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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꺼낸 삼성 vs 연합군 소집한 하이닉스”... 반도체 역사를 바꿀 최후의 데스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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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꺼낸 삼성 vs 연합군 소집한 하이닉스”... 반도체 역사를 바꿀 최후의 데스매치

설계·파운드리·메모리 일체화한 ‘삼성 제국’의 공습... 하이닉스는 TSMC와 ‘피의 결혼’
소유한 자와 연결된 자, 1,000조 원 AI 칩 시장의 새로운 주인은 누구인가
AI 반도체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유리 기판. 사진=테크주스이미지 확대보기
AI 반도체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유리 기판. 사진=테크주스

삼성의 수직 독주에 맞서는 거대 연합군의 탄생


삼성전자가 메모리부터 파운드리, 패키징까지 한 울타리 안에서 해결하는 SAINT(삼성 첨단 인터커넥트 기술)로 반도체 제국의 부활을 선포했다면, SK하이닉스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바로 세계 최고의 파트너들과 손을 잡는 오픈 에코시스템(개방형 생태계) 전략이다. 이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삼성의 폐쇄적 애플 방식에 맞서, 각 분야 1위 기업들과 혈맹을 맺고 시장을 장악하는 안드로이드 방식의 반격이다. 곽노정 사장이 이끄는 하이닉스의 이 승부수는 삼성의 수직 통합이 가진 경직성을 파고들며 AI 반도체 먹이사슬의 최상단을 겨냥하고 있다.

TSMC와 피 섞은 하이닉스, 베이스 다이의 금기를 깨다


국내 반도체와 인공지능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HBM4(6세대)부터 메모리 하단의 베이스 다이(Base Die) 제조를 TSMC에 맡기기로 한 결정은 업계의 판도를 뒤흔든 사건이다. 과거 메모리 업체들에 베이스 다이는 자존심과 같은 영역이었으나, 하이닉스는 이를 과감히 포기하고 TSMC의 최첨단 로직 공정을 수용했다. 이로써 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GPU와 가장 완벽하게 궁합이 맞는 맞춤형 HBM을 생산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적의 기술이라도 최고라면 도입한다는 하이닉스의 유연함이 삼성의 턴키 전략을 고립된 섬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SAINT가 통합을 논할 때 하이닉스는 고속도로를 뚫는다


삼성의 SAINT 기술이 칩을 수직으로 쌓아 하나의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면, 하이닉스는 칩 내부의 데이터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속도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이닉스는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을 차세대 제품에 선제적으로 적용하여, 데이터 전송 통로인 인터커넥트의 밀도를 극대화하는 중이다. 이는 단순히 높게 쌓는 경쟁이 아니라, 데이터가 흐르는 고속도로 자체를 가장 넓게 뚫는 작업이다. 삼성의 수직 통합이 공정의 편의성을 제공한다면, 하이닉스의 개방형 연합은 엔비디아와 AMD가 요구하는 극한의 성능을 가장 먼저 구현해 내고 있다.

개방형 생태계가 삼성의 턴키 전략을 무력화하는 방식


하이닉스가 주도하는 개방형 생태계의 무서움은 확장성에 있다. 삼성은 자신의 파운드리 라인이 놀면 패키징 수율이 떨어지는 구조적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하이닉스는 TSMC뿐만 아니라 글로벌 설계 자산(IP) 기업들과도 자유롭게 협업한다. 고객사인 빅테크 기업들 입장에서는 특정 기업에 종속되는 삼성의 방식보다, 하이닉스-TSMC-ARM으로 이어지는 1등 연합군을 선택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와 성능 보장 측면에서 유리하다. 삼성의 나 홀로 천재 전략이 하이닉스의 팀 플레이에 밀려 시장 점유율에서 고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I 시대의 권력은 소유가 아닌 연결에서 나온다


향후 5년, 반도체 전쟁의 결말은 누가 더 많은 기술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파트너와 연결되었느냐로 결정될 것이다. 삼성이 SAINT를 통해 거대한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려 하지만, 하이닉스는 이미 전 세계 AI 칩의 90% 이상을 자신들의 에코시스템 안에서 흘러가게 만들고 있다. 스스로를 낮추고 세계 최고들과 피를 섞은 하이닉스의 낮은 전략이,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삼성의 높은 전략을 압도하고 있다. 칩 내부의 거리를 지우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하이닉스는 이미 대륙 간의 경계부터 지워버렸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