 잃은 것은 핵 감시 장비였지만 얻은 것은 인도와의 견고한 전략적 신뢰였다. 이 사건은 정보 공작의 성패를 떠나 공통의 목표를 향한 협력이 국가 간 관계의 경로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현대 외교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