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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혼다의 ‘전기차 야망’… '0 시리즈' 폐기하며 퇴보하는 기술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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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혼다의 ‘전기차 야망’… '0 시리즈' 폐기하며 퇴보하는 기술 거인

맥 호건 “5년의 기다림 끝에 인내심 바닥”… GM 협업 결렬 이어 독자 모델까지 취소
아큐라, 미국 내 유일한 ‘전동화 부재’ 브랜드 전락… 157억 달러 손실 속 위기감 고조
과거 효율적인 연비와 혁신적인 기술로 미국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꿨던 혼다(Honda)가 전기차(EV) 전환 시대에는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사진=혼다이미지 확대보기
과거 효율적인 연비와 혁신적인 기술로 미국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꿨던 혼다(Honda)가 전기차(EV) 전환 시대에는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사진=혼다
과거 효율적인 연비와 혁신적인 기술로 미국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꿨던 혼다(Honda)가 전기차(EV) 전환 시대에는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제너럴 모터스(GM)와의 저가형 전기차 공동 개발 계획이 무산된 데 이어, 야심 차게 준비했던 차세대 전기차 라인업 ‘0 시리즈’마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으면서 팬들과 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각) 자동차 전문 매체 인사이드EVs(InsideEVs)에 기고한 칼럼니스트 맥 호건(Mack Hogan)은 혼다의 계속되는 ‘후퇴 전략’을 강력히 비판하며, 실질적인 제품 없이 빈 약속만 남발하는 경영진의 태도를 지적했다.

◇ 0 시리즈의 종말과 반복되는 ‘후퇴의 역사’


혼다는 2024년 CES에서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플랫폼과 AI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0 시리즈’를 공개하며 대대적인 반격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최근 혼다는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와 가성비 확보 실패를 이유로 이 프로젝트를 취소하거나 무기한 연기했다.

미베 도시히로 CEO가 공언했던 GM과의 저렴한 전기차 개발 계획은 ‘먼 과거의 일’이 되었으며, 혼다 최초의 현대식 장거리 전기차는 여전히 시장에 나오지 못했다.

혼다는 보도자료를 통해 "신생 전기차 제조사보다 가성비 좋은 제품을 제공하지 못해 경쟁력이 저하되었다"고 이례적으로 자인했다. 이는 디자인 사이클이 빠른 중국 기업과 테슬라에 비해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 혼다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 하이브리드 선구자의 몰락… 아큐라는 ‘전동화 공백’ 상태


혼다는 하이브리드 판매 증가를 내세우며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혹하다. 20년 전 최초의 하이브리드 ‘인사이트’를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하이브리드 SUV는 CR-V 한 대뿐이며 미니밴(오디세이)이나 대형 SUV(파일럿) 라인업에는 여전히 하이브리드 모델이 없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인 아큐라(Acura)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하이브리드 시대를 건너뛰고 바로 전기차로 가겠다는 전략을 세웠으나, GM의 플랫폼을 빌려 만든 'ZDX'는 출시 2년도 안 되어 단종 위기에 처했고, 후속 모델인 'RSX'는 생산도 시작하기 전에 취소되었다.
이로써 아큐라는 미국에서 전동화 모델이 단 한 대도 없는 유일한 브랜드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 현실성 없는 수소 프로젝트와 ‘빈 약속’의 반복


전문가들은 혼다가 전기차 개발에는 소극적이면서도, 여전히 실현 가능성이 낮은 수소 연료전지(FCEV) 프로젝트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점을 꼬집었다.

캘리포니아에서만 충전이 가능한 수소차 실험을 계속하는 동안, 전기차 시장에서는 법적 최소 요건만 맞추는 ‘방어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맥 호건은 "S2000이나 NSX의 전기차 버전을 예고하며 과대광고를 조성하던 혼다가 이제는 평범한 전기 크로스오버조차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며 "진짜 제품을 판매할 준비가 될 때까지는 더 이상 티저나 약속을 듣고 싶지 않다"고 일갈했다.

◇ 157억 달러의 대가… “혁신하지 않으면 자리를 잃을 것”


혼다는 이번 전기차 전략 실패와 중국 사업부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최대 157억 달러(약 21조 원)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진짜 위험은 금전적 손실보다 '기술적 낙후'에 있다.

기술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현대차, GM, 토요타가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전기차 수익성을 확보해가는 동안, 혼다는 변두리에서 기회만 엿보다가 학습 기회를 놓쳤다.

70년대 혼다가 크고 무거운 미국 차들을 제치고 시장을 장악했듯, 이제는 BYD와 테슬라 같은 날렵한 신생 기업들이 혼다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혼다가 탄소 중립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규제 완화를 핑계로 발을 뺄 것이 아니라, 경쟁자들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진정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시장의 목소리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