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 독점하려는 시진핑의 공포정치… 장유샤 실각은 1인 독재 완성의 신호탄
건국 공신부터 최측근까지 ‘토사구팽’… 군부 숙청 피바람에 대만 침공 우려 고조
건국 공신부터 최측근까지 ‘토사구팽’… 군부 숙청 피바람에 대만 침공 우려 고조
이미지 확대보기“정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교시 아래, 1인 지배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라이벌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시진핑식 공포정치가 정점에 달했다는 분석이다. 본지는 에포크타임스 보도(2026년 2월 19일)와 중화권 안보 소식통의 분석을 종합해 중국 군부 최고위직의 비극적인 변천사를 추적했다.
마오쩌둥의 유산, '전쟁 영웅'조차 피하지 못한 투쟁과 숙청
중국 인민해방군 역사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늘 ‘외줄 타기’를 하는 자리였다. 건국 공신인 펑더화이(彭德懷)부터 린뱌오(林彪)에 이르기까지, 군권을 쥔 자들은 예외 없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중국 군부 2인자의 비극은 공산당 건국 공신들로부터 시작했다. 6·25 전쟁 당사자인 펑더화이(彭德懷) 전 국방부장은 1959년 루산 회의에서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반당 집단 수괴로 몰려 실각했다. 그는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에 구타당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초를 겪었으며, 100회 이상 공개 비판대(투쟁심의회)에 세워진 끝에 1974년 옥사했다.
후임 격인 허룽(賀龍) 원수 역시 토사구팽을 피하지 못했다. 인민해방군 창설 주역인 그는 1967년 '2월 역류' 사건에 휘말려 베이징 서부 군 시설에 구금됐다. 당뇨를 앓던 그는 적절한 치료 대신 치명적인 고농도 포도당 주사를 맞고 1969년 숨을 거뒀다. 그의 부인 쉐밍(薛明)은 회고록을 통해 이것이 사실상의 암살이었다고 증언했다.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헌법에 명시됐던 린뱌오(林彪)는 가장 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그는 1971년 9월 13일, 마오쩌둥과의 권력 다툼 끝에 가족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몽골로 탈출하다 추락사했다. 그의 죽음은 여전히 중국 현대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개혁개방과 시진핑 시대의 숙청… 정치적 이견과 부패 척결
1980년대 들어서도 2인자의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다. 1987년 당 총서기와 군사위 제일부주석에 오른 자오쯔양(趙紫陽)은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유혈 진압을 반대하다 덩샤오핑과 대립했다. 결국 그는 모든 직위에서 해임된 뒤 16년 동안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다 2005년 세상을 떠났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에는 '부패 척결'이 숙청의 핵심 명분이 됐다. 장쩌민 전 주석의 측근인 궈보슝(郭伯雄)과 쉬차이허우(徐才厚) 부주석이 대표적이다. 2014년 수사 대상이 된 쉬차이허우의 집에서는 1톤(t)이 넘는 현금과 당·송·원·명대 골동품이 쏟아져 나와 군용 트럭 10여 대가 동원될 정도였다. 궈보슝은 2016년 8000만 위안(약 148억 원)의 뇌물 수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장유샤의 몰락과 ‘시진핑 3기’의 서막
72세의 고령임에도 유임되며 ‘시진핑의 호위무사’로 불렸던 장유샤의 해임은 중국 군부 내부에 엄청난 공포를 심어주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시진핑 주석의 1인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하는 ‘마지막 퍼즐’이라고 평가한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장유샤는 군 내부의 신망이 두터워 시 주석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인 동시에 가장 두려운 견제 대상이었을 것”이라며 “그를 제거함으로써 시 주석은 군의 모든 총구를 완전히 자신만을 향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1인 지배의 완성, '시진핑 종신 집권'의 길을 열다
장유샤의 실각은 단순한 인사조치를 넘어 시진핑 3기를 넘어선 ‘종신 집권’의 길을 닦는 행위로 풀이된다. 군부 내 잠재적 반대 세력을 완전히 거세함으로써 당·정·군 전 분야에 걸쳐 견제 장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권력의 집중이라는 측면에서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군 내부의 자발적 충성심보다는 공포에 기반한 복종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체제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요소다.
특히 군 지휘권의 독점은 대만 문제 등 대외 정책에서 지도자의 오판을 견제할 시스템이 부재함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군사위 부주석들의 연쇄적인 몰락은 중국 내부의 권력 기반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반증”이라며, 시 주석이 자신의 권위가 흔들릴 때마다 외부 갈등(대만 침공 등)을 통해 내부 결속을 꾀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경고한다. 1인 독재의 완성은 곧 동북아시아 안보 지형의 가장 큰 불확실성으로 부상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