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360억 달러 1호 프로젝트 먼저 쐐기 박았다…韓은 첫 투자처조차 아직 안갯속
122조 150일 브리지→301조 정조준 '2단계 압박'…반도체·자동차 관세는 판결 무관 건재
122조 150일 브리지→301조 정조준 '2단계 압박'…반도체·자동차 관세는 판결 무관 건재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20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기반 상호관세를 위법이라고 최종 확정한 지 불과 24시간 만에, 백악관은 무역법 제122조를 꺼내 들고 전 세계를 겨냥한 15% 글로벌 관세를 이달 24일 0시 1분(미 동부시간)부터 발효했다. 6대 3의 다수 의견으로 "의회의 명확한 권한 위임 없이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못 박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판결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대통령은 다른 서랍에서 다른 법조문을 꺼낸 셈이다.
관세 리셋의 구조, '122조 브리지 → 301·232조 정조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복원 로드맵은 3단계로 짜여 있다. 1단계는 무역법 122조다. 의회 승인 없이 최대 15%, 최장 150일 동안 발동할 수 있는 이 조항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을 버는 동안 더 강력한 도구를 장전하겠다"고 공언한 임시 브리지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122조 관세로 미국의 평균 실효 관세율이 기존 13.6%에서 16.5%로 오르되, 일부 면제 조항이 적용될 경우 11.4%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2단계는 무역법 301조 조사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판결 직후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 불공정 무역 관행 조사를 전격 개시했다. 산업 과잉생산·강제노동·디지털세 등이 조사 대상이다. USTR은 2018년 대(對)중국 301조 조사 당시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재활용해 150일 내 조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전략이다. 3단계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한 품목별 고율 관세 강화다. 현재 철강·알루미늄·자동차에 적용 중인 232조 관세는 이번 대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이미 한국 수출을 압박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댈러스 경제클럽 연설에서 "122조·232조·301조를 결합하면 2026년 관세 수입은 사실상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관세 총액이 줄지 않는다면, 교역국 입장에서 IEEPA 위헌 판결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다만 이 로드맵에는 법적·물리적 한계가 뚜렷하다. 122조는 150일 연장 시 의회 승인이 필요한데, 공화당 내에서도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 301조 조사는 통상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되는 데다 전 세계 교역국을 동시에 다루기엔 USTR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122조 자체의 적용 요건을 두고도 "무역적자를 '근본적인 국제 지급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학계 반론이 제기되고 있어, 이 조항 역시 법적 도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번 판결로 기납부 관세 환급 소송을 이미 제기한 기업은 1000곳을 넘어섰다. 펜실베이니아대 펜-와튼 예산모델팀은 환급 청구 규모가 최대 1750억 달러(약 253조 원)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환급이 실제로 집행될 경우 미국 재정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협상력을 잠재적으로 옥죄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아시아 교역국 5각 구도, 누가 앞서고 누가 흔들리나
23일(현재시각) 배런스 보도에 따르면 교역국 가운데 일본의 발걸음이 가장 빠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17일(현지시간) 일본의 1차 대미 투자 프로젝트 3건을 직접 발표했다. 오하이오주 가스 화력발전소(330억 달러, 약 47조 6600억 원), 텍사스주 석유·가스 수출 시설(20억 달러 이상, 약 2조 8800억 원), 조지아주 합성 산업용 다이아몬드 제조 설비(6억 달러, 약 8660억 원)로 구성된 총 360억 달러(약 52조 원) 규모다.
싱가포르의 간 킴 용 부총리는 스트레이츠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새 15% 관세의 "구체적인 시행 방식에 대한 긴급 해명"을 미국에 요청하고, 기납부 관세의 환급 가능성도 면밀히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이행을 거부하지 않지만, 실익을 냉정하게 따져 보겠다는 계산이다.
대만의 라이칭더 총통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만이 확보한 최선의 대우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 핵심 목표"라고 밝혔다. 합의 내용을 직접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에 확보한 관세 유리 지위를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은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중국 상무부는 "이번 판결은 미국의 일방적 관세 조치가 국제 무역 규범과 미국 국내법 양쪽을 모두 위반했음을 확인한 것"이라며 모든 대(對)중국 관세의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베이징은 미국의 301조 조사가 중국을 정조준할 가능성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3월 31일부터 4월 2일 방중(訪中) 및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담이 어떤 변수가 될지를 면밀히 계산하고 있다.
한국만의 특수 방정식, 3500억 달러 투자의 '이중 속박'
한국의 셈법은 다른 교역국보다 훨씬 복잡하다. 산업통상자원부 김정관 장관은 대법원 판결 직후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해 "기존 합의 틀을 하루아침에 뒤집을 사안이 아니며, 미국 측과 우호적 협의를 지속한다"는 방침을 공식 확인했다.
한·미가 체결한 3500억 달러(약 506조 원)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는 조선 협력 분야 1500억 달러(약 216조 원)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 2000억 달러(약 288조 원)로 구성된다. 자동차·상호관세 인하를 전제로 논의된 합의였다. 합의의 전제가 됐던 상호관세는 이번에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자동차·철강에 부과된 232조 품목관세는 건재하다. 재협상에 나서는 순간 232조·301조라는 더 강력한 압박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통상 당국의 판단이다.
국내 정치 변수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는 24일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공청회를 열고 다음 달 5일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진보당과 사회민주당은 "상호관세가 위헌으로 무효화된 만큼 이를 전제로 한 투자 합의도 무효"라며 특별법 전면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빌미로 쿠팡 지분을 보유한 미국 투자회사들이 한국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아 301조 불공정 무역 조사를 청원했다는 사실도, 한국만이 안고 있는 별도의 위험 요소다.
정부가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은 일본과의 격차다. 일본은 360억 달러짜리 1호 프로젝트를 이미 확정한 반면, 한국은 첫 투자 프로젝트조차 못 박지 못했다. 박정성 산업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한 실무단이 최근 워싱턴DC를 방문해 조율 중이며, 원전·구리 정련·배터리 소재 등이 2호 프로젝트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일본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라는 미국의 절박한 수요를 정조준한 것처럼, 한국도 원전 기술력과 에너지 기자재 경쟁력을 앞세운 맞춤형 패키지 구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산업계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IMD 비즈니스스쿨의 시몬 에브넷 지정학·전략 교수의 진단은 냉혹하다. "150일 시한이 오히려 협상 상대방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압박 도구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장난을 치는 나라에는 더 강력한 수단을 쓸 것"이라고 공개 경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 공간은 좁아지고 있다.
국제상업회의소(ICC) 앤드루 윌슨 사무차장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전한 한 마디가 현재 교역국들의 심리를 압축한다. "지금 당장 기체결 합의에서 이탈하려는 나라는 없다." 대법원 판결이 IEEPA라는 무기 하나를 무력화했을 뿐, 워싱턴의 통상 압박이 약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22조의 150일이 소진되는 오는 7월 말, 그 시점을 향해 각국의 관세 방정식은 이제 새로운 미지수를 품고 다시 풀려야 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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