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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유 수입 90% 이상 통과하는 길목이 막혔다…호르무즈 봉쇄, 비축유 208일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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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유 수입 90% 이상 통과하는 길목이 막혔다…호르무즈 봉쇄, 비축유 208일의 역설

이란 혁명수비대 해협 봉쇄 선언 나흘 만에 코스피 7% 폭락·LNG 가격 하루 40% 급등
정부 "비축유 208일치 충분" 방어막 쳤지만…우회 운임 최대 80%·보험료 7배 할증 '비용 폭탄' 현실화
에너지 안보 취약도 한국 아시아 2위…파키스탄·방글라데시는 LNG 재고 바닥, 인도는 원유·가스 '이중 충격’
CNBC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아시아 각국의 에너지 취약도를 집중 분석하며 한국을 최고 위험군 중 하나로 지목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CNBC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아시아 각국의 에너지 취약도를 집중 분석하며 한국을 최고 위험군 중 하나로 지목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이 한국의 에너지 공급망 심장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한 지 나흘 만에 한국 증시가 7% 넘게 무너졌고, 동북아 천연가스 지표 가격은 단 하루 만에 40% 치솟았다.

CNBC는 3일(현지시각) 아시아 각국의 에너지 취약도를 집중 분석하며 한국을 최고 위험군 중 하나로 지목했다. 한국 정부는 비축유 208일치를 앞세워 진화에 나섰지만,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이 방어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단 한 방울도 못 빠져나간다"…해협 차단이 한국 경제에 던진 충격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사령관 보좌관 에브라힘 자바리 소장은 ISNA통신을 통해 "이 지역에서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박운행정보업체 케이플러(Kpler) 고위 리스크 분석가 디미트리스 암파치디스는 봉쇄 직후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이 70% 급감했다고 밝혔다.

그 파장은 즉각 수치로 나타났다. 동북아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LNG 일본·한국 마커(JKM)는 3일 100만BTU(영국열량단위)당 15.068달러로 전날보다 약 40% 뛰었다. 코스피는 7% 이상 무너졌고, 정부에서는 "필요할 경우 100조 원 이상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왜 한국이 특히 취약한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 수입 원유의 약 70%가 중동산이고, 이 가운데 9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친다.

에너지 분석 기관 제로 카본 애널리틱스(Zero Carbon Analytics)는 에너지 안보 취약도 평가에서 일본(6.4점), 한국(5.3점), 인도(4.9점) 순으로 위험도가 높다고 분석했다. 한국 전체 에너지의 81%가 수입 화석연료에 달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봉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원유와 가스는 물론 석유 제품, 비료 가격이 단기간 급등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비축유 208일의 역설…우회항로가 또 다른 폭탄 된다

한국 정부는 3일 관계 부처 합동 긴급 대응 회의를 열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정부 비축유 7640만 배럴, 민간 비축유 7380만 배럴에 3개월 내 추가 확보 물량 3500만 배럴까지 더하면 합산 208일치에 해당한다"며 당장의 수급 대응력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구 부총리는 "우리나라의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만큼 호르무즈 해협 불안에 따른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성에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봉쇄 장기화 시나리오에서는 비축유만으로 방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우회항로 비용이다.

한국무역협회는 호르무즈 대신 우회 루트를 활용할 경우 해상운임이 기존 대비 최대 50~80%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육로 운송과 통관 기간도 최대 5일 늘어난다. 과거 중동 분쟁 당시 보험료가 최대 7배까지 할증된 사례도 있다고 업계는 전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란이 중동 전역으로 전선을 확장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우회 경로의 실질적 가동 여부 자체가 불확실하다"고 우려했다.

이번 호르무즈 위기는 2023년 홍해 사태와 본질이 다르다. 해운업계에서는 홍해 사태가 컨테이너 물류에 집중됐다면, 이번엔 원유와 LNG라는 에너지 수송의 핵심 동맥을 직접 차단한다는 점에서 파급 강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운업계가 주목하는 시나리오는 세 가지다. 미·이란 협상을 통한 조기 출구, 부분 봉쇄의 장기 고착, 역내 전면전 확산이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28일 공습 직후 인천~두바이 노선 왕복편을 긴급 결항시키고 오는 5일까지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국내 항공사 중 유일하게 해당 노선을 주 7회 왕복 운항해온 터라 타격이 적지 않다.

HMM 관계자는 "당장은 지켜보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며 "중동은 주력 시장은 아니지만 유가 상승은 전 항로에 영향을 미쳐 파급력이 더 크다"고 말했다.

아시아 전체가 흔들린다…한국보다 더 급박한 나라들


글로벌 시각에서 보면, 한국보다 먼저 무너질 수 있는 나라들이 있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클플러(Kpler) 수석 분석가 고 가타야마(Go Katayama)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LNG 비축량과 대체 조달 여력이 모두 바닥이어서 공급 차질이 생기면 전력 수요 붕괴가 빠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클플러 집계에 따르면 파키스탄 LNG 수입의 99%, 방글라데시의 72%가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들어온다. 방글라데시는 이미 하루 13억 입방피트 이상의 가스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고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밝혔다.

인도도 안심할 수 없다. 가타야마는 "인도는 LNG 수입 절반 이상이 걸프만과 연계돼 있고 상당 부분이 브렌트유 가격에 연동된 계약 구조여서, 원유 가격 급등이 LNG 계약 단가까지 동시에 밀어올린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금융그룹 UBP는 인도 석유 수입의 약 60%가 중동산이라며 봉쇄가 길어질수록 에너지 수입 비용과 경상수지 압박이 한꺼번에 심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의 약 84%, LNG의 83%가 아시아 시장으로 집중됐다.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네 나라가 이 병목 지점을 통과하는 석유 운송량의 약 75%를 소화한다.

노무라증권은 태국을 아시아에서 석유 가격 피해가 가장 큰 나라로 지목했다. 석유 순수입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7%로 아시아 최고 수준이고, 유가가 10% 오를 때마다 경상수지가 GDP의 0.5%포인트씩 악화된다는 분석이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에너지 수출국으로서 반사 이익이 기대된다.

봉쇄 장기화 시 우회항로 여력도 제한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동서 파이프라인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파이프라인이 하루 약 350만 배럴의 여유 용량을 제공하지만, 이는 완전 봉쇄 시 수송량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라이스타드에너지(Rystad Energy)는 밝혔다.

일본총연구소는 지난 1월 추산에서 해협이 전면 폐쇄될 경우 브렌트유가 배럴당 50달러가량 추가 상승해 현재의 거의 두 배인 100달러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