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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고용 충격] "내 자리를 AI가 차지했다"…미국 사무직, '조용한 학살' 현실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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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고용 충격] "내 자리를 AI가 차지했다"…미국 사무직, '조용한 학살' 현실 되다

S&P500 일부 기업, 자사 인력 절반 칼질…화이트칼라 직격“
기업 증권 신고서 'AI 위험 명시' 3년새 12%→72% 폭증
국내 IT·금융업계도 구조조정 도미노 '초읽기'…"적응 속도보다 빠른 변화가 진짜 위협"
컨퍼런스 보드와 ESGAUGE의 공동 분석에 따르면, 미국 기업이 증권 신고서(10-K)에 AI를 경영위험 요소로 명시한 비율은 2023년 12%에서 지난해 72%로 불과 2년 만에 6배 폭증했다. 시장이 공식적으로 AI 리스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컨퍼런스 보드와 ESGAUGE의 공동 분석에 따르면, 미국 기업이 증권 신고서(10-K)에 AI를 경영위험 요소로 명시한 비율은 2023년 12%에서 지난해 72%로 불과 2년 만에 6배 폭증했다. 시장이 공식적으로 AI 리스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미지=제미나이3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미래 담론에 머물지 않고, 현실의 해고 통보로 구체화되는 데는 생각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걸렸다.

미국 애니메이션 길드 집회 현장에서는 최근 만화 캐릭터 인형 옆으로 "더 많은 오리지널 콘텐츠, 더 적은 AI"라는 팻말이 등장했다. 기술 업계 종사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거리 위로 터져 나온 것이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이미 현실이 된 'AI 감원 쓰나미'가 화이트칼라 전반을 강타하고 있으며, 국내 IT·금융 업계도 그 충격파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퀘어는 신호탄"…블록發 4000명 해고, 공포 전염 시작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8(현지시간) 핀테크 기업 블록(Block)이 인공지능(AI) 도입을 명분으로 전체 인력의 약 25%에 해당하는 4000명을 정리해고한다고 보도했다. 잭 도시 블록 최고경영자(CEO)가 칼을 빼 든 자리는 화이트칼라의 상징인 금융 기술 사무직이었다.

전 메타(Meta)·세일즈포스(Salesforce) 임원 클라라 시는 자신의 SNS"스퀘어의 이번 결정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앤디 재시 아마존 CEOTV 인터뷰에서 "지난 20~30년간 다수의 인원이 투입됐던 직무 중 상당수가 앞으로는 더 적은 인원으로 처리될 것"이라며 구조적 고용 감소를 기정사실로 못 박았다.

이는 개별 기업의 돌발 결정이 아니다. 컨퍼런스 보드와 ESGAUGE의 공동 분석에 따르면, 미국 기업이 증권 신고서(10-K)AI를 경영위험 요소로 명시한 비율은 202312%에서 지난해 72%로 불과 2년 만에 6배 폭증했다. 시장이 공식적으로 AI 리스크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소 팀'이라는 이름의 감원 논리…주가도 흔들렸다


경영진 사이에서는 AI를 활용해 조직을 최소 인원으로 재편하는 이른바 '슬림 팀' 전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벤처캐피털 샤인 캐피털의 모 코이프만 창립자는 "인원이 많을수록 관료주의와 비효율만 쌓인다. 작은 팀이 크고 둔한 조직을 늘 이긴다"고 단언했다. 팬데믹 기간 과잉 채용 논란을 빚었던 빅테크 기업들이 이 논리를 앞세워 감원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파장은 노동시장을 넘어 금융 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AI발 고용 붕괴 우려가 부각되자 소프트웨어 개발사와 보험사는 물론, 음식 배달 앱 도어대시 주가까지 동반 하락세를 보였다. 투자리서치 기관 시트리니 리서치는 대규모 사무직 실업이 소비 지출 급감과 금융권 전이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하며 월가에 경계령을 울렸다.

"변화 속도, 사회가 버틸 수 없다"…다이먼·허핑턴의 경고


JP모건체이스 제이미 다이먼 CEO는 지난 23일 투자자 서한을 통해 "AI가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은 맞지만, 그 이면의 인력 감축이 사회에 미칠 충격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변화의 속도가 우리 사회의 적응 능력을 앞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발언은 생산성 향상이라는 장밋빛 청사진 뒤에 가려진 고용 불안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다.

클리블랜드의 회계사 토마스 커는 이 상황을 산업혁명에 빗댔다. "농촌 사람들이 공장으로 몰려든 것처럼 사람들이 이동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 그 공장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무엇으로, 어디서 다시 일할 수 있는지 그 답이 없는 채로 해고 통보가 먼저 날아오고 있다는 뜻이다.

댄 슐먼 페이팔(PayPal) CEO"향후 2~5년 내 20~30%의 실업률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대규모 재교육 투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버라이즌은 지난해 1113000명 감원을 발표하면서도, 영향을 받는 직원들을 위해 2000만 달러(289억 원) 규모의 경력전환 기금을 별도 조성해 사회적 책임을 일부 이행했다.

아리아나 허핑턴 스라이브 글로벌 CEO"AI가 일자리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완전히 예측할 수 없지만, 변화 자체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경영진이 직원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면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예외 없다…"선제적 사회 안전망이 골든타임"


국내 상황도 심상치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비롯한 주요 경제 단체들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의 AI 관련 인력 재편 계획이 올해 들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으며, IT·금융·유통 업종을 중심으로 자동화 대체 가능 직무 분류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AI 도입을 단순히 '기술 채택'을 넘어 '인력 최적화'의 수단으로 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수출 중심 제조업에서 서비스·사무직 비중을 빠르게 높여 온 만큼, AI 감원 충격이 미국보다 더 압축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술 혁신의 속도를 늦출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충격을 누가, 어떻게 흡수하느냐는 여전히 인간의 선택이다. AI 시대의 연착륙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정책과 사회적 합의가 결정한다. 기업이 '더 작은 팀'을 선언하는 속도만큼, 국가가 '더 두꺼운 안전망'을 설계할 골든타임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